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루팡.
19세기 말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 속 괴도의 대명사. 변장의 귀재이자 민첩한 도둑인 그가 21세기 한국 회사에 출몰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의 이름은 '월급 루팡'. 월급만 받아가는 도둑이라는 뜻이다. 자리에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그의 움직임은 마치 원작 소설 속 루팡처럼 예측 불가능하다. 일이 없을 때는 자리를 지키다가도 일이 생길 것 같은 순간에만 절묘하게 자리를 비운다. 이 정도면 팀장이 일부러 자기가 없을 때만 얘기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의 눈치는 수준급이다. 아니, 신의 경지에 가깝다. 퇴근 직전 날아오는 긴급 업무 요청 메시지는 마치 투명 망토를 두른 것처럼 그에게 닿지 않는다. 다음 날 출근하면 "어제 메신저를 못 봤네요"라며 태연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짜 괴도의 면모를 발견한다.
경영학에는 흥미로운 경험 법칙이 하나 있다.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을 업무 기여도로 나누면 대략 3:4:3의 비율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상위 30%는 조직의 핵심 동력이 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일하고, 문제를 찾아내며,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중간 40%는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지시가 명확하면 제대로 수행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하위 30%는 최소한만 하거나, 심지어 그 최소한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다.
월급 루팡은 이 하위 30%의 상징이다. 문제는 이 비율이 거의 모든 조직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영리 기업이든 비영리 단체든, 심지어 학교나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크기나 문화와 무관하게 이 비율은 놀라울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 전체의 수준을 올리는 것이 회사에서는 최선이다.
회사에서 5년을 일하다 보면 알게 되는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일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영업 사원의 성과는 명확하다. 매출 숫자로 나온다. 생산직 노동자의 기여도도 비교적 분명하다. 생산량으로 측정된다. 하지만 사무직은? 기획자는? 마케터는? 그들의 업무 가치를 정량화 할 수 있나?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일이다. 이메일에 답장하는 것도 일이다. 보고서를 검토하는 것도 일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활동의 '진짜 기여도'는 무엇인가?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기여도를 확인하기 어렵다. 10명이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 각자의 기여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가? 누군가 최선을 다했고, 누군가 최소한만 했더라도, 결과는 '팀의 성공'으로 기록된다. 이 애매함 속에서 월급 루팡은 생존한다. 하지만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모두 가끔씩 루팡이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바쁘지 않은 오후, 회사 컴퓨터로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면서 "이 정도야 괜찮지". 업무 시간에 커피를 마시면서 동료와 잠깐의 이야기시간을 가질 때도 있다. 1시간보다 더 길게 점심시간을 쓴 적이 있다. 차이는 정도의 문제다. 가끔씩 루팡이 되는 것과, 항상 루팡으로 사는 것. 상황에 따라 적당히 빠지는 것과, 시스템적으로 회피하는 것.
월급 루팡을 비난하기는 쉽다. "저런 사람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다른 곳에 있다. 왜 그 사람은 루팡이 되기로 선택했는가? 회사가 그 사람에게 진정한 동기를 제공했는가? 조직이 공정한 보상 체계를 갖추고 있는가? 어쩌면 월급 루팡은 시스템의 실패를 보여주는 증상이다. 개인의 기여와 보상이 연결되지 않는 조직에서, 최소한만 하고 버티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열심히 해도, 안 해도 같은 월급을 받는다면? 추가 업무를 맡아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굳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