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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별아star a Jun 18. 2019

여행의 의미-파리, 프랑스의 보물 '루브르 박물관'기행

13개국 26개 도시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여행기 [예술 편]



프랑스 파리. 파리라는 도시는 우리에게 '낭만의 도시', '세계적인 관광 도시', '이국적이지만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지는 도시'가 아닐까? 내게도 파리는 그런 도시였다. 직접 파리를 마주하기 전까지.


낭만적인 일들이 일어나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것 만 같던 상상의 도시는, 오히려 상상과 빗나감에 더 아름다운  도시였다.
차가운 철제의 에펠탑만큼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리고 정말 '매력' 있는 도시 파리.
낭만주의와 신고전주의 예술이 꽃피운 도시에 더욱 가깝게 들어가 보고 싶었다.

 


파리는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듀 예술 문화센터, 로댕 미술관, 국립 피카소 미술관을 기행 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해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더욱 받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박물관 | 사회문화의식의 물질적 측면을 보존, 설명하는 목적을 가진 기관이다. 인간과 인간 환경의 양상에 관해 실체적인 증거를 가지며, 소장물들은 대체로 독특하고 연구의 자료가 된다.


 

그중에서도 루브르 박물관은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러시아의 예르미타시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약 40만 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다.



루브르의 역사는 16세기 초 프랑스와 1세 때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해 티치아노의 작품 12점 등의 이태리 거장들의 작품과 고대 조각 작품들을 보관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나폴레옹 집권 시기에는 패전국으로부터 약탈해온 미술품들이 더해져 엄청난 양을 소장하게 된 지금의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인상적인 작품들   




1. 젊은 순교자(1853)

(폴 들라로슈)


박물관의 수많은 작품 들 중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 발걸음을 멈추게 한 작품. 다른 유명한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끌렸던 작품의 제목은 '젊은 순교자'였다. 

알 수 없는 그림이지만 무언가 강하게 그녀에게 끌리면서, 두 손을 묶인 채 강에 떠 있는 모습이 차갑게 식어버린 시체라고 하기에는 고귀하고,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 같다. 정말, 아름답다고. 


그녀는 디 오크 레티 아누스 제(帝) 시대에 순교한 젊은 처녀로, 거짓 신들에게 바쳐지기를 거부하고 사형을 선고 당해 양 손이 묶인 채 테베레 강에 버려진다. 그녀의 몸은 차가운 물에 잠기고,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에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녀의 감정과 감성은 상처 입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티끌 하나 없이 고요하며 청렴하다.

              


이 그림을 통해 폴 들라로슈는 주제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기독교적 종교성과 묘사를 뛰어넘어 순교한 아가씨의 '순수'라는 인간의 감정과 열정, 내면을 그리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유작이기도 하다. 죽음의 시간이 다다랐을 때, 그가 가장 가치 있다고 느꼈던 것은, 무언가에 대한 순수, 열정, 곧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상처와 결핍과 모든 죽어가는 것들 중에서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믿음이나 신념 등을 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무언가를 배반하거나 등 져 버리는것이 아니라.




그녀는 아마 상처 입었을 것이다. 간절하게 바라고, 꿈꾸었던 세상이 짓밟힌 듯 크게 상처 입었을 것이다.
한번 상처 입은 그녀는 그 '감정'에 굴복하기보단 자신이 믿는 것을 따르자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대상에게 믿음이나 사랑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되려 편안해짐을 느꼈을 것이다. 매어있던 것을 끊고 진실을 알게되었으므로.
그녀의 죽음은 '매어져있던것으로부터의 죽음'. 그것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운명, 최종결론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가장 현실적인 것은 내가 그림으로 창조한 환상들이다. 그 나머지는 흐르는 모래와 같다.
                                    -들라크루아-


2.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Liberty Leading the People(들라크루아)


바르크 시대의 낭만파의 대표적인 프랑스 출신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작품(1830)으로, 낭만주의 미술의 대표작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낭만주의와 신고전주의


낭만주의는 예술 작품에 낭만적 감정, 즉 영혼을 담는 것이 핵심인 예술 사조이다. 18세기 말에 나타난 이 사조는 19세기 초 중반에 미술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어 흥행하기 시작하였다. 낭만주의의 흥행에 따라 당시에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팽팽하게 대립하였는데 두 예술사조는 그만큼 뚜렷이 대조적인 것 또한 특징이다.  


신고전주의는 그리스˙로마 문화가 지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가치가 중시되었고 따라서 대상과 인체에 대한 정확한 재현적 묘사와 이상적 비례에 열중하였다. 반면, 낭만주의는 정신적 체험이나 내면적 혹은 영적 열정을 중시하여, 신비주의적이고 감상적인 입장에서 접근하였다.




 낭만주의가 나은 회화적 장르가 바로 자연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한 '풍경화'라는 장르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반적인 장르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고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이렇듯 예술도, 인간도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며, 지평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림의 배경은 1830년 파리의 <7월 혁명>이다. 1830년 당시 프랑스의 왕 샤를 10세는 왕정복고 정책을 선포하였고 비민주적 정치에 반대한 파리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부르봉 왕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공작을 선출한다.



당시 파리 시민들의 '자유를 향한 정신과 열정, 내면적 힘을 감성적으로 풀어낸 것이 바로 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자유를 위해 전투하는 여성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로 '자유'를 표현하였다.

즉, 논리적이거나 현실적이진 않지만, 당시 프랑스 시민들의 절절했던 정치참여 욕구와 분노, 열망과 끈기를 낭만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3. 그랑드 오달리스크(1814)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신고전주의의 선구자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는 대조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은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회화를 이끌었던 도미니크 앵그르의 대표작 <그랑드 오달리스크>이다.  도미니크 앵그르는 로마 시대의 유적과 고대 작품들을 연구했으며,  신고전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차분하고 투명하며 정교하게 균형 잡힌 작품은 당대 낭만주의 작품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작품에 나타나는 전경으로 압축된 공간감, 그리고 사실적인 묘사 등은 모두 신고전주의 양식의 특징이다.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터키어로 터키 궁정의 궁녀를 의미한다. 흔히 터키를 '동서양의 교차점'이라고 하는데, 당시에도 프랑스 인들에게도 터키는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프랑스 인들은 터키 지역과 풍물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터키 궁정에 대한 호기심과 지식으로부터 '오달리스크'라는 그림이 완성되었다. 18세기 말부터 유럽에서는 동방 취미를 주제로 한 회화가 주제로 다뤄졌다.




당시에는 전문가들의 혹평을, 대중의 환호를 받은 작품:

대중의 사랑을 받아 온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당대에는 정통주의자들의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길게 늘어진 허리와 팔은 인체 해부학 적으로는 왜곡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것에는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는데,  그림의 여성의 풍부한 곡선미와 대담한 눈빛,  육체의 살결을 매끈하게 묘사함으로써 나른한 관능미를 발산한다.


이 작품 이후의 작품에서 그는 더욱더 큰 사랑을 받았는데, 〈샤를 7세 대관식의 잔다르크〉와 같은 대작을 완성했으며, 말년에 이르러 걸작 〈샘〉, 〈터키탕〉 등을 탄생시켰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샘> 은 오르세 미술관 기행 편에서 소개하고 싶다.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과 <샘>







4. 가나의 혼인잔치 (1563)

(파올로 베로네세)




〈가나의 혼인 잔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꾼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최초의 예수의 기적 이야기이다. 예수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제자들은 혼인잔치에 초대받았는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켰다.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인 가나안 혼인잔치 이야기를 담은 이 이야기는 어머니 마리아의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을 깨우쳐 주는 말씀으로 믿음과 순종하는 곳에 기적이 일어남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림은 한가운데에 옅은 후광을 두르고 있는 예수와 그 곁에 앉아 술이 떨어진 것을 염려하는 마리아의 모습으로나마 이 그림이 종교화 임을 간신히 알 수 있을 뿐, 화려한 옷을 골라 입고 모여든 사람들이 여흥 하는 모습을 담은 것 같다. 당시의 그림을 두고 종교재판관이 작품의 주제의 모호함과 불경함을 꾸짖자, 베로네세는 작품의 제목을 ‘최후의 만찬’에서 ‘레위 가의 향연’으로 바꾸었고, 비로소 형의 집행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경건한 모습에서는 조금 벗어난 이 그림으로부터 더욱 예수님의 특별함을 볼 수 있다. 음주가무를 즐기며 풀어져 있는 사람들 속에 예수님과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허리를 세우고 꼿꼿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곳에 온 목적이 있다는 듯, 예수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단 한 사람이기도 하다.







5.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1806)

(자크 루이 다비드)



실제로 마주한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은 그 크기가 주는 압도감이 있다. 실제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 그림은 아니라는 점이 의외라고 느껴질 정도로 어색함 없이 정교하고 사실적인 그림이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인물들의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주연급 인물들의 경우에는 사람 형상의 밀랍 인형까지 만들어 두고 작업했다고 한다.


본래 대관식이란 종교적인 의미에서 '교황'이 '황제'에게 왕관을 씌워 주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 그림은 나폴레옹이 아내인 조세핀에게 황후의 관을 씌워주는 모습이다. 의례적으로 행해졌던 이 형식은 암묵적으로는 교황이 황제에게 왕관을 씌워 주는 것은 세속의 왕권도 결국 교회에 복종해야 함을 세상에 다시 한번 천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실제 자신의 대관식에서 교황의 왕관을 손을 직접 받아 쓸 정도로 대담했다고 한다.



'황제의 대관식'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된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실제 모습과 행동 그대로 대관식을 표현하기에는 사회적으로 파장이 있을 것 같고, 나폴레옹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싫었을 것이다.
결국 대관식 장면을 황제가 아내에게 황후의 관을 씌워주는 장면으로 바꾸었고, 교황은 아무런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쪽으로 그려내었다.


다비드는 신고전주의의 대가답게 인물의 움직임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대신 차분하고 장엄한 톤으로 유지시켰다. 사실적인 모습이지만, 그 안에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는 다비드에게는 더욱 현실적이며, 이성적이었다.







6. 메두사호의 뗏목 (1818)

(제리코)




1816년, 프랑스의 대형 선박 메두사호는 세네갈 해안에서 조난을 당했다. 모든 이들이 구명선을 타지 못했고, 신분이 높지 못한 이들이나 군인들은 구명선에 뗏목을 연결하여 배에서 탈출한다. 그러나 곧 뗏목과 구명선은 끊어졌고, 뗏목에 의지하여 구조를 기다렸던 150명의 사람들 중 대부분은 망망대해에서 사망하고, 오직 열네 명만 13일 만에 구조되었다.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작가는 절박하고 극적이었던 상황을 세밀하고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치밀한 인체의 포즈들과 절망 속에서 수평선 멀리 구조선이 오기를 기다리다 환호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파도와 뗏목의 흔들림, 구름의 번지는 모습, 근육의 다양한 표현은 작가의 치밀한 제작과정을 말해준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림은 사실주의적이라기보다는 처절한 구조의 외침이 보이는 듯 감정적이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강인함을 이야기하는 고전주의적 그림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의 인간의 이성과 합리로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그 사람들의 감정과 호소에 집중해 보게 되는 그림이다.
이러한 인간의 내면, 열정, 정신적 강렬함과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감상적인 접근의 '낭만주의'.



따라서 이 그림은 이성과 합리를 중심으로 하는 신고전주의와 차별되는, 감정에 호소하는 낭만주의적 그림으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이미 죽은, 혹은 죽어 가는, 그리고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이들의 조각처럼 다부진 몸과 대리석처럼 창백한 피부 톤은 정확한 선, 이상적인 형태, 완벽한 채색을 강조하던 고전주의적 화풍을 떠올리게 하여 낭만주의적 감성과 고전주의적 정교함이라는 장점이 담겨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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