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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유 Mar 11. 2024

40대가 되어서야 조금 더 용감해진 것 같습니다.

영국 조기유학의 시작 : 에필로그


8월의 어느 날, 수요일 오후. 


캐리어 3개와 이민가방 1개, 카톤박스 3개를 이고 지고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날. 아이들 학교가 개학하기 불과 3주를 남겨놓은 날이었다. 집을 구하고, 이사 후에 이런저런 세팅을 미리 해 놓아야 함을 고려해 보면, 최대 2주 안에는 집을 계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매일 지출되는 임시숙소 비용도 무시할 수 없었음)


돌이켜 보면, 이때의 이런 계획들은 '무모'했달까 아니면 '무지'했달까? 나 홀로 있을 작은 방 한 칸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무려 아이들과 함께 지낼 '집'을 구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는 일이 '2주'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니... 그것도 연중 가장 핫한 부동산 시즌이라는 8월에...


무모했던, 무지했던, 어찌 됐든 '용감'했던 건 분명한 것 같다.


런던으로 들어오게 된 과정을 떠올려보면, 사실 용감하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다. 아이들 학교는, 9월 입학을 5개월 앞두고, 학교 접수 시기도 끝난 후에 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비자는 어떤가? 최근 한층 더 엄격해진 비자 규정으로 심사가 까다롭기로 이름난 영국 비자를, 전문 업체에 맡기면 마음이야 편해질 것을, 비용을 아껴보자는 명분으로 용감하게도 직접 신청했다. 아는 이 1명 없는 런던에 들어와서, 입국한 다음 날부터 집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학교를 알아볼 때도, 비자를 신청할 때도, 집을 보러 다닐 때도... 잠을 맘 편히 자 본 날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누구도 확실하게 이야기해 주지도,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Yes'라고 답을 받아 놓은 것 없이, 항상 결과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엔 용기 있는 자가 열매를 얻게 된다. 늘 그렇듯이.


나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정말 마음에 든다. 지난번 글에 농반 진반으로 런던은 워낙 월세가 비싸기 때문에,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 반 강제로 집순이 모드로 지낸다고는 했지만, 날씨가 조금이라도 좋은 날에는 굳이 런던 중심지까지 나가지 않아도, 집 앞 동네 산책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는 런더너 모드가 된다. 집 근처에 거의 모든 편의 시설이 있기도 하지만, 큰 쇼핑몰에나 가야 볼 법한 브랜드 매장들도 산책하듯 조금만 걸어 나가면 아이쇼핑 겸 둘러볼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현지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동네들을 다녀보며 지역마다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읽는 감을 키운 경험, 그리고 직접 집을 구하러 다녀 본 경험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 동네를 만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나의 40대가 좋다. 시간이 지나서 마주할수록, 나의 40대가 친근하고 믿음직스럽다. 지금까지 켜켜이 쌓여온 경험들이 만들어 준 내 40대라는 무게가 든든하다. 40대까지 달려오는 어느 한 시점에서라도, 힘들다고 풀썩 주저앉지 않았다. 조금 만만해 보인다고 가속을 내볼까 하는 욕심도 크지 않았다. 묵묵히 꾸준히 달려와 준 지금 이 모습이라면, 그리고 이 모습대로 지금과 같이 달려줄 수 있다면, 앞으로 다가올 나의 50대 혹은 그 이상의 시간들도 그렇게 불투명하거나 걱정스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열정으로 가득 찬 열혈 20대가 배낭하나 메고 떠나는 영국이 아니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40이 훌쩍 넘은 엄마가 런던으로 1년 살이를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대단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나의 말에 대부분은,


"어머, 어떻게 내가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에 가?"

"어머, 어떻게 남편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외국생활을 해"

"에이, 어떻게 영국에서 의사소통을 하며 생활을 해."

"에이, 어떻게 영국 가는데 학교며 비자며 집을 무슨 수로 혼자 구해?"

"어머, 이 나이에 그게 무슨 고생이야~"


'에이'를 지우고 '어머'를 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어떻게'부터 질문이 시작되고, 이것이 모든 질문의 시작이다. 질문이 생기면 답은 구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나 역시 주변에 누구 하나 문의할 사람도 업체도 없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으로 출발해 방법을 찾아보고 구해가면서 결국 런던에 들어오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할 수 있어?'가 아닌, '아무것도 없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더 이상 시작도 않고 포기하는 어린 내가 아닌, 도전하고 노력하면 결실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40대의 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제로 만들기 위한 과정은 생각만큼 대단하지도 엄청난 것도 아닐 수 있다. 내 아이디어를 조금 더 확장하기 위해 메모를 끄적일 노트북을 켜는 것, 궁금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어디론가 거는 전화 한 통. 이런 작은 시작들이 당신의 목표를 이루어 줄 수 있는 작지만 강한 불씨가 되어줄 수 있다.


중요한 건, 안될 거라 미리 단정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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