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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빈 Dec 16. 2019

열여덟, 곧 선거권이 주어진다

선거법통과를 기원하며

500원이라도 주면 찍어줄게요.

때는 중학교 학생회장선거였다. 해프닝이 있었다. 선거기간에 삼각김밥을 먹고 학교로 나가 아침 유세를 했다. 반 친구들은 시선을 끌기 위해 추운 초봄에 하복을 입고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1-2학년들을 붙잡고 나를 지지해달라며 표를 모으러 다녔다.


적폐는 어른들 사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어린 14살짜리들 마음에도 적폐는 있었다. 선거 운동 마지막날 1학년 반을 돌아다니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툭 하고 말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플래카드 들고 있던 내 친구는 화를 냈다. 화가 나서 플래카드를 찢어던지며 뭐 이런게 다 있냐고 소리치고는 나가버렸다. 이미 다른 경쟁 후보인 친구가 본인 명함 비슷한 거에 사탕을 붙여 나눠주다 경고를 받은 상황이었다.


마지막 연설 시간, 강당에 모인 학생들을 위한 나름의 공약들이 있었다. 신설중학교였으므로 교복을 선정하는 문제, 교칙(두발길이)정하는 문제 등에 학생회의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등의 내 나름의 입장이 있었다. 그런데 뭔가 아침의 그 소동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적어왔던 종이를 내버려두고 연설을 시작했다.


"아침에 어떤 학생이 오백원을 주면 저를 찍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중학교에서 학생회장 선거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민주주의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우리는 돈주고 표 사는 기성세대와는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어른들과 달라야 합니다."

나는 울분을 토하고 있었고, 운동을 함께해준 내 친구들은 강당바닥에 앉아서 다들 울고 있었다.


압도적인 승리였다. '어른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목소리에 열네살, 열다섯살, 열여섯살짜리 청소년들이 반응했다. 과연 청소년들이 사회문제에 대해서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왜 이들의 발언권을 쉽게 묵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당선된 나는 교장선생님, 학부모대표들과 나란히 앉아 친구들의 의견을 반영한 교복 디자인을 결정했고 제법 인기가 좋아 이후 설립된 옆 고등학교도 우리 교복을 차용해 디자인을 결정했다. 두발 길이도 당시 '칼머리'헤어스타일이었던 나를 못마땅해하시는 교장선생님을 설득하기 위해 단정히 자른 뒤 좀 더 긴 길이로 협의할 수 있었다. '-요' 말투 대신 '-ㅂ니다'말투를 구사하게 되었고, 좀 더 확고하게 신설 중학교로서 첫 학생회의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





어떤 이들은 아동, 청소년의 삶은 정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 선거권을 행사하기에 미숙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미 아이들에게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활동하기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국민 스스로가 자신에게 적용될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 운영하는 제도다.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규칙을 정하고 변경하기 위해 필요한 주장, 협의를 하는 과정을 말한다.


학생으로서 선거를 경험하는 일은 어떤 것일까? 매해 있는 반장선거, 전교학생회장 선거가 아마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에게 '학내정치'를 교육하는 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른들 '선거판'의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이 쌓여 사회인으로서 '선거'를 낯설지 않게 경험한다. 투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어렵풋하게 나마 배운다. 민주주의에서 투표라는 것으로 적어도 우리의 의사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일순간이라도 경험하게 한다.


학내 반장선거, 전교학생회장선거, 학생회 활동, 나름의 자치활동을 통해 공약을 이야기해보기도 하고, 학기 초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해보기도 한다. 지난 해 반장을 시켜줬더니 아무것도 없더라 하며 그 다음해에는 당선되지 못하기도 한다. 반장으로서 반 친구들의 의견을 모아 담임선생님과 담판짓기, 담임선생님과 친구들 사이 중재하기, 친구들한테는 친구들 편들고 교사 앞에서는 교사 편들어 인기는 있으나 사실은 간신배인 리더로 남을 것인지, 양쪽에서 중재하며 욕을 먹고 인기는 없지만 책임감은 있는 리더로 남을 것인지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반장이니 하는 간부활동을 하지 않는 학생들도 유권자로서 시민의 책무를 경험한다. 학생회 안건을 제안하기도 하고, 담임에 대한 불만을 반장에게 늘어놓으며 중재를 요구하기도 하고, 소위 '반장'을 하는 그룹에 대항해 그 다음해에는 다른 친구가 당선되도록 선거운동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일들을 숨쉬듯 경험한다. 그 와중에 '어른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을 드러내기도 하고, 환멸하면서도 그 타락한 행동을 배우기도 한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으로 성장한다.


다만, 유권자로서의 훈련, 리더로서의 중재 훈련을 넘어 본인의 입장을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하며 타인과 입장을 조율하는 훈련이 충분하게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이런 능력이 성인이 된다고 하여 곧바로 함양되는 것이 아님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더더욱 '교육제도'를 통해 공통적인 배움이 가능한 시기에 이와 관련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열여덟, 고3에게 선거권을 제공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심지어 대학을 진학해서 학업을 계속하지 않고,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열여덟 청년들이 적어도 13%는 된다(고등학교에서 곧바로 대학을 진학하는 비율이 70%이하,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른 대학진학비율이 83%인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


이미 열여덟, 노동자로서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들은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낸다. 이미 사회인으로서 기능하고 있는데 자신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에 발언권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선거연령 하향을 통해 민주사회 시민으로서의 경험을 강화하는 교육제도 정착을 기원한다. 우리는 좀 더 성숙된 숙의민주주의 사회로 진화해야하고, 우리에게는 분명 충분한 역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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