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회사 복도에서 마주친 A는 오늘도 지쳐 보였다. "또 야근이에요. 팀장님이 갑자기 자료 수정하래서요." 그의 목소리엔 체념이 묻어났다. 오늘은 약속이 있어 빨리 들어가야 한다고 점심때부터 미리 말씀드렸는데도 팀장은 개의치 않았다.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거절해본 적이 없다. "미움받으면 회사 다니기 힘들지 않을까."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도, 동료의 떠넘긴 업무도, 후배의 무례한 태도도 그저 참아낸다. A는 생각했다. 요즘 MZ 세대들은 안 그런다던데, 그건 아마 처음부터 거절의 이미지로 시작했기 때문일 거라고. 고분고분했던 자신과는 출발선이 다르다고.
하지만 이번에 새로 들어온 B는 A의 생각을 뒤흔들었다. B는 A와 같은 세대였다. 그런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명히 구분했고, 불합리한 요구에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그건 제 업무 범위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팀 분위기가 묘하게 흔들렸다. 동료들의 눈빛은 반반이었다. 동경과 경계. 하지만 대부분의 눈빛 밑바닥에는 같은 감정이 깔려 있었다. 부러움. 그리고 질문.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침묵이 답이었다.
조직에서 미움받는다는 건 사실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진짜 미움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B가 선택한 건 후자였다. 누군가에겐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것. 하지만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했지만, 동시에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상사를 만족시키면 동료가 불만이고, 동료를 도우면 자신의 일이 밀린다. 누군가의 기대를 거절하는 순간, 우리는 미움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용기가 역설적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10명의 동료를 만나면 1명은 나를 좋아하고, 2명은 나를 싫어하며, 7명은 그저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10명 모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 넣을 것인가, 아니면 나를 싫어하는 2명을 담담히 받아들일 것인가.
불필요한 업무를 거절하는 용기, 불합리한 지시에 의견을 내는 용기. 이런 용기들이 모여서 만드는 건 단순히 정시 퇴근이 아니다. 그건 믿음이다. 우리 모두가 이성을 갖고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믿음. 보다 합리적이고 모두를 위한 최선의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으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미움받을 용기는 어쩌면 나답게 살 용기다. 그 용기가 있는 사람이 결국 더 행복하게, 더 오래 일한다. 조직도 실은 그런 사람을 원한다. 자기 일을 확실히 하고, 자기 의견을 분명히 하고, 자기 삶을 지키는 사람을.
A는 여전히 야근 중이다. B는 오늘도 정시에 퇴근했다. 둘 중 누가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이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미움받을 용기는 결국 살아남을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