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약자석

by 거의모든것의리뷰

"나는 70대야"

"나도 60대야"

지하철의 한 구석에서 들려오는 어르신들의 목소리.

노약자석에 앉기 위해 누가 더 '노인'인지 겨루기를 하려는 걸까.


노약자석은 노(老) 약(弱) 자석으로 노인뿐만 아니라 몸이 불편한 장애인 임산부 등에게도 개방된 공간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노약자석은 '노인'을 위한 전유물이 되어버렸고 노약자석에 앉아있어야 할 임산부들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노약자석은 특이하다. 일본의 우선석이나 미국의 'priority seating'은 평소에는 본인의 역할을 하다가 노약자가 보이면 비켜주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결계가 쳐져 있는 것처럼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노인들에 대한 우선권보다는 어떤 장애를 가진, 실제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좌석이다. 우리나라처럼 나이를 자랑하는 노인들은 해당 좌석에 앉지 못할 것이다. 저 지하철의 반대편까지 목소리가 들릴만큼 정정하신 분들이 노약자석을 차지하는 이유는 노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악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패턴이 노약자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는 원래 취지와 다르게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제도들이 많다.


여성 전용 주차구역은 본래 임산부나 육아맘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성별만으로 구분되는 특권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휠체어 접근 가능한 화장실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짐이 많은 사람이나 유모차를 끄는 부모도 사용할 수 있지만, 마치 절대 금지구역처럼 여겨진다. 이것들은 원래의 선한 의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경직된 규칙이 되고, 그 규칙이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배려는 강제되는 순간 배려가 아니게 된다. 그것들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괜한 불 멘 소리와 불평등은 자칫 역차별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것에 대한 해답은 노약자석을 다시 '배려석'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필요한 사람이 필요할 때 앉을 수 있고, 더 필요한 사람이 오면 양보하는 유연한 공간으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좌석의 색깔이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노인 공경은 노약자석을 비워두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순간에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진정한 사회적 배려는 규칙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체화된 문화로 만드는 것이다.


노약자석이라는 작은 공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규칙과 경계로 나뉜 사회인가, 아니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인가? 답은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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