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술은 마시진 않지만, 향수가 저한텐 술 같아요."
나는 부러움을 자주 느끼지 않는다. 여성으로서 가장 쉽게 느낄지도 모를 아름다움에 대한 열등감은 감사하게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승리한지 오래다. 각자만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 차이를 존중한다. 태어난 배경, 집안 수준 이것 역시 부러워본 적 없다. 모든 건 상대적이니까. 좋은 학교 출신이나 좋은 직장? 이건 더더욱 부러워할 이유가 없지. 나의 노력의 결과물이니까.
그럼에도 내가 부러움을 간혹 느낄 때가 있는데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닌 아름다운 생활 습관과 건강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을 때다.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 팔로우만 하던 사이였던 K를 처음 만났다. 그녀가 가진 맑고 예쁜 아름다움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아름다움이라 계속 눈이 갔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꾸준히 파고드는 것도 좋아 보였고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스스로의 브랜드를 만드는 모습을 작게나마 응원하게 되었다. 사람에 대한 팬심 그뿐이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런 팬심은 서로 조금씩 통하는 게 있었는가 보다. K도 내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의 색과 에너지, 빛깔을 좋아했었노라며 함께 작업을 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물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워낙 모르기에 우리는 작업 이야기는 제쳐두고 '한번 만나볼까요?'로 인연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늦지 않게 집을 나섰다. 십오 분 정도 빨리 도착했으니 상대가 '너무 일찍 오신 거 아니에요?'하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도착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가 먼저 제안한 자리라 혹여나 커피를 사고 싶을까 봐 일찍 도착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카페에 들어서니 밝은 창가 앞에 맑은 시냇물의 윤슬처럼 반짝이는 K가 있었다. 내가 과장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렇지만 내 눈엔 그만큼 아름답고 빛났다.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예요?"
"나만이 가지고 있는 좋은 습관이 있나요?"
"좌우명이 뭐예요?"
가까운 친구들은 서운하리만큼 빠르게 눈치챘을 것이다. 나는 K가 좋았다. 그래서 질문을 퍼부어댔다. 어쩌면 내가 내 렌즈로 담아야 하는 피사체이기 때문에 더욱 빠르게 좋아하려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떠나서 그저 사람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더 아름다운 내면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거 아니냐며 억울할 정도로 나는 K가 좋았다.
선하고 부드러웠고 강단이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서 친절했고 비슷한 온도로 서로를 대했다. 내가 그녀에게 결정적으로 반해버린 건 일요일 아침 8시에 일어나 영어 공부를 하고 시간을 쪼개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그 부분이었다. 스스로를 위해서 작게나마 매일 노력하는 삶. 내가 살고 싶은 삶이었다.
K와 헤어지기 전 그녀는 쇼핑백을 하나 내밀었다. 얼마 전 내가 쓴 글을 보고 '어떤 일인진 모르겠지만 리프레시가 필요하신 것 같아 준비했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리프레시와 관련된 이야기가 담긴 향초를 건넸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저는 술은 마시지 않아요. 잘 못 마시기도 하고 마셨을 때 제 모습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요. 어쩌면 저한테는 향수가 술 같기도 해요. 술도 가격대가 다양하듯 향수도 마찬가지고요."
향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오늘 나와의 자리를 위해서 특별히 향수를 골라 뿌리고 왔다고 했다. 손목으로 전해지는 향이 편안했다. 그녀는 처음 만나는 자리이니만큼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 어우러지고, 향의 존재감이 너무 강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 향을 선택하는 자체로 그녀의 사려 깊음과 예의 바름이 전해졌다.
술이 아닌 향수를 취미로 삼고 있는 그녀가 가진 우아함이 부러웠다. 술냄새가 아니라 원하는 향기를 골라 입고 싶어졌다. K와의 만남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맑고 강인한, 어쩌면 자신의 길에 올곧게 나아가는 단순하면서도 단조로운 삶과 강렬하고 압도적이지만 그만큼 혼란스럽고 복잡한 감정으로 둘러 쌓인 삶. 현재의 내가, 아니 앞으로의 나도 후자에 더 가깝기 때문에 영원히 전자를 선망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가진 것들 중에 스스로를 미워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것들만은 바꿔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느껴졌다. 마치 나와 애증의 관계인 술처럼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창문을 활짝 열고 향초를 켰다. 택배 박스를 뜯어 정리하고 바닥에 쌓인 먼지들을 훔쳐냈다. 미처 개다 만 빨래들을 제자리에 넣었다. 방이 깨끗해지는 동안 그녀가 선물한 리프레시의 향기가 방 안에 가득 찼다. 향기를 따라 좋은 기운들도 나에게 찾아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