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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an 17. 2021

일곱 가지 즐거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을 춰야 하는 이유

뭘 그렇게 까지 열심히 해?


춤을 추면서 종종 길을 잃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댄서나 전문강사 등 직업적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함께 취미를 공유할 친구도 없는 것 치고는 너무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틀에 한 번씩 아침 연습을 하고, 더 잘하고 싶어서 조금씩 한계치를 밀어 본다. 춤추고 와서는 지쳐서 가족들과 말을 섞기보다 혼자 있고 싶다. 그러면 엄마는 어디서 자꾸 힘을 쏟고 지쳐있냐고, 집에서 좀 쉬라고 한다. '일을 하면 돈이라도 나오지, 춤을 그렇게 열심히 해서 뭐가 나오는데?' 엄마가 정의하는 행복한 일상은 일과 휴식의 균형인 듯하다. 




생산적인 즐거움 

       

배움에는 돈이 많이 든다. 연습실 대여비, 개인 및 단체 수업 수강료, 교통비까지 하면 적게는 10만 원에서 많게는 30만 원까지 쓰는 것 같다. 일주일 전, 1년 만에 개인 레슨을 받으러 가는 길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돈을 써도 괜찮을까? 배움이란 ROI (Return on Investment), 즉 투자 대비 결과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춤에서 난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지? 이 시간에 재테크를 하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나?'


수업을 끝내고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 달궈진 몸이 식지 않아서 롱 패딩의 지퍼를 풀었다. 발걸음이 가뿐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으니까. 몇 시간 뒤에 집에서 이 글을 쓰고, 폼롤러로 몸을 구석구석 풀면서 생각했다. 참으로 완벽한 일요일이라고. 비슷한 돈으로 친구들과 고급 훠궈 집에 가서 신선한 야채와 새우를 건져 먹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벅차오름이었다. 


폴 그레이엄은  Y-Combinator 창업자로,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 세계적인 스타트업을 인큐베이팅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흥미로운 에세이도 잘 써서 (프로그래머에 창업가에 글도 잘 쓰는 사기 캐릭터다), 몇 편은 국내 매체 및 브런치에 번역되기도 했다. 폴은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가(How to do what you love)'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일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1주, 한 달처럼 장기간에 걸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하라는 거지.  비생산적인 즐거움은 식기 마련이다. 해변가에 누워서 쉬는 것도 질리기 마련이다. 행복하고 싶으면 뭔가를 해야 한다. 


춤을 추면 행복하지만, 피곤하다. 사각거리는 이불속에서 뒹굴고, 친구와 깔깔대고, 달달한 초콜릿과 꼬북 칩을 늘어놓고 군것질을 즐기는 것이 훨씬 안락하다. 이런 행복들은 나를 배부르고 기분이 좋아지게 하지만 보람은 없다. 무엇보다도 익숙해지면 무뎌지는 성질의 것들이다. 종아리에 멍이 가실 날이 없지만 (내 무릎 파이팅!),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듯한 희열과 개운함을 얻는다. 배가 부를 때의 만족감과는 비할 수 없는 마음이 꽉 차는 이 기분. 잘하고 싶어서 쏟는 노력과 비용의 결과가 경제적인 이익으로 돌아 오지는 않아도, 행복을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취미 임은 분명했다.  




춤이 내게 가져온 변화들 


무엇보다도 춤을 추고 난 뒤 내게 찾아온 작은 변화들이 마음에 쏙 든다.


1.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게 된다. 스쿼트와 플랭크는 끔찍하게 지루하기 때문에 원래 같으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다. 그러다 보니 억지로 하거나 잘 안하게 됐다. 하지만 안무를 소화해 내려면, 몸을 지탱해주고 균형을 잡아주는 코어와 다리 근육이 절실했다. 그래서 올해와 작년은 여느 때보다 꾸준히 근력운동을 하고 있다. 춤을 추지 않았다면, 나는 매일 5분씩 심으뜸 트레이너님의 카운트에 맞춰 스쿼트와 플랭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기 위해서는 절대 달성하지 못했을 습관이다. 10대 때보다도 근력은 향상된 것 같다. 나는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고, 자판을 많이 치기 때문에 몸이 잘 굳는다. 춤을 추고 몸의 감각에 예민해지다보니, 쉬지 않고 근육의 긴장을 풀고 자세를 교정하게 된다. 


2. 음악을 보다 입체적으로 듣게 되었다. 한 음악에는 드럼, 베이스, 건반 등 여러 사운드가 겹쳐져있다. 춤은 비트와 음악의 요소들에 맞춰서 몸으로 표현하기 것이기 때문에 음악을 섬세하게 들어야 한다. 이 가사를 어떻게 동작으로 표현하지? 노래의 질감은 어떻지? 이 드럼 소리는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더 깊숙이 음악을 즐길 수 있다. 


3.  내 안에 있는 감정을 풀어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마치 외국어 혹은 연기를 하는 것처럼 다른 자아를 쓰는 기분이다. 불을 끄고 몸이 가는 대로 거울도 보지 않고 춤을 추다 보면, 꿀꿀한 마음도 개운하게 내려간 적이 많았다.


4. 일과 거리를 둘 수 있다. 음악을 듣는 것도, 글쓰기도 좋은 취미지만 일터에서 나를 떼어놓을 정도로 열정이 강력하진 않았다. 그런데 춤은 너무 좋고 잘하고 싶어서, 내 인생에서 회사에서의 본업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5. 집중력 향상에 좋다. 동작을 외우고 이해하고, 박자에 맞추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력을 써야 한다. 일을 할 때보다 시간의 밀도가 촘촘해진다.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집중하는 것도 있다. 인생의 한 순간이라도 이렇게 몰입해서 쓴다는 것이 만족스럽다.


6. 춤을 배우는 데는 비용이 들지만, 추는 데는 나만의 공간 한 평만 있으면 된다. 4000원이면 1시간 동안 연습실을 빌릴 수 있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커피 한 잔 값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법이기도 하다. 


7. 춤을 추고 나서 나 자신이 더 좋아졌다. 조금 더 친해진 기분이랄까. 바깥 세계를 탐험하고 다니기보다, 내가 어떻게 나만의 것을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나를 차곡차곡 단련시켜나갈지 고민하게 됐다. 춤추는 나는 내가 아는 나 중에 제일 힙하기도 하다 (ㅎㅎ). 나는 5살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지만, 어떻게 표현할지를 몰랐었다. 춤을 추면, 그런 다섯 살의 나로 돌아가, 하고 싶었던 마음을 꽉 채워사는 기분이다.




 춤은 내 삶에서 중요한 한 축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조금 더 건강하고 단단해졌다. 정신없이 땀을 흘리고 나면, '왜 살지', '뭘 위해서 열심히 살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린다. 춤에 대해서 쓸 때면 이렇게 길고 진심되게 쓸 수 있어서, 설레는 마음을 글에 담을 수 있어서 감사해진다.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건 세상에 많지 않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도 소중한 소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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