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이 여름
치앙마이에 살면서 해본 좋은 경험 중 하나를 꼽으라면 엽서를 받은 일을 택하겠다. 처음 엽서를 받은 건 철새처럼 한국과 치앙마이를 오가며 지내던 때였다. 그때는 어차피 길어봤자 3개월마다 한국에 돌아오니 치앙마이에서 엽서를 받을 거라는 기대조차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관리실 직원분이 나를 보자마자 대뜸 편지 왔어요, 하시며 엽서 한 장을 내미셨다. 오래된 친구가 한국에서 보내온 엽서였다. 높게 솟아오른 남국의 태양이 엽서 앞면의 눈 덮인 후지산 위로 쏟아졌다.
너무 오랜만에 글씨를 써서.. 내 글씨가
이랬나 싶을 정도로 낯선 내 글씨체..
특별한 내용을 쓸 수 없을 작은 공간이지만,
타지에서 우편물을 받는다는 것이
작은 즐거움이 되리라 믿기에 엽서를 보냅니다.
엽서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후에 어떤 중요하거나 대단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다. 친구는 그가 앞서 적은 대로 특별한 내용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공간에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몇 줄 적어 보냈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본 편지도 아닌데, 그게 어찌나 기쁘고 신나던지. 밥 먹으러 가던 길이라는 사실도 잊고, 똑같이 생긴 엽서를 똑같은 배경에다 놓고 사진을 연거푸 찍었다.
카톡이나 DM으로 하고 싶은 말을 순식간에 전할 수 있는 이런 시대에 손으로 쓴 엽서라니. 함께 하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에 나를 떠올려주었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다. 마음에 드는 엽서를 고르고, 오랜만에 펜을 잡고, 글씨를 꾹꾹 눌러쓰고, 주소를 적고, 우체국에 가서 대기표를 뽑고, 우표를 붙이고, 마침내 엽서를 부쳤을 모습을 하나하나 찬찬히 그려봤다. 엽서 잘 받았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아니, 근데 엽서 잘 가고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스칠 때도 있지 않았을까. 손바닥만 한 종이에 녹아 있는 시간과 정성에 손바닥만 한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소인이 찍힌 엽서를 받는 일은 정말이지 근사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푸르른 하늘이 그날따라 더 새파랗게 빛나 보였던 건.
거꾸로 엽서 보내기는 그렇게까지 근사하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조금 괴로운 면이 없지 않았다. 그건 너무나도 비일상적이고 무지하게 소중하고 로맨틱해서 결과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되었다. 보자마자 감탄이 나올 만큼 귀엽고 예쁘면서도 치앙마이스러운 엽서를 고르고 싶었고, 친구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아니면 적어도 읽으면서 그리움에 눈물을 글썽거릴 아름다운 편지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스포일러를 하자면, 당연히 성공하지 못했다.
아무튼지 간에 치앙마이 시내를 돌며 평소라면 가지도 않을 기념품 가게를 여러 군데 뒤진 끝에 그나마 봐줄 만한 엽서를 고르고,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나는 희한한 소리를 적고, 우체국을 찾아가서 엽서를 부쳤다. 엽서가 어디서 미아가 된 건 아닐지 얼마간 걱정해 놓고는 막상 잘 받았다는 친구의 메시지를 보니 안도하기보다는 쑥스러워졌다. 어쩐지 창피하기도 하고 더 잘 써볼걸 하는 후회도 남았지만, 그가 기뻐하는 모습에 역시 우체국은 자주 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엽서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엽서를 받는 일만큼이나 귀했다.
해가 바뀌자, 한국에서 엽서를 보내줬던 나의 오래된 친구는 캐나다의 소인이 찍힌 엽서를 보내왔다. 아주 사소했던 편지는 이제 약간은 붕 뜬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커다란 격려를 담고 있었다. 캐나다는 가본 적이 없다 보니 엽서를 쓰는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지금 날씨가 어떤지, 노을은 무슨 색일지, 주위에 어떤 생김새의 사람들이 어떤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을지, 커피 맛이나 향은 어떨지, 그 속에서 친구는 어떤 표정일지 그런 자잘한 일상이 하나도 그려지지 않았다. 이제 진짜 지구 반대편만큼 멀어졌구나, 소인을 만지작거리며 우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실감했다. 작년에 엽서를 받았을 때처럼 반갑고 기뻤지만,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친한 친구가 다른 대륙으로 떠난 게 처음도 아니고, 이제는 나도 다른 나라에 있으면서 아직도 이런 일에 이렇게 착잡해하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그렇다 해도 슬퍼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자질구레한 일상도 조금은 알고 싶은 마음도 어쩔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듣는 짝꿍의 졸린 목소리, 커튼을 젖혀서 확인해 보는 날씨, 경비 아저씨와 나누는 눈인사, 한참 고민하다가 매번 똑같은 메뉴를 시켜 먹는 저녁, ‘졸려’ 같은 별 중요하지 않은 말이 오가는 대화창, 오다가다 보는 빨갛고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 매일 그런 반복을 하다 보면, 결국 산다는 게 그냥 이런 거구나 싶어서 그랬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이 쌓여서 한두 해가 지나고, 정신 차려 보면 어느 날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곤 해서 그랬다. 그렇게 각자 다른 사람이 된 친구 둘이 여전한 사이로 지낼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어서⋯.
종종 어른의 우정에 대해서 소원해져도 어렸을 때보다 서로 더 잘 이해하고 보듬게 된다고, 보지 못해도 마음만은 엄청나게 가까워진다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조금 잊고 산다, 정도다. 밥 먹듯이 야근하고, 피곤해서 소파에 묻혀 주말을 보내고, 아이가 하나둘 태어나서 자라고, 일을 하면서도 뭐 해 먹고 사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전보다 병원에 자주 가게 되고, 어쩌다가 다른 나라에 가서 살게 되기도 하다 보면 조금 잊고 산다고. 그러다 문득 떠오르고, 그리워지고 그렇다고. 그래서 조금 쓸쓸하고 외롭고 서글퍼도 누군가는 치앙마이에 가야 하고, 누군가는 캐나다에 가야 한다고.
나에게는 나의 인생이 있고, 친구에게는 친구의 인생이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 갈 길을 간다. 어쩌면 어른의 우정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앞만 보고 뚜벅뚜벅 가던 친구가 가끔 뒤를 돌아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해야 더 정확하려나. 언제부터 몇 번이나 뒤돌아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처음 뒤돌아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는 눈빛으로, 그렇게 서로 눈 마주치는 날을 소망하는 마음이랄까. 아, 그럼 어른의 우정은 그런 기다림이던가.
얼마 전, 읽다 만 책을 오랜만에 펼쳤더니 친구가 보낸 엽서가 책갈피 대신 끼워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친구가 어색해하며 눌러썼을 글자를 쓰다듬어 보았다.
너무 오랜만에 글씨를 써서.. 내 글씨가
이랬나 싶을 정도로 낯선 내 글씨체..
뒤를 돌아봐준 친구가 거기에 있었다.
이제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여름이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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