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링 포인트'(2021), 필립 바랜티니

Boiling Point, it was just euphoric.

by 최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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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iling Point, it was just euphoric.



주방일은 한편의 프로젝트다. 헤드 셰프는 따로 노는 구성원들을 누구 하나 튀지 않게 잘 버무려야 할 책임이 있고, 그러나 그게 어려워서 실수하고 때로는 망가지기도 하는, 완벽하지 못한, 지극히 인간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드라마 ‘더 베어’에 빠져들었던 것도 그 책임의 무게로 괴로워하는 카르멘에게서 내가 지나온 실패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서 민낯을 드러내는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영화를 한동안 찾아 헤맸다. 그러다 무심코 누군가 공유한 한 장면 앞에서 생각의 걸음을 멈췄다. 소매 속에 감춘 막내의 상처를 보고 순식간에 눈물을 흘리는 파티셰. 타인에 대한 그 순간적인 몰입이 메말랐던 심장에 CPR을 가했다.. 아, 그래. 민낯이란 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바닥에는 자기도 몰랐던 본능적 공감같은 것도 있으리라. 영화 ‘보일링 포인트’였다.



크리스마스, 런던의 한 레스토랑. 각자의 문제를 갖고 있는 주방의 구성원들은 곧 몰아칠 폭풍에 대비하기 위해 분주하다. 손님이 들어오고, 그 때부터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엉키기 시작한다. 90분간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시점이 빠르게 넘어가는데, 재즈 연주를 감상하듯 능수능란하다. 몰입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90분 원테이크*다..!



보는 내내 편집점을 찾아보려고 눈에 불을 켰는데, 그러다보면 어느새 극에 집중하느라 미션을 잊어버린 나를 발견하곤 했고… 결국 편집점은 찾지 못한 채 감상을 마치고 부랴부랴 촬영 비하인드를 찾아봤더니, 찐 90분 원테이크였더랬다.. 이제는 까마득한 데매 시절.. 분명히 한롤은 대략 20분을 넘기지 말라고 배웠고… 그마저도 백업하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렸었는데 90분을 한롤에 구겨넣는다고라? 이게 1차 놀람 포인트였고, 배우들이 정말 연극무대처럼 모든 상황을 한 호흡에 완성했다는 게 2차 놀람 포인트였다. 그렇게까지 해야했던 이유는, 촬영 당시 코로나로 록다운이 며칠 앞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기한 내에 촬영을 마치기 위한 방도였다고 한다.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던 것 같다. 원테이크가 아니었다면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상상도 하기 싫다. 첫번째 풀 테이크 촬영을 마쳤을 때의 분위기는,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It was just euphoric.”



장편인데도 꼭 하나의 완벽한 단편소설을 읽은 것 같은 느낌. 끓는 점을 향해 망설임 없이 질주하는 스토리 덕분이었을 것이다. 클라이막스는 제 역할을 다 했다. 아니, 사실은 영화 전체가 그 자체로 각 인물들의 클라이막스다. 스포는 않겠음…



정말 오랜만에 몇 번이고 재탕하게 될 영화를 만나서 행복했던 90분이었다. 강추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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