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맞는 말이 되느냐, 쳐 맞는 말이 되느냐는 한 끗 차이다. 비판과 달리 비난은 흔히 감정적이거나, 꼬투리를 잡거나, 단순히 잘못만을 지적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런 비난을 들으면 '쳐 맞는 말'이 되고, 논리적이고 건설적인 의견은 '맞는 말'이 되는 것 같다. 문제는 이것을 머릿속으로는 다 알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과연 우리는 객관적인 근거와 차분한 말투를 갖춘 비판을 항상 수긍하고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아무리 논리적이고 맞는 말이라고 해도, 그 말투와 화자의 표정에 섞인 감정이 조금이라도 불일치하면 우리는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이는 대니얼 카너먼이 말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의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설명할 수 있다. 본능적인 반응인 시스템 1은 에너지가 적게 들고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가자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발걸음을 내딛다 보면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상대의 의도를 예단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려버린다. 마치 3초 동안 그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아주 쉬운 길이며, 거침없는 길이다.
반면 시스템 2, 우리의 이성에서 비롯된 반응은 한 발자국 느리다. 내용을 파악하고 진의를 판별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시스템 1이 온몸으로 느끼는 상대방의 언어나 표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면, 시스템 2는 찬찬히 말을 듣고 내용을 분석하면서 상대방이 말하는 바를 따라간다. 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기관인 뇌를 거쳐서 가기 때문에 더 느리지만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절히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 시스템 2, 이성을 사용하는 방법은 쉽지 않은 접근이다. 대부분의 일상 대화에서는 시스템 1, 즉 감성만으로도 충분히 상황을 판단하고, 때로는 옳은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추가적인 사고의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은 철저히 훈련의 영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 어떻게 비난이 아닌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비판의 전제는 '더 나아간다'에 있다. 단순히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그 잘잘못 이상의 수준에서 결론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에 대해 이야기하는 활동이다. 그 전제를 화자나 청자 한쪽이 아닌 둘 모두가 입력된 상태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시스템 2를 사용한다는 것, 그 시스템을 사용할 준비를 마친 이후에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누군가는 비판을 할 때 긍정적인 언급으로 시작하며 개선점을 제안, 다시 긍정적인 전망을 사용하여 사이에 껴두는 느낌으로 진행하라고 한다. 비판을 받는 사람은 메타인지를 활용해 시스템 1 보다 시스템 2를 각인시킨 채 대화에 임하는 방법들이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도와 존중일 것이다. 말하는 의도가 어떤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정말 한 발자국 나아가기 위해서 대화를 시작하는가? 혹은 상대방을 깎아내기 위해서 대화를 시작하는가? 상대방을 깎아내는 것이 나를 위로 올리지 않음을 알고 있지 않는데도 그를 애써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말 상대방의 나의 의도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방을 낮잡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존중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상대방의 말을 듣고 공감해야 한다. 어떤 입장에서 말을 하고 있는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가끔 존중이 결여된 대화를 보게 된다. 마치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말을 끊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게 상대방이 납득한다고 한들, 진정으로 납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보고 있는지 한번 보고 있는가? 함께 더 나아가기 위해서 작가는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