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으며 사는 법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by 일상세팅러




때때로 내가 아슬아슬하게 경계에 놓여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현실과 비교의 경계에서 자칫 생각의 발자국을 반걸음이라도 잘못 옮기면 그대로 후회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릴 것 같은 불안함과 위기감이 엄습해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하지 않은 선택에 대한 결과를 직접 경험할 수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거나 선택하지 않은 길을 택한 사람의 표면적인 인생을 멀리서 바라보며 막연한 부러움을 느끼는 정도까지는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똑같이 주어진 선택지 중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건 너무 쉽게 나와 그의 결과를 비교할 수 있게 된다. 그건 꽤나 위험한 일이다.



-



전 부서는 "아무나 가지 못하는" 부서였다. 특히나 전 부서는 내 직급이 적었기 때문에 내 직급에 이 부서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애초에 전 부서에서 내 직급의 자리는 파이가 적어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발령 타이밍도 좋았고, 다른 부서에도 영향을 많이 미치는 자리이기에 어느정도 평판이나 신뢰가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는 느낌이 있어 그 부서로 발령이 났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왔다.


축하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으쓱하는 마음이 채가시기도 전에 나는 무방비 상태로 일에 치이기 시작했다. 아주 좁은 업무만 해왔던 신규에게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넓은 범위의 업무가 쏟아졌다. 발령을 일부러 전임자가 휴직을 들어가기 한달 전에 내주어 약 한달간 인수인계를 받을 수 있는 엄청난 배려를 받았지만 시스템 사용이나 문서 작성 등 기본적인 업무 진행 방법조차 알지 못했던 신규에게는 모든 것이 너무 벅찼다. 연말이 가장 바쁜 자리에 연말이 시작되자마자 앉게 되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야근과 주말 출근은 당연했다. 야근마저도 시간이 없어 쫓기듯이 해야했다. 막차를 타기 위해, 내일 출근을 위해 허겁지겁 컴퓨터를 끄고 버스창에 기대어 눈물을 꾹 참으며 퇴근했던 그 날들은, 잠깐 눈만 붙이고 집에 들어온지 여섯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출근했던 그 날들은 나에게 일종의 트라우마이자 힘이 되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아이러니한 시기.


전 부서는 상위기관에 지원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유리한 부서였다. 업무의 성격이 가장 비슷하고 내 직급에서 많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근무경력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승진이 더 빠른 상위기관에 지원하라는 권유가 계속 있었다. 하지만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이 부서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일들의 연장선일 상위기관에 적응할 것이 두려웠다. 아무도 모르는 울면서 퇴근했던 지난 날들이 자꾸 떠올랐다. 다시 그런 일들과 감정을 견뎌낼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내가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상위기관에 대한 지원은 기회가 한정적이었다. 주기적으로 공고가 나는게 아니라 자리가 날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공고가 났고 지원자에 대한 근무 경력도 정해져있었다. 너무 연차가 찬 지원자보다는 일이년 정도 연차의 지원자를 선호했기 때문에 경쟁력 있는 시기도 짧았다. 말그대로 타이밍운이 중요했다. 운좋게도 내가 딱 그 조건에 맞는 시기에 공고가 떴다. 객관적으로 봐도 나는 꽤나 경쟁력이 있어보였다. 친한 팀장님과 동료가 계속 지원서를 제출하라고 권유했다. 일단 지원서를 주말 동안 작성하고 원서 마감시간인 월요일 오후 여섯시 1분전까지 계속 고민 했다. 17시 59분까지 메일 보내기 버튼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대고 마우스를 쥐고 있었다. 18시. 결국 난 마우스의 왼쪽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그 이후 새로운 분이 우리 부서로 발령이 났다. 나와 같은 직급의 동료였다. 그 분을 보고 있으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맡은 일을 해내기 위해 늦게까지 야근하고 주말을 반납하고 어떻게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동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나와 미묘하게 달랐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은 잘 해내야한다는 책임감에 의해 일을 했다면 그는 업무의 완성도에 큰 중점을 두었다. 나는 업무의 전반이 문제없이 흘러가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흐름뿐만 아니라 업무 자체의 완성도가 낮으면 스스로 견디지 못했다. 새로운 일을 배운 것에 두려움이 없고 오히려 일이 익숙해지면 일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그가 신기했다.


"요즘 일이 재미없어요."

"원래 일은 재미없는 거예요!"


나와 그는 본질적으로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나보다 조금 늦게 입사한 그도 곧 상위기관에 지원할 수 있는 근무경력이 되었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상위기관 지원에 강력한 경쟁자였다. 같은 부서의 경험이 있고 입사시기도 크게 차이나지 않아 근무경력도 비슷하고 둘다 평판도 좋았다. 조금 더 어린 내가 나이면에서는 유리했지만 여초 직장인 이곳은 성별에서는 남자인 그에게 좀 더 메리트가 있었다.


그와 같은 부서가 된 후 다시 상위기관 공고가 올라왔다. 견제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공고가 올라오기 전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지원의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여전히 상위기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애초에 상위기관으로 가는 것을 염두해두고 있었다. 서로 지원하라고, 상위기관으로 가라고 가볍게 말하면서도 자신이 지원하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나도, 그도 지원할 수 있었던 두번째 기회. 하지만 나도, 그도 지원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고(이유를 말해주었지만 내가 이해할 수는 없는 이유였다.) 나도 새로운 곳에 다시 적응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또 공고가 떴다. 그때는 이미 나의 근무경력이 많이 차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당시 난 이미 상위기관에 가서 직장 내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보다 다른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지원하지 않았다. 그도 이미 업무에 지쳐있어 지원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현장 업무가 주인 이곳은 확실히 전 부서보다 일에 대한 부담이 덜했다. 나의 영향력이 컸던 지난 부서와 달리 하라는 대로 하면 되기 때문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내가 발령이 난 후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다시 상위기관에서 공고가 났다. 아직 전 부서에 남아있었던 그도 그 사이 근무경력이 길어 마지막 기회였던 공고였다. 그는 결국 지원을 했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상위기관에 들어갔다. 다른 팀장님께 그의 합격소식을 듣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어쩐지 미안한 기색으로 내 전화를 받았다. 그의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이상한 박탈감과 불안함, 질투를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밝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지만 나 스스로 알고 있었다. 온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그를 축하하지 못하고 있음을. 그때의 나는 말그대로 후회의 구렁텅이 바로 앞에 발을 걸치고 서있었다.


이제 현장에서 벗어나 좀 더 어렵고 책임이 큰 "중요한" 업무를 할 그가, 나보다 승진이 빠를 그가 높이 올라가는 모습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땅에 발이 묶인 채로 멀리 날아가는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상상되었다. 지원을 하지 않은 건 나인데, 분명히 나의 선택이었는데. 그와 나는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데. 막상 내 옆에서 내가 포기했던, 모두가 추천했던 선택을 한 사람이 보이니 나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다.



-



다음날 약간의 우울한 기분이 가시지 않은 채로 출근 준비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섰을 때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왔었던 세 번의 기회에서 나는 매번 같은 선택을 했고, 수없이 고민했던 매번의 선택의 순간에 내가 같은 선택을 했다는 건, 같은 선택을 반복했다는 건 진정으로 내가 그걸 바랐기 때문이라고. 선택을 둘러싼 상황이나 주변인의 조언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만 아는 나의 성격, 내가 겪은 시간들까지 고려한 마음의 소리를 바탕으로 같은 선택을 했다는 건 결국 나는 이곳에 남아있기를 바랐던 것이라고. 내 선택에 대한 나의 진정성을 깨닫자마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의 상위기관 합격이 아무렇지 않아졌다.


이제 그는 완전한 상위기관 사람이 됐고 나는 하위기관에 적응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가 가끔씩 상위기관에서 하는 일이나 있었던 일을 말해줄 때 나의 업무 능력이 점점 퇴화하고 있는 반면에 그의 업무 능력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솔직히 그의 얘기가 듣고 싶지 않기도 하고 아니꼽게 느껴질 때도 있다. 다시금 그때 지원을 했어야 했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상위기관에서 겪을 어려움을 이제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그런 생각은 지금이기에 가능하다는 걸 안다. 상위기관에서의 적응이 두려웠던 그때의 나와 "이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 사이에는 많은 시간이 쌓여있다. 그 시간들 속의 경험을 통해 지금의 내가, 좀 더 단단하고 성장한 내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대학생 때 읽었던 책에서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한 인간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세포는 죽고 태어나고를 반복하며 경험의 축적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사고가 변화하므로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니 다른 존재라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결국 그때의 나는 그 이후의 성장을 겪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과 견딜 수 있는 역치가 다르다. 그때의 나는 내가 원하고 필요했던 선택이 지금의 나에게는 옳지 않은, 혹은 하지 않을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다. 지금의 기준으로 그때의 내 선택을 판단하는 건 수학 문제의 답안지로 국어 문제를 채점하는 것처럼 소용없는 일이니까.


결국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함으로써 그 선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선택으로 살고 있는 오늘이 괜한 후회로 오염되지 않게 정성을 다해 살아가면 된다. 그때의 내가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음을, 그것이 최선을 다한 결과라는 걸 받아들이면 후회는 존재할 수 없다. 물론 그건 그때의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정했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 그러니 선택의 순간, 그 당시 나를 둘러싼 상황과 나의 솔직한 감정에 집중하고 정성을 다하면 된다. 현재에 집중한다면 자연스레 미래의 나에게 나를 미워하지 않을 기회를 주게 된다.



후회하지 않으며 사는 법은 간단하다.

1. 지금 내가 마주한 현재에 집중하고 현실에 정성을 다한다.

2. 후회의 구렁텅이에 발을 걸치게 된다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임을 명심한다.

3.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 선택을 판단하는 건 문제에 맞지 않은 답안지로 채점을 하며 틀렸다고 자책하는 것과 다름없음을 기억한다.


사실 나도 언제나 이걸 생각하며 살지는 못한다. 무기력과 후회에 잠식 당할 때가 종종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그렇기에 이 글을 쓴다. 현실과 후회의 경계에 설 때마다 나를 뒤로 당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나를 미워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