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내는 법

모든 날이 여름

by 하니Hani

─ 나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케이였다. 문자 연락을 좋아하지 않는 그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갑자기 보낸 그 한마디는 순식간에 나를 멈춰 세웠다. 근 8년간 병간호하던 케이가 엄마를 떠나보내고 고작 몇 개월 만에 맞는 어머니의 날이었다. 뭐라도 말하고 싶었다. 엄마를 잃은 마음, 그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케이와 달리 엄마와 가까워 본 적도, 엄마가 돌아가신 적도 없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마음을 나눠 들어 줄 수 있을 만큼 힘이 센 말이 내게는 없었다.

─ 너희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셨던 음식 그거, 게살 카놈찐이나 먹으러 갈까?

모르겠다, 왜 무언가를 먹어서 누군가를 애도하려 했는지 혹은 누군가를 위로하려 했는지.

─ 응, 좋아! 잘하는 집 알아.

다행히도 케이는 기뻐 보였다.


다음 날 점심, 케이와 만나러 가는 길 내내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고민해봤지만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케이는 언제 이 음식을 엄마랑 먹었을까, 엄마가 집에서 만들기도 하셨던 음식인가, 오히려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 앞에서 더 슬퍼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피 하니~ (하니 언니~)” 케이였다. 언제나처럼 어깨 정도까지 오는 단발머리를 쫑긋 묶고 옅은 미소를 띤 모습이었다. 해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윤이 났다. 늘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눈을 하고 있지만, 통통한 볼살이 그가 아직 엄마를 여의기에는 어리다는 걸 실감케 했다.


처음 가 본 식당에는 이미 어머니의 날을 축하하러 나온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가득했다. 다른 가족들을 보는 게 속상하겠다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야, 간밤의 내가 원망스러워졌다. 다행히도 나의 자책은 오래가지 않았다. 케이는 들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생전에 엄마가 즐겨 드시던 게살 카놈찐을 맛있게 먹어 치웠다. 나도 그 앞에서 곧잘 웃으며 그릇을 비웠다. 카놈찐은 게살 때문인지 짭조름하면서도 은은하게 달았고, 여러 채소가 어우러져서 향긋했다. 갓 쪄서 나온 소면을 게살 소스에 비벼 먹으니, 케이의 엄마가 왜 그렇게 좋아하셨는지 단숨에 이해됐다.

“살락, 이 과일 뭔지 알아? 그걸로 만든 디저트도 먹어볼래? 우리 엄마 이것도 좋아했어.” 여전히 위로에는 영 젬병인 나는 디저트를 시켜 놓고, 케이가 하는 엄마 이야기를 좀 더 들었다. 신나서 이야기하는 케이의 목소리에는 녹진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많이 보고 싶지, 라고 묻는 건 어리석게 느껴져서 나는 디저트만 열심히 먹었다.

밥이라도 같이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케이가 자연스레 풀어 헤쳐 놓는 엄마의 기억이 식탁을 가득 채워서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몇 끼나 먹어야 할까? 이런 밥을 몇 번이나 먹으면 몇십 년 동안 나를 키워준 사람을 보낼 수 있을까?


*

우리가 만난 것은 케이의 엄마가 마지막 투병 생활을 하시던 해였다. 급하게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고, 케이는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원을 다녀온 날이면 케이는 엄마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그럴 때면 그는 늘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갔다. 엄마가 병원에 꼼짝 없이 누워 계시기 훨씬 전으로, 누구보다 정력적으로 일하고 어린 케이와 신나게 놀아줬던 시절로.

케이의 엄마는 현장에서 인부들을 관리하고, 커다란 차를 몰고 다니고, 케이한테 운동을 가르쳐 주거나 함께 뛰어놀았다.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하거나 형제들, 옆집 사는 사촌들까지 모두 함께 캐치볼이나 원반던지기를 하며 놀았던 추억이 무수히 많았다. 케이가 그려주는 엄마의 모습은 언제나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힘이 넘쳤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케이가 엄마를 항상 아프고 돌봐줘야 했던 사람으로 기억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안심됐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손꼽은 시절에 엄마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다. 기둥 같았다던 존재는 사라졌지만, 함께했던 시절이 남아 케이를 붙잡아줄 것만 같아서였다.


*

그 후로도 케이는 종종 돌아가신 엄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얼마나 실감 나지 않는지, 얼마나 자주 싸웠었는지, 그런데도 여전히 얼마나 그리운지.

“이제는 다시 싸울 수도 없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돌아가시는 날, 딱 하루, 그날 끝인 거야.”


케이의 이야기를 자주 들을수록 엄마를 생각하지 않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모든 게 다 끝나기 전에 내가 엄마에게서 정말 알고 싶은 건 과연 무엇일지 그런 질문 근처를 자꾸 맴돌게 됐다.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도 몇 번이나 나를 버릴 건지, 후회하지는 않는지, 진심으로 미안한지, 그런 걸 알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장 알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어른이 되고 더 이상 다치고 싶지 않았던 내가 선을 그어 우리 못 보고 살았지만, 그래도 당신, 한 번이라도, 언젠가는 나를 사랑했냐고.


나는 네가 정말 싫어.

엄마가 나를 향해 절규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머리로 기억한다기보다 피부가, 뼈가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엄마의 표정, 눈빛, 목소리, 치를 떨며 토해내던 가쁜 호흡과 단단히 쥔 주먹, 거기에 배 있던 분노와 증오. 20년이 다 되어가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조각들. ‘경멸’이라는 단어가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 알았다. 나를 경멸하는 최초의 사람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날, 심장이 부서지는 것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다른 때처럼 가슴이 쩍 갈라져 하루 종일 아리지도 않았다. 그저 심장이 사라진 것 같았다. 한순간 엄마가 내 심장에 손을 뻗어서 쏙 빼간 것처럼 있었던 무언가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주 텅 비어버린 느낌이 들었을 뿐이었다.

아빠를 빼닮은 내가 견디기 힘들었을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 마음을 알아도, 그게 전부다. 그 마음을 알지만, 괜찮아지지는 않는다.


세상 누구보다 자기를 사랑해 준 엄마가 곁에 없어서 힘든 케이가 더 괜찮은 건지, 엄마가 죽어도 실상 변할 게 없을 내가 더 괜찮은 건지 헷갈린다. 사랑하는 이의 물리적인 죽음 옆에 나의 결핍을 비스듬히 견주어보는 일이 죄스럽다. 친구의 마음만 쓰다듬어 주고 싶은데 끝내 내 마음을 보지 않고서는 넘어가지 못하는 내가 싫다. 엄마 없이 큰 것도 모자라 죄의식과 자기혐오까지 느껴야 한다는 게 억울하다. 그녀 없이 살기로 한 결정은 받아들였는데, 그녀의 죽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깨달음이 현실로 스며드는 느낌이 불쾌하다. 사실 그 둘은 같은 결정이었던 걸까. 엄마를 그저 그리워하기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엄마가 죽어서도 내 어떤 부분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예감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니야, 나는 이미 오래전 나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엄마가 죽으면 나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지? 나는 그녀의 많은 것을 모른다. 나는 그녀를, 모른다. 모르는 사람의 죽음은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 거지. 애도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야, 나는 이미 오래전 나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케이는 엄마를 보내줄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엄마도 편안해질 거고 나도 편안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했다고. 그런데 아니라고, 후련하지가 않다고.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단 한 번도 후련하지는 않았다. 눈, 코, 입,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만들어준 사람, 아직도 보내지 못했다.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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