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는 "지금 사귀는 남자친구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에 나갈 거야."라고 했다. 해가 바뀌고 그와 이별했지만 병원에 누워계신 엄마를 두고 장기간 해외 생활을 한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 해외 생활은 잠시 접어두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한국이 아닌 타지에 머무를 때 엄마를 잃었고, 정신없이 한국에 돌아와 장례를 치른 후 나는 바로 중국으로 갔다.
중국으로 간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아빠에게는 "중국이라는 세상을 보고 오겠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태국에서 중국 남자를 만났고 상실의 슬픔을 그의 따뜻한 애정으로 채우면서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베이징에서 1주일, 상하이에서 1주일을 보낸 후 그와는 여기까지 인 걸로 결론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그 여행 덕에 한국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더 커져만 갔고 나는 상하이의 한 대학교 어학연수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대륙을 선택한 건 단순한 이유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통화(만다린)를 쓰는 대표적인 두 나라, 중국과 대만 중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에게 경제적으로 이득을 줄 것 같은 곳이 중국이었다. 한국에서는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기를 강요받는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때로는 무법천지 같고, 때로는 공상과학소설에 나올 것 같은 중국, 그중에서도 서울처럼 편리하고 안전하지만 세련되고 멋스러운 상해가 내가 가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어학연수 등록 과정을 한 달 넘게 진행하면서 몇 가지 걱정되는 것들이 남아있었다.
- 만약 다시 코로나처럼 전염병이 번진다면?
-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간첩으로 몰려서 감옥에 끌려간다면? (중국 입국 시 외교부에서 자동으로 보내는 반간첩법 관련 문자에 괜히 쫄았음.)
-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커온 내가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까지 완벽한 사람들이 넘쳐날 텐데 나는 무슨 차별점을 가질 수 있지?
- 상해 집세를 감당할 수 있을까?
12년 전 중국 시골 도시에서 교환학생을 보내고 너무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상하이가 아니면 절대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 때문에 상해의 물가와 집세 그리고 그에 반비례하는 임금 수준이 주요 걱정 중 하나였고, 또 하나의 걱정은 한 국가가 사회를 아주 단단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친구는 "중국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만 빼고 다할 수 있다."라고 했지만,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구분도 잘 못할 것 같은 불안이 차올랐다.
그렇지만 딱히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중국어를 쓸 수 있는 해외에서 살고 싶고, 해외 취업까지 염두에 두었을 때 글로벌 기업들이 많은 대도시로 가야 했고, 도시 자체가 아름답고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그런 분위기를 찾자니 상하이뿐이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쿠알라룸푸르를 만났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첫날 상상하지 못한 풍경에 고개가 자꾸만 돌아갔다. 으리으리한 건물들과 그 건물들을 바라보며 길가에 늘어진 노점들, 푹푹 찌는 바깥 날씨와 다르게 냉기가 느껴지기까지 하던 쇼핑몰. 중동 음식부터 중국 음식, 말레이시아 음식, 인도 음식 뭐 하나 할 것 없이 제대로 만들고 있는 듯한 느낌. 게다가 물가가 서울보다 저렴하지만 드라마틱하다기보단 70~80% 정도로 기분 좋게 저렴했던 것도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데 한몫했다. 물가가 한국보다 너무 차이나는 곳에 가면 소시민이 괜히 부자 코스프레 하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지곤 했는데 쿠알라룸푸르는 정말 딱 적당했다. 술 값이 물가에 비해 상당히 비싼 게 슬펐지만 건강을 위해선 그것마저도 좋은 일이었을 거라며.
조호바루에서 3주 정도 지내면서 그저 한 나라의 수도니까 가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쿠알라룸푸르에 왔는데, 정작 조호바루에서 지냈던 날 보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보낸 3일이 훨씬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결국 조호바루로 돌아간 지 하루 만에 모든 짐을 싸서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갔다.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티켓까지 바꾸면서 말이다.
조호바루에서 쿠알라룸푸르까지 버스로 다섯 시간, 그리고 바로 2시간 정도 떨어진 이포에서 하루. 다시 2시간 정도 더 달려 페낭에서 하루를 보내고 쿠알라룸푸르로 돌아와 삼일을 더 보낸 뒤 한국에 돌아왔다. 고작 5박 6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상하이에 가야지'라고 생각했던 마음은 점점 작아지고, '쿠알라룸푸르에서 살아볼까?' 하는 마음이 커져만 갔다.
하지만 상하이에 가기 위해 준비했던 것들을 취소하고 다시 쿠알라룸푸르를 위해 준비하는 일들은 꽤나 복잡했기 때문에 단순히 '지금 여기가 좋아!'라는 생각으로 행동에 옮기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상하이가 아니라 쿠알라룸푸르야?'
첫 번째. 중국어를 쓸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모여서 산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많이 쓴 언어는 영어, 그다음엔 중국어다. 물론 내가 말레이어를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느 상점에 가든, 식당에 가든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고 화교 사람들을 만나면 중국어로 소통하는 것도 문제없었다. 영어와 중국어를 네이티브로 구사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한 언어에서 막힐 때 다른 언어로 빠르게 바꿔서 설명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말레이시아에서 말하고 지내는 게 참 즐거웠다.
말레이시아 사람들도 다양한 언어를 섞어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화교 사람들도 자신들의 언어와 영어를 섞어 쓰거나, 말레이어를 섞어 쓰기도 하고 또 말레이어와 영어를 섞어서 쓰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말레이시아 화교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게 정말 너무 신기했다. 영어와 말레이어, 중국어와 광둥어 혹은 민난어 등.. 별의별 언어들이 다 들린다. 다양한 민족이 있는 만큼 언어가 도구의 역할을 정말 충실히 한다는 걸 느낀 곳.
두 번째. 대도시의 편리함을 느끼면서도 생활 물가가 부담스럽지 않다.
외국인, 여자, 싱글 이 세 가지를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 주거 지역을 구할 때 더 꼼꼼하게 보게 된다. 혼자 사니까, 여자니까, 외국인이니까 좀 더 번화하고 안전하고 사람들이 많으면서도 깨끗한 그런 지역에 사는 것이 마음에 놓이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쿠알라룸푸르의 집세는 대도시임에도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예를 들어 한화 백만 원의 월세로는 상하이나 서울 도심에서는 작은 원룸 하나를 구할 수 있다면, 쿠알라룸푸르에서는 24시간 시큐리티가 있는 1.5룸의 콘도에서 지낼 수 있다.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말이다.
취업 비자가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돈을 쓰기만 해야 하는 시기가 분명 존재하기에, 수용가능한 물가 수준이 쿠알라룸푸르로 마음을 더 움직이게 했다.
세 번째. 중국어와 영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으로서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믿는다).
저렴한 물가 덕분에 많은 글로벌 기업이 서비스 운영팀 등을 쿠알라룸푸르에 베이스를 두고 꾸리고 있다는 걸 들었는데, 링크드인이나 한인 커뮤니티의 구인 공고를 보니 네이티브 코리안 스피커를 구하는 경우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임금 수준은 내가 서울에서 받는 것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도전할 수 있는 돈벌이 수단'이 있다는 게 어딘가. 게다가 나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영어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한국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조선족이 많은 대륙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믿기로 했다.
물론 나는 고작 3주간 말레이시아에서 지냈고, 겨우 일주일 동안 쿠알라룸푸르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판단들이 섣부를 수 있다는 걸 안다. 사람마다 경험하는 게 다르고,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는 걸 충분히 알기에 혹여나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 '어? 저건 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그저 내가 내린 결정을 뒷받침하는 개인적인 의견 정도로 받아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물론 가기 전에 마음에 걸리는 것들도 있다. 말레이시아어를 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말레이시아어를 배울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것. 인터넷에 찾아보니 보통 인도네시아어를 먼저 공부하고 말레이시아어를 습득하는 경우가 많더라. 한국에서 멀다는 것. 비행시간이 6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건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대만에 살 때처럼 1박 2일로 오갈 수 있는 그런 느낌이 아닌 거다. 그리고 이슬람교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 이슬람 문화권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것들을 지켜야 하고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잘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기 때문에 여러 문화들을 조금씩 배우고, 이해하다 보면 존중하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2013년 11월, 무작정 대만으로 떠났던 것 이후에 이렇게 또 계획 없이 떠나는 건 처음이다.
그때도 잠 잘 곳과 공부할 곳만 정해놓고 비행기표를 사서 대만에 갔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4개월간 머무를 집을 계약했고, 어디 어학원을 다닐지 언제쯤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할지만 대략적으로 계획한 상태에서 곧 쿠알라룸푸르로 떠난다.
내가 좋아하는 엘라 님(@fromellatoyou)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Q&A의 한 부분 덕분에 오늘 이 글을 용기 내어 쓰게 되었다.
그 Q&A에서 현재의 본인을 만들기까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뭐냐는 질문에 엘라 님은 '목표 공유'라고 답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공유하면 그것에 힘이 생긴다는 것. 어쩌면 같은 개념으로 나도 말의 힘을 믿기에 나의 이야기를 잘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워낙 변덕이 심해서 혹여나 바뀌면 어떡하지? 이 생각도 있었고, 어차피 조언이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굳이 다른 사람에게 공유할 필요가 있나?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무엇이 있나? 이런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새로운 챕터를 열기 위해 새로운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지금, 조금 더 새로운 내가 되고자 글을 썼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뛰어들지만, 꼭 올해 안에 쿠알라룸푸르에서 워킹 비자를 받고 취직을 해서 나의 새로운 터전을 만드는 걸로. 20대의 나에게 대만이 있었고 그 대만에서의 경험으로 지금까지 잘 살아올 수 있었기에, 올해의 나는 쿠알라룸푸르에 나를 걸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 경험들로 30대를 재미나게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