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정은 너의 감정보다 항상 크다.
어느 날, 체육 시간에 운동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축구 골대가 머리 위로 떨어지면서 충격으로 바닥에 쓰러지게 되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고,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의 나의 상황은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 피도 안 났고, 정신도 결국에는 돌아왔고 멀쩡하게 거동이 가능한 상태였다. 급하게 진료를 할 이유도 없었고 엑스레이를 찍고 천천히 봐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나에게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커다란 축구 골대가 쓰러지며 머리에 부딪힌 것은 전무후무한 상황이었고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몸을 지배하며 서러움이 몰려왔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완전한 이해와는 조금 떨어져 있다. 그것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감의 영역은 오직 상상에 의한 것으로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 단전에서 올라오는 슬픔, 기쁨, 분노 등의 감정이 타인에게 보이는 크기는 얼굴에서, 말에서 보이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공감은 결국 그의 감정을 표정과 행동에서 추측하여 그것이 나타나기까지의 나를 대입해 보는 것이기 때문에 글을 읽고 해석을 하여 나의 상황에 대입하는 것이지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다만 그 감정의 크기는 심리적 거리에 따라 원근감이 느껴지는데, 타인과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감정은 커다랗게 다가오고 타인일수록 방관자가 되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이 모든 인간관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 "내가 더 사랑한다"라고 주장한다. 다툰 후에는 각자 자신이 더 깊이 상처받았다고 느낀다. 이것은 거짓말이나 과장이 아니다. 각자에게는 그것이 진실이다. 상대방의 작은 무관심도 큰 상처로 느껴지고, 나의 작은 배려는 큰 희생처럼 여겨진다. 내가 느끼는 설렘, 그리움, 질투의 강도를 상대방이 똑같이 느끼고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온도의 감정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싸움이나 갈등 상황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같은 말다툼을 했어도 내가 받은 상처는 깊고 오래가는 반면, 상대방은 금세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내가 흘린 눈물의 무게와 상대방이 느꼈을 미안함의 무게가 과연 같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때때로 친구에게, 동료들에게 고민거리나 슬픔을 털어놓더라도 그 감정의 폭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사람들마다 감정의 폭과 이해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 폭력 가해자에 대해 사람들은 분노하고 복수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해 통쾌함을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더 글로리를 보며 느꼈던 감정의 크기가 학교 폭력과 무관한 사람들이 느끼는 영역과는 다를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통쾌함이라는 감정보다 그러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 여전히 남아있는 두려움,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음에 대한 절망감까지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에 대한 수용이 필요하다.
우리는 '완전한 이해'라는 환상을 포기해야 한다. 상대방이 나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이다. 대신 불완전하지만 진심 어린 이해의 시도 자체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보여주는 50%의 공감도 그들이 나를 위해 기울인 소중한 노력의 결과다.
또한 나 역시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이미 그들의 내면을 과소평가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들의 침묵이 무관심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감정일 수도 있고, 그들의 담담함이 냉정함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위한 배려일 수도 있다.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나의 눈물과 그의 눈물이 동일한 감정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눈물의 농도가 다르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그 시도 자체가 서로를 향한 관심이자 애정이다. 애초에 불완전한 인간과 인간이 만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와 인연을 만들어낸다. 비록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는 없지만 친한 친구의 성대모사를 할 수는 있는 것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더 넓은 세계로의 이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