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이야기
회사 앞에 있는 카페는 프랜차이즈라서 그런지 늘 똑같은 맛이야. 차라리 내가 내린 커피가 더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나저나 샷 하나로 주문할 걸 그랬어. 바보같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주문을 했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에 민망함과 약간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제일 싼 아메리카노를 시켰어. 마시다가 네가 온다면 또 후루룩 마시고 부리나케 달려 나가야 해서 그것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오늘도 늦을 줄 알았더라면 그냥 카페 문 닫고 안에서 기다릴 걸 그랬어. 괜히 후회가 되네. 이제라도 다시 돌아갈까 생각했는데, 글쎄 이 추운 겨울에 다시 우리 건물까지 가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 창 밖만 바라보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한 겨울에 웬 거냐 싶겠지.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아직도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당신을 만나는 동안 어떤 이유에서인지 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있어.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주변을 경계하고 의식하는 사람이 된 것일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만나서는 안 되는 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신경 썼던 거야.
내가 마감을 하고 꼭 이 카페를 오는 이유가 있어. 당신을 기다리며 항상 앉는 자리가 있거든. 걸어 나오는 당신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라도 앉아 있으면 나는 불안해지곤 해. 마치 누군가에게 내 영역을 침범당한 기분이랄까. 어떨 때는 당신을 빼앗긴 기분마저도 드는 걸. 누군가를 소유한다는 것이 그런 것일까? 언젠가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을 지니고 사는 것.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껴안은 채 살아가는 것. 아, 소유도 사랑의 일부라면 나는 차라리 그만 사랑하고 싶을 정도야. 서서히 당신에 대한 내 애정도 이런 생각으로 시작되어 사그라들까 봐 벌써부터 겁이 나는 걸. 우습지?
저기 멀리 이제야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이네. 분명 담배 한 대 피우고 다시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다가 나오겠지. 나오는 사이 누군가를 만나고, 으레 그렇듯 그 사람이 흡연자라면 그 사람과 함께 대화와 연기의 시간을 보낼 것이 분명해. 혹시나 모를까 말해 주는 건데, 나 당신이 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 물론 휴대폰으로 재촉하진 않아. 재촉도 한두 번이지. 이런 다그침이 네게 큰 자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고작 3개월 만에 깨달아 버렸거든.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곧장 내게로 오길 바라던 나의 희망사항은 물 건너갔네. 저 사람은 왜 매일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퇴근 채비도 하지 않은 채로 담배 피우러 나가는 거야? 언젠가 나 대신해서 한 번 물어봐 주지 않을래? 꼭 자기는 퇴근하지도 않을 거면서 당신네 직원들 지나가면 잡아 놓고 일장연설을 하더라. 게다가 담배는 또 얼마나 많이 피우는지. 줄담배라고 하나. 하여튼 온갖 나쁜 건 다 하는 사람 같아. 당신은 절대로 저런 상사가 되지 않았으면 해. 그래도 네가 저 사람에게 잡힌 탓에 나는 조금 여유롭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됐어. 이런 상황을 두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으. 아무리 마셔도 익숙해지지 않는 커피 같아. 그나마 아이스로 시키면 덜 쓴 기분이 들어서 춥고 덥고 할 것 없이 아이스로 주문하지만, 사람들이 이게 뭐가 맛있다고 먹는지 모르겠어. 물론 덕분에 언니네 카페도 호황이지만. 정말이지 색깔은 딱 조선시대 사약 같잖아. 사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게 됐다는 말은 포장이야. 당신을 기다리는 나는 정말 사약을 마시는 기분이 드네. 얼른 왔으면 좋겠어. 줄기차게 만나고 보고 또 만져도, 아직 나는 당신이 그리운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