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너무 많다
일이 끝났다. 이제 한숨 좀 돌릴 수 있을까 싶은 그때, "~~ 님"이라며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불길한 느낌에 목소리를 따라가면 새로운 일 하나가 생긴다. 신기하게도 회사의 일은 끝나지가 않는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하나의 일을 끝나 인형을 열어보면 새로운 인형이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더 작고 세부적인 일로 점점 파고들어 간다. 혹은 병렬연결이 되어 일이 생겨난다. 이 정도면 됐겠지라는 문장은 섣부른 판단이다.
자료 작성만 봐도 그렇다. 하나의 자료가 완성되어 부서장에게 전달되면, 피드백을 받고 재 작성된다. 부서장의 피드백에 의한 자료가 완성되면 여러 개의 부서를 포괄하는 파트장에게 자료가 전달된다. 그 자료는 파트장에 의해 피드백을 받고 재수정을 요한다. 피드백의 과정에서 비교군들이 늘어난다. 다른 제품과의 비교, 경쟁사와의 비교를 통해 우위를 추가해 나가고 점점 더 주요한 결정을 하는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면서 확대 재생산된다.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의 프로젝트로 끝나는 법은 없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그와 연관된 프로젝트가 퍼져나간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종료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회식을 한다한들 회식의 날 이후에는 똑같은 자리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로운 프로젝트의 기획을 위해 다른 프로젝트들의 성공을 위해 일을 한다.
도대체 회사는 왜 이렇게 일이 많을까?
이는 회사는 배부름이라는 단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몰라야 하기 때문이다가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호수 위의 백조가 고고히 떠있기 위해서는 발을 미친듯이 젓고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일을 해야만 살아남는다고 믿는다. 도태되는 회사들, 심지어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대기업들이 어떻게 무너져가는지 봤다. 아무리 많이 먹어 배가 부르더라도 배부른 티를 내지 않고 또 다른 포식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회사이기 때문이다. 구글, MS, 아마존 등의 세계적인 거대 기업들이 아직도 기술개발을 하고 저마다의 방향으로 AI를 위해, 우주를 가기 위해 확장하고 도전하는 것은 그와 결을 같이 할지도 모른다.
사실 표면적인 이유 외에 또 하나는 고용을 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정규직 직원들은, 일이 있거나 없거나 똑같이 월급을 받는다. 조직관계에서 당신이 경영자라면, 임원이라면 그 잉여 인력들을 놀리고 싶을까? 아니면 더 많은 성과 창출을 통해 더 많은 보너스를 가져가려고 할 것인가? 를 생각해 보면 답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인다.
마지막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왜 있는지는 모르지만 왜 아직도 남아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남아있다. 마치 집안일을 해도 해도 끝나지 않듯, 일은 어딘가에 항상 놓여 있다. 중요도가 밀려 후순위로 밀렸을 수도 있고, 기존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중요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비로소 수면 위에 올라오기 시작한다. 잊고 있었던 당장 보이지 않았던 틈새 사이 끼어있던 먼지들을 정리할 시간이, 요리가 완성되고 인스타까지 올렸지만 이후에 설거지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일 뿐이다.
그러다 또 주요한 프로젝트 하나가 똑 떨어지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일 (Work, 仕事)
명사: 생계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판매하는 행위. 끝이 있을 것 같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 현대인의 굴레.
물리학적 정의: 힘과 이동거리의 곱(W=F×d). 흥미롭게도 회사에서의 일도 같은 공식을 따른다. 압박(힘)이 클수록, 기한(이동거리)이 길수록 일의 양은 늘어난다.
생태학적 정의: 조직 내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영역 표시 행위. 사자가 오줌으로 영역을 표시하듯, 직장인은 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심리학적 정의: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받고자 하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가 구조화된 형태. 일이 없으면 불안하고, 일이 있으면 괴롭다.
열역학 제2법칙과의 관계: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일도 마찬가지다. 한 번 시작된 일은 저절로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반의어: 퇴근(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개념), 칼퇴(신화 속 이야기)
동의어: 업무, 과업, 미션, 지옥의 순환고리
관련 속담: "일은 만드는 자에게 더 몰린다" -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바쁜 이유
에드몬드 웰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