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이 아니라 다리로
1710년 영국에서 저작권법이 제정되면서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꽤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우리 모두가 저작권에 대한 관심을 가진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영화나 음악, 소설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복사하고 주변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작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었고 관련 법들이 강화되면서 '저작권'이 당연하고 익숙한 세상으로 발달했다.
저작권은 마치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어떤 창작물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하면서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해야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언듯 보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창작물에 대해 벽을 쌓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저작권은 문화적, 인문학적 교류를 가속화하며 저작권을 통해 사회 전반적으로 더 빠르고 다양한 발전을 만들어낸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저작권이 사람들의 창작활동에 대한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창작활동을 통해 인세를 받고, 음원에 대한 수익금, 그림을 판매하면서 적절한 보상을 받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오직 창작활동을 통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작권이 없던 시절, 책을 쓰거나 노래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취미활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돈과 권력이 있는 지배계층들의 소소한 일거리였고 그들의 취향이나 유행에 따른 창작물들만이 지금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하지만 창작활동을 통해 돈을 벌게 되면서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문화가 발생하고 사라지면서 다양성의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두 번째는 저작권을 통해 개개인이 창작물들이 쏟아지게 되면서 더 다양한 문화들이 꽃피우게 되었다. 발전은 교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수학과 과학과 같은 학문뿐만 아니라 음식, 문화 등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요소요소들 모두 다른 것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 한식과 양식을 섞어 파인다이닝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고유한 재료로 양식과 혼합하여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음식을 선보이기도 한다. 영화계를 봐도 디즈니의 '라이온 킹'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겨울왕국'은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고, 새로운 창작자들은 기존의 창작물들을 기반으로 또 다른 다양한 교류의 재료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저작권은 다양한 문화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창작물들을 보호하고 장려하는 역할을 하며 현대 사회의 문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디지털과 AI의 결합은 때로 저작권을 모호한 경계에 가져다 놓았다. 특히 '밈'이 그 선두에 서고 있다. 밈의 확산속도가 전 세계에 퍼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고 그 유지시간 역시 짧아지고 있다. 게다가 밈은 기존의 이미지나 영상에 대한 변형과 재해석을 통해 전파되면서 저작권을 무력화하기도 한다. 유튜브나 틱톡 등의 플랫폼에서는 재해석된 이미지와 영상들이 원곡보다 더 유명해지기도 하며 오히려 '역주행 신화'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2차 창작물들이 원 저작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홍보 효과를 주는 것일까? 답은 단순하지 않다.
이전에는 단순히 전체 창작물에 대한 보호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기술의 발전에 발맞추어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을 신경 쓰지 않는 저작권은 자칫 무분별한 저작권 침해로 문화 발전을 저해하고 경직된 문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것, 결국 균형이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문화의 자유로운 교류와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창작자와 사람들 간의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창작자들의 노력에 정당한 보상을 보장하면서도, 문화가 자유롭게 교류하고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저작권의 목적이어야 한다.
점점 더 많은 AI가 창작하는 시대가 오고 있고, 개인 창작자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지금, 300년 전에 만들어진 저작권 개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술의 발전과 문화의 변화에 맞춰 저작권도 진화해야 한다. 우리의 문화적 자산을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이자 개인의 권리와 공공의 이익, 보호와 공유 사이의 섬세한 균형점을 찾아가야 한다. 다음 300년은 어떤 모습일까? 그 답은 우리가 얼마나 지혜롭게 이 균형을 잡아가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