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에 탑승하면 종종 마주치는 광경이 있다. 창가 좌석은 비어 있는데 누군가 통로 쪽에 앉아 다른 승객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괜히 그 자리로 앉고 싶다가도 귀찮아서, 다른 자리로 발을 옮기는 것을 보면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나와 그 사람은 쓸데없는 심리전을 하고 있는 걸까 싶다. 이러한 행동에는 '정당한 기대권'과의 충돌이 있다. 버스 티켓 한 장은 한 좌석에 대한 권리만을 부여한다. 그러나 통로석 수호자는 암묵적으로 두 개의 좌석을 혼자서 차지하려고 한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사회적 계약의 관점에서는 미묘한 위반이 발생한다.
이런 행동의 심리적 배경이 정말 복잡하다. '미묘'하다는 이유 때문에 이도저도 안 되는 그 어지러운 상황에 대해 트롤리 문제와 같은 도덕적 딜레마를 제공한다. 가장 표면적으로는 '개인 공간 확보에 대한 욕구'와 함께 '통제에 대한 욕구'도 강하게 작용한다. 인구밀도 점점 높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공간들을 함께 점유한다. 그런 공동의 공간에 대한 불편함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게다가 일상에서 많은 것들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에 대한 굴복은 무언가 좀 더 개인이 무언가를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분히 불러일으킬만하다.
더 깊게 들어가면 누가 옆에 앉을지 모르는 불안감, 혹시 불쾌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작용한다. 지나치게 향수를 뿌린 사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사람, 개인위생이 좋지 않은 사람 등 과거의 불편했던 경험들이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사실 알게 모르게 불쾌한 경험을 한 기억과 경험이 있고 그에 따라 불가피하게 자리를 옮겨야 했다면 그런 경향성은 강화되고 남은 것은 그에 대한 회피일 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두 좌석을 한꺼번에 차지하려는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알력은 미묘한 심리전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행동이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자리 비어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것조차 많은 사람들에게는 심리적 허들이 된다.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려는 마음에, 많은 사람들은 다른 자리를 찾아가거나 서서 가는 것을 선택한다. 통로석 점유자들도 나름의 이유를 갖는다. "곧 내릴 예정이라서", "짐이 많아서", "멀미가 심해서" 등의 이유를 대지만, 대부분은... 단순히 더 편안하게 가고 싶은 욕망이 앞선 것일 수 있다. 즉각적인 확인이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추상적인 이유는 대부분 허울뿐일 때가 많다.
이런 행동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작아 보인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모여 공공의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철학자 칸트의 '정언명령'을 빌리자면,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버스는 절반의 승객만 태울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행동을 완전히 비난하기 어렵다. 한번쯤은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올바른 행동만 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풍요롭진 않아도 정신적으로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중요한 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균형이다. 나의 작은 행동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결국 통로석 점유 행동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에 대한 작은 다툼이다. 단순한 좌석 선택을 넘어,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누군가는 배려를 누군가는 작은 이기심을 발휘하는 세상은 이상적이지도, 무작정 비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점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