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혹은 31일의 하루가 모여 한달을 이룬다.
달력을 넘기는 순간, 묘한 감정이 몰려온다. 방금 전까지 '31'이라고 적혀 있던 숫자가 '1'로 바뀌는 것을 보며, 시간이라는 것의 이상한 속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참 애매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런 시간.
한 달 전을 떠올려보면 꽤 먼 과거 같다. 그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무슨 고민을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30일이라는 시간 동안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런 면에서 한 달은 충분히 긴 시간이다. 사람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시간.
하지만 동시에 한 달은 터무니없이 짧다. 계획했던 일의 절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벌써 달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그렇다. "이번 달에는 정말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또 다른 달의 시작점에 서 있다. 시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나는 그 뒤를 아쉬운 마음으로 쫓아간다.
특히 아무것도 특별한 일이 없었던 달일수록 그 아쉬움은 더 크다. 평범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시간만 흘러갔다는 생각이 들 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뒤늦게 깨닫는다. 730시간, 43,800분 숫자로 계산해보면 엄청난 시간인데, 막상 지나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허탈함.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아쉬움과 동시에 기대감도 생긴다는 점이다. 새 달력의 하얀 페이지를 보면서 "이번에는 다를 거야"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지난달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번 달에는 해보겠다는 다짐, 새로운 계획에 대한 설렘이 마음 한켠에서 꿈틀댄다. 요즘 나는 운동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몇 달째 지지부진했던 일이지만, 새 달이 시작되는 이 시점이 적당한 핑계가 되어준다.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루틴들이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한 달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동시에 의심도 든다. 과연 이번에는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처음 며칠은 열심히 하다가 어느새 흐지부지되는 패턴을 얼마나 많이 반복해왔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기대를 품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특성 중 하나일 것이다.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계속해서 희망을 품는 능력.
결국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런 것 같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는 절묘한 단위. 너무 짧아서 무엇을 이루기에는 부족하지만, 충분히 길어서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는 적당한 시간.
달력을 넘기며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번 달에는 정말로 운동을 시작해보겠다고. 설사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내가 되어보겠다고. 그리고 한 달 후, 또다시 달력을 넘기는 순간이 와도 그때는 조금 덜 아쉬울 수 있기를.
시간은 어차피 흐른다. 내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한 달은 지나간다. 그렇다면 적어도 흘려보내지 말고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채워보자. 그것이 달력을 넘기는 이 순간, 내가 나 자신과 하는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