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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Jun 09. 2018

무엇이 마케터이고 마케터가 아닌걸까?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 사심(4心)살롱에 다녀와서



메일을 썼다. 옛 애인에게 돌아와달라고 붙잡는 구구절절한 메세지마냥 하소연했다.

[부디 브랜딩과 마케팅 업무까지 도맡아야하는 불쌍한 스타트업의 오퍼레이션 매니저를 가엽게 여기시어..]

세미나는 끝까지 열리지 않았지만 기대하지도 않았던 사심(4心) 살롱에 추가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역시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퍼블리 만세!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말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사람의 수와 수다의 양은 반비례한다) 들어서자마자 다들 어쩜 그렇게 따뜻하신지 밝은 미소로 반겨주어 경계심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4명의 브랜드 마케터가 호스트가 되어주어 벽면, 테이블 위를 하나 하나 꾸며놓았다.

각자가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음악. 각자가 좋아하는 식당.

책상위에 올려둔 호스트들의 취향에 다들 자신들의 이야기로 어색함을 풀어낸다.



오프닝에서는 1분의 시간 동안 자신을, 다른 1분의 시간엔 자신의 취향을 소개했다.


각자의 명함 위에 쓰여진 단편적인 정보보다 더 재미있었던 건 그들의 분명하고 확실한 취향.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아끼고 좋아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저는 일본 문구류를 참 좋아해요. 특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180g에 사각거리는 종이예요.

-제 옷들은 거의 다 빨간색, 검은색, 하얀색이예요. 특히 빨간색을 무척 좋아해요

-프라이탁을 좋아해요. 프라이탁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프라이탁을 좋아했어요.

-한옥을 좋아해요. 한옥에서 정서적 안정을 느껴요.

-아이유❤️


모두가 오래도록 자신을 행복하게 해온 존재들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바로 카메라와 컴퓨터.

살아 움직이지 않는 것들 중 유일하게 내가 아끼는 것들인데 그 이유는 나의 살아있는 감정과 생각을 그 순간에 정지시켜 오래도록 기억하고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기록하고 담아 주기 때문.


물론 카메라와 컴퓨터를 들고 오려면 거의 분당에서 혜화로 이민을 오는 기분이 들 것 같아 디지털로 기록한다는 의미를 가득 담아 애플 펜슬 한 자루를 들고왔다.




저자들이 이야기 하고 싶은 각자의 취향 혹은 사전에 받은 질문에 대한 대답.

즉석에서 자유롭게 주고받는 질의 응답으로 살롱은 진행되었다.


손목을 다쳐 글씨를 쓸 수 없게 된 덕분에 처음부터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대신 말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그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하는지 느끼려고 노력했다.


배달의 민족 마케팅실 '의리북스' @퍼블리셔스 테이블

배달의 민족 마케터 숭 님. (@lovebrander)

숭님의 이야기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부터 출발했다.


어떻게 경험을 컨텐츠로 만들어내시나요?


저는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그 기간동안은 그 프로젝트만 생각을 해요.
일요일에 교회를 가더라도 어느 부분에서 프린트물을 나누어주고 어떤 동선으로 입장하는지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아요.

마케터적인 관점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는것 같아요.
경험을 쉬면서 하지 않고 계속 일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심리검사에 나오더라구요.


숭님은 5박 6일간의 도쿄 여행에서 90건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했고 그것을 한 곳에 모아 독립 출판물 '인스타하러 도쿄 온건 아닙니다만' 을 내셨다. 나는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직접 방문하여 이 책을 구입하였는데 도쿄를 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책 뒷 편에 그녀의 메모장 캡쳐본도 함께 들어있었는데 숭 님이 어떻게 메모하는지가 궁금해 그 책을 데려왔다.


가볍게 쉽게 빠르게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기록하는 것.

이동하는 시간에 블로그를 작성하고, 여행지에서는 다 씻고 누워 자기 전에 인스타를 한다.

바로 찍고 바로 기록한다. 그것이 숭 님의 다양한 컨텐츠의 비밀이었다.


그 외에도 공감하는 부분은 자신만의 다양한 미디어 채널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숭님은 페이스북, 인스타, 유투브,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를 다양한 역할로 활용하고 계셨다.



스페이스 오디티 마케터 혜윤 님. (@alohayoon)


듣는 내내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던 버닝맨 이야기.


서울 중구보다 더 넓은 사막에서 서울 종로구의 절반이 되는 인구가 모인다.

일주일간 그 사막은 하나의 거대한 도시가 된다. 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마치 영화 매드맥스에 나오는 황량한 사막을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색깔로 꾸며내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불태우고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아무것도 없었던 곳으로 되돌려 놓고 떠난다.


에어비엔비, 카우치 서핑, 구글 등 많은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그 곳을 방문하고 영감을 얻는다.

그 곳에는 열가지 원칙이 있는데 혜윤님은 그 모든 원칙이 스타트업이나 브랜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시며 그 중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열 가지 원칙에는 Radical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근본적인' 이라는 뜻 이외에도 '급진적인', '과격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나아가 행동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Radical Self-reliance

Burning Man encourages the individual to discover, exercise and rely on his or her inner resources.

 

모든 것과 단절되고 그 안에서 일주일동안 살아나가야 한다. 한낮의 사막은 당장이라도 타죽을 것처럼 뜨겁지만 해가 지면 그 더위는 온데간데 없고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춥다. 모든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 본인이 준비하지 않으면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본인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그 준비와 결정을 믿고 실행하는 것은 버닝맨 뿐만 아니라 업무에서도 적용된다. 버닝맨에서는 나의 내면에 집중하여 스스로를 믿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계기를 준다.


Radical Self-expression

Radical self-expression arises from the unique gifts of the individual. No one other than the individual or a collaborating group can determine its content. It is offered as a gift to others. In this spirit, the giver should respect the rights and liberties of the recipient.


페스티벌엔 라인업이 있고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사람과 댓가를 지불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두 가지 부류가 존재한다. 버닝맨은 페스티벌이 아니다. 버닝맨에는 구경꾼이 없다. 모두가 구성원이 된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옷을 입지 않거나 혹은 신기한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본인을 드러낸다.

 

자신있게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힘을 얻는다. '내가 어떻게 해?'라고 주춤하지 않고 과감하게 드러내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그 안에서 힘을 얻는다.


계획한 모든 것들이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곳. 버닝맨.

내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참여하느냐에 따라서 얻어올 수 있는 것이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혜윤님의 이야기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버닝맨 뽐뿌를 일으켰다.


(버닝맨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혜윤님 브런치 글을 참고해주세요)


https://brunch.co.kr/@yoonash/102




에어비엔비 마케터 하빈 님. (@habiyam)


에어비엔비가 없는 유일한 지역은 분쟁지역이라고 한다.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을 제외하면 예상하지도 못한 산골에도 에어비엔비가 존재한다.


에어비엔비는 이웃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낯선 타지의 사람들과 만나게 해주어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해준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바로 여행의 본질이 무엇인지 잊지 않게 해주는 것. 단순히 타인의 여행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의 사람들과 이어주는 것.


저는 에어비엔비에 입사해서 성격이 많이 달라졌어요.

 경쟁이 당연한 줄 알았던 우리 사회에서 에어비엔비는 하빈님을 본질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에어비엔비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구성원과 함께 독서하고 토론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신다고 하는데 그런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녹아드는 것 같다.


그 곳을 그 곳 자체로 느끼기 위해 노력했던 스위스 여행 이야기가 특히나 기억에 많이 남았다.

여행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라고는 그 곳에 대해서 위키피디아를 열심히 읽고 간 것.


스위스는 외세의 침략도 없었고 경쟁없이 평화롭게 자라왔기에 젊은이들은 그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고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외부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식문화도 자연스럽게 발달하게 되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으니 스위스의 음식들은 감자, 치즈, 스테이크 등의 단조로운 요리들이 많단다. (이런 사전 지식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이 맛집에 꼭 가서 이 진수성찬을 먹고 오겠어! 하는 욕심이 줄어드는게 아닐까?)


구글 지도의 식당을 클릭하고 그 식당의 별점을 확인한다. '4.5점이네?' 리뷰가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4.5점까지는 아닌 것 같은거다. 그럼 '이 집 별로네?'가 아니라 '내 입맛이 이상한건가...'하고 타인이 세워놓은 별점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다른 사람의 취향과 그들이 지금이 아니라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따라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트레바리 이육헌님의 취향

트레바리 마케터 육헌 님. (@haeegri)


육헌님은 이야기를 시작하시기 전에 잡지를 주섬주섬 꺼내셨다.


그 달 그 달 본인의 취향에 맞게 여러 권을 구입하신다는 육헌님은 지큐, 에스콰이어같은 남성지 이외에도 코스모폴리탄, 매거진 B, Oh Boy! 등을 챙겨오셨다. 그 중 내 눈에 뛴건 바로 GO OUT. 야외활동하기 좋은 날씨가 되면서 아웃도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구매한 아웃도어 매거진. 눈에 확 들어오는 색상 조합이 마음을 싱그럽게 했다.


이번달 지큐와 에스콰이어 모두 라스베가스 여행 이야기가 나와요.
그 말인 즉슨 라스베가스 관광청에서 협찬을 했다는 거죠. 분명 같은 장소를, 같은 항공 노선을 타고 갔을 텐데도 내용은 달라요. 그 잡지의 색을 담아낸거죠.


트렌드를 아는 것 뿐만 아니라 같은 소재를 어떻게 다르게 풀어나가는 지. 같은 시계 광고를 하더라도 매체마다 어떤 형식으로 보여주는지 비교하며 비슷한 컨텐츠가 쏟아지는 지금의 상황에서 트레바리만의 차별화 아이디어를 얻어내는 건 아닐까 싶었다.


또한 트레바리 서비스의 타겟은 2030 여성이 많기에 그 타겟을 이해하기 위해 여성지도 빠짐없이 구입하신다고 하셨다. 여성지에는 코스메틱 관련 내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척 높은데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어 그냥 넘기다보면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잡지의 마지막이 등장한다며 웃으셨다. 어렵지만 여성 타겟을 이해하기 위해 코스메틱 지면까지도 열심히 읽다는 육헌님의 노력이 멋져보였다.




저자분들이 하나하나 정성껏 챙겨주신 선물들. 마음만큼 두손 가득 돌아왔다.


IT 회사의 문과생으로 살아가면서 개발과 디자인을 제외한 모든 업무에 관여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은 마케팅이었다. 더욱이 광고학과 졸업생으로서 마케팅의 ㅁ도 모르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에 마케팅을 멀리했다. 


나는 퍼포먼스 마케터야 페이스북 마케터야 그걸 정의하는 자체가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는 것
스타트업에서는 마케터가 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브랜딩도 하고 사내 문화도 만들고 택배도 보낸다.
이 커리어를 위해서 지금 이 단계를 밟아야지. 이렇게 해야지 하나하나 다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현재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한다. 언젠가 지금의 경험들이 다 도움이 될 거라고 믿으며.


저자들과 살롱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케터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내가 겁먹고 도망가는 그 수많은 숫자들과 어려운 용어들은 그저 일부에 불과한 것뿐이지 본질은 서비스를 사랑하는 마음. 진심으로 서비스를 아끼는 그 마음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야기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것.

그것이 마케터의 일이구나.


그럼 사실 모두가 마케터네?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혜윤님의 글을 읽고 많은 격려를 받았기에 한 챕터를 공유하고자 한다. 


마치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 없어 업무 자존감이 바닥을 친 신입사원에게 조용히 사수가 다가와 커피를 한잔 하러 나가자고 속삭이는 느낌이다. '괜찮아. 나도 참 어려웠거든.' 라고 말하며 본인의 경험담을 담담하게 이야기해주고 응원해주는 것 같다. 아마도 이 글이 나를 사심(4心)살롱에 오도록 용기를 준 건 아니었을까.


https://publy.co/content/2014?s=whcnq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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