립밥뿐만 아니라.. 핸드크림도... 향수도...
내게 책상과 화장대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분명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 하루에 5분도 안되는 날이 훨씬 많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데 왜 항상 그 두 곳은 어지럽혀져있는 것인가!
'너는 생긴 건 안그러는데 왜 이 모양이냐'
내 사물함을 본 선생님이, 내 지갑 상태를 본 친구가 했던 말이다.
그럼 난 당당히 말했다.
"내 눈엔 더러운 게 잘 안보여~"
실제로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비주얼에 무감각한 편이지만
어느날 눈에 들어온 책상 상태가 좀 심각했다. 내 눈에 지저분에 보인 것이라면 그것은 진짜다!
퇴근 후 치운다고 건드리기에는 다소 두려운 비주얼이었기 때문에
주말에 하겠다고 혼자서 으름장을 놓았지만 매주 약속이 있어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두번의 주말만 미루어도 벌써 2주가 밀리는 셈.
결국 마음 먹은지 3주만에 책상 앞에 섰다.
그런데 문득 저 앞에 화장대가 눈에 들어왔다.
화장대 위에 돌려가며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기구가 있는데
그걸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정리한 기억이 없었다. 당연히 거기에 뭐가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일단 저기부터다.
즉흥적으로 나의 책상 정리는 화장대로 정리로 옮겨갔다.
호기롭게 반나절 안에 끝내려고 했던 화장대와 책상 정리는 결국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쌓여있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어디선가 받았던 샘플 화장품, 유통기한이 훨씬 지나 끈적해진 립스틱,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지만 향이 좋은 무언가, 기한 지난 영양제, 잉크가 거의 다 날아간 영수증,
구석구석 침투해있는 까만 먼지들.
내가 보관하겠다고 했지만 방치해버린, 그래서 내 것이지만 내 생활 속에서는 이미 빠져있는 물건들.
그 중 가장 오래된 건 8년 전 유럽여행을 다녀오면서 사온 크림이었다.
유명하다고 잔뜩 사온 크림을 버릴 기회는 많았지만
언젠가 쓸 것이라며 굳이 계속 고집을 부렸었다.
제대로 관리하지도,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욕심을 부리니 방치하게 될수밖에.
이런 욕심들이 모이고 쌓이면 공간을 차지 하고
그 공간들이 모이고 쌓이면 삶이 조금씩 무거워지는 걸까.
지금 당장 쓰지 않을 것은 다 버리고
유통기한이 적게 남은 순서대로 숫자를 적어서 정리했다.
몇 년동안 버리지 못했던 책과 케이블선들도 그냥 버렸다.
거의 물티슈 한통을 다 쓰면서 먼지를 닦아내며 정리를 마쳤을 때
책상에는 내가 금방이라도 쓸 수 있는 물건들만 남았다.
넓어진 것 같은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알았다.
내가 그동안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 하루에 5분도 안되는 날이 훨씬 많았던 건
내가 이곳을 쓸 공간이 없어서였구나.
내가 필요로 하는 여백, 내가 앉아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로 했던 거구나.
지금도 그 날 치운 깔끔한 책상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날처럼 지금도 마음이 뿌듯하다.
정리 한 번이 이렇게 뿌듯하고 뭔가를 한 기분을 들게 할 줄은 몰랐다.
마치 내 삶을 잘 정돈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물론 살아있는 한 나는 또 책상도, 화장대도, 내가 존재하는 공간들 어디든 어지럽힐 것이다.
하지만 또 치우면 되니까.
쌓이고 치우고 어지럽히고 정리하는 순환 속에서,
내가 정리할 수 있는 물건과 감정을 다시 만나면 되는 거니까.
그 주말은 그렇게,
이틀에 걸쳐 몇 년을 정리한 홀가분한 휴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