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입사

프롤로그

by 거의모든것의리뷰

길고 길었던 학생의 시절에 마침표를 찍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마침표를 찍지는 않았지만 졸업을 하기 전에 입사가 확정되었으니 마침표를 찍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12월의 두 번째 화요일 저녁 6시 시험도 끝났고 아무것도 할 것이 없던 내게 남은 선택지 중 하나는 잠이었다. 잠을 자려고 했다기보다는 핸드폰을 하다 보니 잠이 들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만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자고 있었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 됐어?

- 무슨 말이야?

- 발표 났다던데?

- 아 진짜?!! 와 씨! 끊지 말아 봐


떨리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조심스레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건 똑같은데 뭐가 이렇게 조심스러운지, 평소에는 종종 틀리던 비밀번호도 한 번에 로그인했던 것을 보면 긴장하긴 했다.


축하합니다. 당사에~


뒤에 써져 있는 단어들의 배열은 중요하지 않았다. 맨 처음 다섯 글자만 보고도 합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우 이게 된다고? 1초, 아니 2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그 전화로 말한다.


- 나 된 것 같은데..?

- 와 진짜? 축하해~

- 나 나가서 가족들한테 말해야겠다. 알려줘서 고마워!!


전화가 마무리된 뒤 가족들에게 향한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게,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을 한채 말했다.


- 나 회사 붙었대

- 뭐라고?

- 회사 붙었다고

- 진짜?!


티비 소리에 가려 한번에 잘 듣지 못했는지 가족들의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대학교에 합격한 뒤 이런 격한 반응은 처음이었다. 가족들의 연단 축하 메시지에 드디어 합격을 했다는 것에 실감이 났다. 와우! 합격을 하다니! 원하던 회사에 붙은 것은 정말 뭐랄까, 감정이 벅차올라 무슨 감정이라고 딱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일단 좋았다. 그리고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미 합격한 회사가 있었기에 회사가 붙어도 그만, 떨어져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붙으니 기분이 달라졌다. 입과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여기저기 떠들고 싶었지만 같은 날 불합격 통보를 받은 누군가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참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


그때만 해도 인생의 관문을 하나 더 넘은 기분이었다. 많은 관문을 크게 무리 없이 통과했던 인생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제 취업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졸업 후에 1년 동안 취업을 준비하면서 억지로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나름 좋은 회사를 들어갔다는 자부심에 소위 뽕이 차올랐던 시절이 있었다. 어른들은 그때부터 또 다른 시작이라고 했지만 이미 학창 시절의 마침표를 미리 찍어버려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야말로 진짜 시작이었다.

입사 전까지 나는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삶을 살아왔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각 단계마다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이 나오고, 좋은 성적이 나오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런 삶에 익숙했던 나에게 입사 합격은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것 같은 안도감을 줬다. "이제 끝났구나. 이제부터는 편할 거야."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학창 시절은 끝이 정해진 레이스였지만, 직장생활은 끝이 없는 마라톤이라는 것을. 더 당황스러웠던 건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문제에 대한 정답이 있었다. 시험을 보면 점수가 나오고, 그 점수로 내 실력을 측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다르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문제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가르쳐줬는데, 회사에서는 스스로 찾아야 했다. 게다가 회사에서 하는 일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론으로 배운 것들이 실무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도 이럴 거면 학교에 왜 다녔던 거지? 하는 생각도 들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수평적 관계였지만, 회사에서는 상하관계가 명확했다.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후배들을 챙겨야 하고, 동료들과는 경쟁하면서도 협력해야 했다. 이런 복잡한 관계들을 처리하는 것이 실무보다 더 어려웠다.


그때 깨달았다. 입사는 끝이 아니라 정말로 새로운 시작이었다는 것을. 학창 시절 16년 동안 배운 것들은 직장생활을 위한 기초 체력 정도였고, 진짜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는 것을. 입사 합격 통보를 받던 그날의 기쁨과 안도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순간부터 진짜 인생이 시작된 것이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인생, 매일매일이 시험인 인생, 그리고 그 시험의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없는 인생이 말이다.


입사 합격 통보, 새로운 시작의 다른 이름이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