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가는 인연
내일, 마른 지갑에 단비가 내리는 날이다.
금요일도 아닌데 사무실 공기가 다르다. 동료들의 얼굴에 은근한 설렘이 떠오르고, 평소라면 짜증을 낼 법한 일에도 관대함을 베푼다. 모두가 어린아이가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뭐 좋은 일 있어?"
"내일 좋은 일이 있잖아요~"
한 달에 한 번, 우리는 집단적으로 시간을 앞당기려 한다. 시계를 빨리 돌릴 수는 없지만, 그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현재가 조금 더 견딜 만해진다. 기묘한 일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돈이 이미 우리의 기분을 바꿔놓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예감과 함께 눈을 뜬다.
출근 준비는 평소와 같지만, 한 가지가 다르다. 핸드폰을 켜서 통장을 확인하는 그 순간. 마치 로또 당첨 확인처럼, 이미 알고 있는 결과를 확인하는 의식.
"일성전자 급여 - 3,210,000원"
크리스마스와는 다르다. 이것은 선물이 아니라 교환의 결과다. 한 달간의 노동력이 숫자로 환산된 것. 하지만 요즘은 헷갈린다. 급여를 받기 위해 일하는 건지, 일했으니 급여를 받는 건지. 일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급여는 한 달에 한 번 간간이 내리는 소나기 같다.
인생의 첫 급여날, 같이 입사한 동기들끼리 무엇을 할지 떠들던 그 점심시간이 기억난다.
아르바이트로 받던 급여와는 다른 무게감. '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 한 달간의 교육만 받고 들어온 첫 급여였지만,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떼었다는 증명서였다.
- 핸드폰 바꿀 거야
- 악기 배워볼까 해
- 여자친구한테 선물 사줘야지
- 부모님께 얼마 드리는 게 좋을까?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믿었다. 아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로부터 3년 정도가 흘렀다. 30번이 넘는 급여를 받았다.
처음에는 무한했던 가능성이 점차 정해진 항목으로 굳어졌다. 아침 8시, 통장에 들어온 돈이 각종 항목으로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전세 대출금 110만 원
- 카드값 97만 원
- 청년도약계좌 70만 원
- 관리비 20만 원
- 핸드폰 5만 원
- 보험 3만 원
- 잔액: 5만 원
5만 원.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인이 기호를 소비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있다. 나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미래의 급여를 소비하고 있다.
급여는 스쳐가는 봄바람 같다.
살랑거리며 볼을 간지럽히다가 곧 사라진다. 분명 지난달 이맘때, 카드값을 줄이기로 다짐했었다. 그에 맞게 삶도 팍팍해졌다. 친구와의 약속을 줄였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급하게 떠난 제주도 여행을 제외하면 말이다.
결과는 비슷하다. 아낀 것 같은데 남은 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이 주는 안도감은 작고, 절망감은 크다. "더 아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오히려 위안이 된다는 게 슬프다.
모래성의 비유가 떠오른다. 열심히 쌓아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파도 한 번에 휩쓸려 반짝이는 가루로 바다에 돌아간다. 다시 쌓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파도는 매달 찾아온다.
급여, 그의 이름은 스쳐가는 인연이었다.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많다.
버킷리스트를 언제쯤 다 이룰 수 있을까? 결혼, 집 마련... 그런 단어들이 멀리서 손짓한다.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는 충당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처음 급여를 받을 때는 꽤 큰돈처럼 느껴졌다. 지금 남은 이 5만 원은 왜 이렇게 작고 소중한지. 언제 또 지갑이 텅 비게 될지 모르지만, 이번 달은 진짜로 아껴야겠다.
매달 하는 다짐이다.
급여 (給與, Salary)
명사
한 달에 한 번 찾아왔다가 사라지는, 스쳐가는 인연의 이름
노동의 대가이자 생존의 최소 단위
매달 초기화되는 희망과 절망의 순환 구조
현대인이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방법
동의어: 월급, 월급날의 기쁨, 월말의 절망
반의어: 자유, 경제적 독립, 불로소득
관련 항목: 통장, 카드값, 대출, 꿈, 체념, 다음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