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친구는 ‘코리안 푸드’를 먹고 싶다고 했다. 한정식, 삼겹살, 갈비, 삼계탕. 몇 가지 예시 중에서 그가 고른 건 ‘닭한마리’였다. 닭한마리를 먹어본 지 얼마나 됐던가 머릿속으로 헤아리며(10년 전?) ‘닭한마리 맛집’을 검색했다. 동대문닭한마리, 무슨할매닭한마리, 닭한마리원조집. 비슷비슷해 보이는 가게들 중 한 곳을 선택했다.
지도 어플을 보며 더듬는 걸음, 후기 몇 줄 외에는 어떤 정보도 없는 상태, 성공적으로 ‘맛집 체험’을 달성하고 싶은 조바심, 드디어 주문을 마치고 맥주를 마실 때의 안도, 모든 게 여행 같았다. 2월 말의 시코쿠에서 곧장 건너온 친구는 얇은 옷을 걸쳤고 입술과 손이 파랬다. “한국은 춥다.””이것은 추운 게 아니다, 영상 기온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들을 나누다 보니 음식이 나왔다.
과연 맛있을까, 이국의 찬바람을 맞아도 좋을 만큼. 나는 신중하게 첫술을 떴다. 조미료가 좀 과한 것도 같고, 살코기에 밴 간이 덜한가 싶고, 종로 어딘가의 가게가 더 나았던 듯도 한데.. 맛을 분석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일본인은 감격한 얼굴로 닭국물을 들이키고 있다. “이 수프는 특별해, 너무 따뜻하고 맛있어.” 낯선 몸을 단박에 녹이는 국물의 힘이렷다. 나는 안도하고 닭을 뜯기 시작했다.
오늘은 회사 사람과 점심을 먹었다. 마음은 가까운데 자주 만나지 못하는 이다. 그가 이끈 곳은 점심을 9천원에 파는 초밥집, 회사에서 좀 멀다. “회사 사람들 마주칠 일 없고 값에 비해 괜찮아서 저 혼자 오는 아지트인데, 당신에게만 알려주는 거예요.” 음식은 만족스러웠다. 사실 맛이고 값이고 중요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곳을 알려주는 마음, 내 입맛을 일부러 생각해준 그 마음만으로 이미 그곳은 내게 맛집이었으니까.
예전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맛있다 하면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지만 이젠 안 그런다. 늘 가는 식당에서 한끼 때우면 그만, 널린 게 외식인데 대단하게 먹자고 발품 팔지 않는다. 여행만 예외다. 이 식당 과연 괜찮을지 돌다리 두드리며 찾아간다. 우리의 여행은 대체로 짧고 먹을 수 있는 끼니의 수도 정해져 있다. 그래서 걱정했다. 닭한마리 실패하면 어쩌지? 다른 외국인 친구도 온다고 해서 요즘 또 걱정했다. 어디 가지, 맛 없으면 안 되는데.
“잘해주는 게 뭡니까?” “그 마음으로 대해. 잘해주는 게 뭘까 생각하는 마음으로.” (드라마 <비밀의 숲>) 그렇다면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맛집은 몰라도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여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은 아니까. 그 마음으로 대하면 되겠지.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 입에 맞을지 살피는 마음, 그런 마음이 사랑이고 그런 순간이 행복 아니려나 싶고, 한끼 한끼가 소중한 시간이 말하자면 여행 아니려나 싶다. 개나리 핀 회사 주변에서 짧은 봄 여행을 했다. 사랑 같기도 한, 여행 같기도 한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