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향이 아닌, 방해하지 않는 향을 찾아서
나는 향을 싫어한다 생각했다.
유명하다는 샤넬 향수도 선물로 받아서 한번 뿌려보고는 몇 년을 옷장에 넣어뒀다.
향수를 뿌리고 나가면 하루 종일 그 향이 나를 따라다니는 게 싫었다.
어쩌다 두통이라도 있는 날엔 잠깐 스치는 향에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캔들보다는 비누 쪽이 나와 맞다고 생각했었다.
막상 캔들을 판매하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향을 싫어하는 사람이 향초를 판매하는 게 맞나?'싶었다.
향료 바구니에는 스무 가지가 넘는 향들로 가득 차있었다.
모두 인기 있는 향, 후기가 많은 향이었다.
그 많은 것 중에 내가 좋아서 산건 하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향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네'
분명 내가 편하게 맡을 수 있는 향도 있지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향을 구입할 때 직접 맡아보고 사는 게 아니라, 설명글을 읽고 구입한다.
서울에 산다면 직접 방산시장에 가서 구입하겠지만 지방은 그럴만한 곳이 없다.
사이트에 접속해 설명글을 찬찬히 읽으며 향을 상상해 봤다.
내가 찾는 향은 내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 향이었다.
곁을 은은하게 감싸며 공간에 함께하는 향이길 바랐다.
은은한 허브향이나 묵직한 우디향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거기에서 6가지를 골라 구입했다.
시향지 한쪽 끝에 향이름을 쓰고 반대쪽은 살짝 접어 향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하나하나 코끝에 갖다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7년 넘게 향을 다뤄왔지만 나를 위한 시간은 처음이란 게 못내 아쉬웠다.
일단 존재감이 너무 강한 인센스향과 집시향은 제외했다.
그리고 시원한 허브향이 마음에 들었지만 조금 흔하게 느껴져 한라향도 제외했다.
이제 남은향은 세 가지이다.
캔들로 제작해 태웠을 때 느낌을 보기로 했다.
높은 온도에서 왁스와 심지가 더해지면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부터 마음속에 정해진 향이 있었다. 필로시코스라는 이름의 향이었다.
처음엔 청량한 시트러스와 포근한 꽃향기가 스치고
이내 무화과 잎과 그윽한 나무향이 풍겨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주는 향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은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누구나 좋아하는 꽃향기나 시트러스향은 어떨까?'
'좀 더 강렬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게 좋지 않을까?'
'향이 너무 약해서 사람들이 싫어하진 않을까?'
이런 걱정들에 둘러싸여 의미없는 테스트만 이어갔다.
내 취향보다는 타인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게 굳은살 처럼 단단히 자리잡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비로소 지금 만들려는 초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눈을 감고 초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려봤다.
마음의 일렁임을 가라 앉히는 데 강한향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그 고요를 깨지 않는 향이면 충분했다.
서서히 불안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향을 찾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