폄하당하는 고귀한 일
분유만 먹을 때에는 몰랐다. 그때가 행복한 시기라는 걸.
이유식을 시작하니 할 일이 어찌나 많은지. 지난 명절 연휴 내내 아기가 먹을 채소 큐브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편이 아기를 전담해 줄 수 있을 때 많은 것들을 해놓고 싶었기에 욕심을 낸 것도 사실이다. 주방에서 뚝딱거리는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말했다.
- 너무 힘든 거 같은데 그냥 시판하지 그래?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집안일, 특히 요리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무가치한 노동이라고 생각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먹는 것은 금방 끝나버리고, 심지어 늘 맛있는 음식이 탄생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대부분 외주를 주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그런데 아이를 낳고 사람으로 만들려니 집안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고 반성했다. 건강한 음식을 손수 해야 하고, 아이가 기침을 하지 않도록 온습도를 잘 맞춰야 하고, 각종 유해물질을 없애기 위해 쓸고 닦고 삶고 소독하면 하루가 금세 끝나버렸다. 이 모든 노력들이 지금의 건강한 나를 만든 것이다. 엄마 만세.
그런데 그 노력들이 남편의 말 한마디에 폄하당하고 말았다. 남편의 발언은 내게 너의 노력은 나를 피곤하게 하니 우리 그냥 편한 방법으로 해보자는 말로 들렸다.
그동안의 내 노력이 몰살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요알못인 내가 채소를 다듬고 찌고 갈아서 큐브에 담아 얼리는 그 과정이 무쓸모한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한편으로는 남편 또한 하루종일 주방에 서서 애쓰는 내가 안쓰러워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아빠가 하나뿐인 딸에게 매일 세끼 배달음식을 먹이고 싶겠는가.
양가감정을 모두 이해하려다 보니 나는 왜 화가 나는지 몰라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입꾹닫)
이틀정도 고민하다가 나는 남편과 나의 집안일에 대한 온도의 차이를 깨달았다. 나는 하루종일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보고 있지만, 남편은 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돌아오니 낮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 상태에서 퇴근 후 쉬지 않고 집안일을 또 하려니 더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30km/s로 서서히 오랜 시간 달리고 있었다면, 남편은 갑자기 100km/s로 급히 달려야 하는 상황이 스트레스 강도를 높일 수 있겠지. 그러니 남편은 아기가 자고 나서도 계속되는 큐브 만들기 전쟁이 힘들었으리라.
결론적으로 남편의 발언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집안일로 지친 나와 남편 모두를 위해 제안한 제3의 방법이었다. 나만을 위한 제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니 나는 내가 화가 나는 포인트를 찾았다. 나 때문에 본인이 힘들었구나 인정하니 차라리 속이 편했다. 그리고 나는 시판 채소 큐브를 주문했다.
사실 나도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참이었다. 하루에 4~5 종류의 채소를 씻고 다듬고 찌고 다져서 큐브에 얼리는 작업은 나를 기본 두세 시간을 주방에 묶어놓았고,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엄마를 볼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 행복한 가족을 위해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그리고 아빠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다. 완벽한 이유식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남편, 나 이제 조금 힘을 빼고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볼게. 기다려줘서 고마워.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