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이런 여행도 있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아무렇게나 트렁크를 놓아둔 채 털썩, 침대에 앉았다.
집에 가고 싶다.
이제 막, 고심 끝에 예약했던 숙소에 발을 들인 참이었다. 용산사를 걸어서 갈 수 있으며 유명한 소금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가 근처인, 흔히 말해 접근성이 좋은 숙소였다. 많은 후기가 있지는 않았지만, 사진만큼 쾌적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큰 불편함은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삼일 동안 잠을 청할 침대에 앉자마자 다시 김포행 비행기를 타고 싶었다.
항공권을 결제할 때까지도 오로지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의 근본을 한 번 알아보자는 취지와 함께 대만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있었다. 열정적이고 애사심이 충만하던 병아리 시절이었다. 그때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는 여전히 열정적인 사람이지만 애사심을 갖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것 같다. 그렇게 큰 꿈을 안고 도착한 곳은 헤어롤을 틈 날 때마다 달고 있어도 앞머리가 제 힘을 찾지 못할 정도로 습하고 더웠다. 몇 번이고 날씨를 검색하며 옷가지를 골라내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였다.
중정기념당 앞은 너무 넓어서 마음껏 뒹굴어도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무거운 DSLR을 활용하기 위해 적절한 곳에 카메라를 세팅했다. 어색한 포즈를 짓는 내 뒤로 중정기념당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렇게 몇 장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그 규모만큼 계단도 많았다. 사람들이 제각각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외로웠다. 계단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마 지금쯤 한국은 한참 일하고 있을 시간이겠지. 꽤 오래, 계단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삼일째 저녁이었나. 낮에 접질린 발목이 서서히 부어오르고 있었다. 여행 온 나를 대접해 준 본사 직원의 도움으로 압박 붕대를 구해 대충 칭칭 동여맸다. 운동화를 신어야 하니 양말을 신었는데 당최 운동화에 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서러웠다. 고작 반나절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런 상태로 돌아가야만 하는 내가 너무 화가 났다.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는 곳에서 다치기까지 했으니 오죽했을까. 전화통화를 하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아니, 고생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비죽비죽 새어 나오는 눈물을 훔쳤다. 공용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지하 벙커에서 망고 맥주를 홀짝이며 나는 삼 년 같았던 지난 삼 일을 회상했다.
다음 날 아침, 운동화에 뚠뚠 해진 내 발을 욱여넣는데 내가 너무 짠한 마음에 그만 웃음이 났다. 이번 여행은 분명,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지하철 입구에서 만난 숙소 매니저는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내 몸집만 한 트렁크를 들고 내려가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지하철 타는 곳까지 나의 트렁크를 들어다 주었다. 아주 기꺼이, 번쩍 들면서 말이다. 돌아가는 이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마음이 헛헛해졌다.
아, 정말이지 이런 여행도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