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다치고 느낀 혼자의 현실

건강이 최고다! 그리고..

by 일상세팅러


기분 좋은 어느 금요일 저녁,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졌다.

다음날이 부담 없는 금요일이라 핸드폰을 바꾸기 위해 평소에 가지 않는 동네에 갔다.

내가 사고 싶었던 모델이 없어 직원분이 추천하신 모델을 검색해 보면서 지하철로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넘어졌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턱이 있었는데 핸드폰을 보느라 보지 못했던 것이다.


넘어지는 순간 뚝 소리가 들렸고 갑작스러운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고통보다 더 먼저 나를 지배한 건 부끄러움...

워낙 크게 넘어지고 나도 "아!" 하며 단말마를 내지르며 넘어져서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 쏠렸고 그중 누군가는 "어떡해!"라고 친히 공감까지 표출해 주셨다..


아프지만 순식간에 일어나 절뚝거리며 뒤도 안 돌아보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왼쪽 발목이 욱신거리고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에 내린 후에도 계속 절뚝거리며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외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본격적으로 내가 놓인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절대 그냥 삔 정도가 아니다. 이건.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와 동생이 30분 내에 달려왔고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진찰을 받고 엑스레이와 CT를 찍는 동안 아빠도 와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는 계속 내 상태를 물어보는 전화가 왔다.


결과적으로 골절은 아니고 인대가 꽤 손상되었다.

반깁스와 목발을 2~3주간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팔과 손가락에는 깁스를 해본 적이 있지만 다리는 처음이었다. 다리를 다치고 거기에 목발까지 하는 건 상체를 다친 것보다 더 불편했다.


다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생활은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응급실에서 돌아오자마자 화장실에 갔는데 제대로 걷지도 못해 화장실까지 같이 들어오는 엄마를 쫓아내며 현타가 왔다. 바닥에 뭔가가 떨어지면 줍는 것도 고역이었고 내 몸이 아닌 도구로 중심을 잡아야 하는 목발을 사용하는 것도 낯설어 휘청거리는 탓에 움직이는 것이 무서웠다.

요리는 물론, 차를 타는 간단한 과정도 험난한 미션이었다. 물을 끓이고 차 가루를 컵에 붓고 끓은 물과 우유를 부어 섞는 게 그리도 많은 행동을 요구하는 고도의 행위인 줄 그제야 깨달았다!

밖에 나가는 건 당연히 생각도 못했다.

목발을 짚으니 다리뿐만 아니라 두 손까지 목발에 묶여 물 한 컵을 방으로 가지고 들어오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내 몸보신을 해야 한다며 엄마에게 닭을 사 와 닭백숙을 끓이라고 하고 할머니는 과일을 계속 깎아주셨다. 엄마는 내가 먹을 음식을 계속해주었다.


가족들의 사랑과 호의를 느낄 때마다 생각했다.

'만약 내가 혼자 살았다면?'


내가 혼자 사는 미래를 그릴 때 가장 두려운 상황이다.

아플 때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막막함,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바로 옆에 없다는 외로움,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서러움.

혼자 사는 삶의 어려움을 이번에 제대로 느꼈다.

언젠가 혼자 살게 된다면 겪어야 할 어려움.


혼자 산다는 건 자유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기대하지 않고 감당해야 하는 순간들까지 포함해야 한다.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선 막막함을 다루어야 한다.


그러니 혼자 사는 삶을 조금씩 구체적으로 상상해야겠다.

몸이 아플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돌봄이 필요한 순간에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아프면 알게 되는 게 있다.

건강이 최고라는 것.

그리고 혼자 살기 위해서는 집이라는 공간뿐만 아니라

생활이라는 일상 전반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여기서 미리 말해둘 건, 나는 무조건 혼자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다. 다만 결혼이라는 방식으로만 생활 공동체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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