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으쓱으쓱, 영아연축?
언젠가부터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기저귀 갈이대에 눕혀놓으면 어깨를 으쓱으쓱 거리는 행동을 반복하곤 했다. 표정이 나빠 보이진 않았지만 행위가 자의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행동을 하는 횟수와 강도가 강해지는 것 같아 불안했다. 결국 12월 22일에 약 5분간 영상을 자세히 찍어놓고 지역의 유명한 소아과를 예약했다.
남편, 우리 크리스마스이브에 소아과에 가야 해.
영상을 잠깐 보신 소아과 원장님은 지체 없이 진료의뢰서를 작성하시며 대학병원을 추천하셨다. 괜찮아유~ 한마디 들으러 가는 거라며 애써 마음을 다독이던 우리 부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아이가 대학병원이라니..
업무차 몇 번 들러본 게 전부던 대학병원에 내 아이의 진료를 위해 가야 한다니!!
소아과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대학병원 진료를 예약하고, 나는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신생아 경련, 영아연축, 뇌전증, 인지장애, 발달장애, 뇌손상.. 무서운 단어들만 보였고, 우리 아이와 비슷한 영상들만 노출됐다.
어째 영상 속 아픈 아가들의 증상이 전부 다 우리 아이와 비슷한 것만 같은 망상이 시작됐다. 상상력이 풍부한 나는 이미 우리 아이가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것 마냥 현실적인 부분들을 고민하고 결정해보기도 했다.
땅콩이가 장애가 있더라도 나는 백 살까지 함께 살며 땅콩이를 끝까지 잘 키울 거라고.
대학병원 교수님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셨다. 영상만 봐서는 영아연축일 가능성도 있고 아닐 가능성도 있으니 뇌파 검사와 MRI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또 한 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아이가 검사라니.. 엄마 아빠도 안 해본 뇌파 검사라니!!!!
남편과 나는 병원에서 나오면서 진료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점심을 뭘 먹을지, 어떻게 하면 뇌파 검사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을지만 고민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12월 29일 오전, 뇌파검사는 비교적 편안한 상태로 끝났다. 그리고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엄마는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그 이후로 어깨를 으쓱거리는 증상은 거의 사라졌고, 의심스러웠던 행동들 모두가 통제가 가능한 자의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땅콩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저 예민한 엄마의 극성스런 병원 진료로 끝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엄마가 심장마비로 쓰러지신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하늘이 무너진 줄 알았다가, 하늘이 무너질까 봐 불안한 마음에 휘청이는 하늘을 애써 외면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하늘이 무너져도 나는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식이 아프다고 생각하니 땅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발을 디뎌 걸을 수도, 하늘을 날 수도 없을 만큼 절망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아픈 아이로 인해 내 일상과 미래가 모두 불안해질 것이라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다. 아픈 아이는 나름의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겠지만, 그 삶을 지켜보는 나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고 몸이 피로해질까 겁났다. 아이만큼 내 인생도 소중하기에.
대신 아프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뇌전증이나 발달장애는 본인보다 가족이 더 아프기에.
어쨌든 뇌파 검사의 결과는 1월 4일 오전에 나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탁해, 땅콩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