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

이드의 자아

by 거의모든것의리뷰

새로운 게임이 나와 로그인을 하면 닉네임을 입력하라고 한다. 텅 빈 입력창 안에 무엇을 적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하필 또 중복 방지가 있어서 쉽게 쉽게 넘어가려고 했던 아이디들은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더 깊은 생각으로 나아가게 한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단어가 쓰였다 지워진다. 지금까지 쓰던 아이디로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닉네임을 선정하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한다. 이름? 별명? 게임 내 직업? 닉네임이라는 뿌리에서 나올 수 있는 가지들이 자라나고 그 가지들이 또 다른 가지들을 만들다 자리를 잡고 마침내 꽃 한 송이를 피워낸다. 보통 닉네임은 자신의 자아 일부분 중 가장 튀어나온 부분을 끄집어낸다.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해, 그것이 꼭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일 필요는 없다. 스스로가 보는 스스로의 모습 중 가장 독특한 부분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다. 꼭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이 꽃이 현실의 나보다 더 화려하고, 때로는 더 소박하다. 어떤 경우든 이 작은 꽃 속에는 내 정체성이라는 거대한 뿌리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자아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인터넷이, 게임이 익명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현실의 친구들과 함께라면, 닉네임을 그렇게 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더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이름으로 지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들과는 동떠러진 세계에 놓여있다면,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도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보다 쉽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렇게 되고 싶은 자아를 표방하기도 한다. 수십 년 전에, 게임아이디에 '지존'이라는 칭호를 단 아이디들이 많이 등장했다. 하나의 유행일지도 모르지만 남들보다 더 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조금은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스스로에게 '지존'이라는 칭호를 붙이기엔 '감히'라는 비웃음 위에 서있고 싶지 않기에 온라인에서라도 욕망을 드러낸다.


때로는 이 공간에서 진짜 스스로의 모습을 만나기도 한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모습에 대해 고찰하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배우며 더 발전하는 수단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가꾸던 자아의 꽃이 현실의 정원으로 이식되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모습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다른 정원사들과 경험을 나누며 더 나은 자아로 발전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유로운 디지털 정원이 점점 오염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사이트가 그렇지 않지만 마치 청소를 하나도 하지 않은 길거리처럼 곳곳에 오물이 때로는 악취가 풍겨날 수 있는 곳으로 되어가기도 한다. 대게 그를 방지하기 위한 관리자들이 규칙을 정해두지만 일부의 커뮤니티들을 오물이 오물인지도 모른 채 서서히 같이 오염되어 어느샌가 스스로에게 나는 악취조차 맡지 못하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유명인에게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고양이가 그랬어요'라고 항변하는 것을 보면 하나의 밈이라고 치부하기엔 스스로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회피하기 바쁜, 취약한 모습들을 보인다.


통상 우리는 몇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회사에서의 mbti와 친구를 만났을 때의 mbti 가 다르듯이, 친구들 사이에서, 가족들 사이에서, 사회에서의 가면들을 갖고 있다. 닉네임도 그중 하나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너무나도 자유로워서 가끔 인터넷에서의 닉네임은 이드에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진다. 한없이 커지기도 하고 한없이 작아지기도 할 수 있는 공간인 인터넷은 그중 가장 악당이 되기 쉬운 장소인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 말한다. 악마와 함께 춤을 추다 보면, 악마가 된다고. 하지만 인터넷은 누가 악마인지 누가 천사인지 알려주지 않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어떤 악마도 본인을 악마라고 소개하지 않을뿐더러 대부분의 악마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본인도 모르는 새 악마와 놀다 악마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디지털 정원에서 어떤 꽃을 피울 것인지, 그 선택은 단순한 닉네임을 넘어 우리 자신을 어떻게 가꾸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닉네임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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