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까지 살아온 이야기 - 2. 상고에 가게 된 이유
요즘은 특성화고라고 꽤나 멋진 명칭이 붙었지만 라떼는 실업고, 상고가 다였다. 나는 이 어감자체가 주는 느낌이 늘 별로라 생각했다.
어릴 때 나는 꽤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였는데, 책 읽는 걸 좋아하고 그만큼 주목받는 것도 좋아해, 책에서 본 어렵고 멋져 보이는 말들을 자주 쓰곤 했다.
지금은 스스로 이해도 느리고 지능이 높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똑똑한 아이란' 말 잘하는 아이에게 종종 따라붙는 수식어였던 것 같다.
집안은 화목했고 나는 사랑받는 아이였으며 가정의 관심과 보호 아래 긍정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게다가 주목받는 것도 좋아했으므로 임원을 뽑지 않았던 1학년과 선거에 나가지 않은 6학년을 제외하곤 초등 내내 임원을 맡았다.
초1-2학년 시기부터 가정의 불화와 아픔의 시간들이 꽤 오래 지속됐지만 내가 처한 상황과는 별개로 나는 유년기의 행복한 기억들로 초등까지 밝고 건강하게 지냈다.
그러나 6학년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가장 믿었던 친구로부터 큰 상처를 받고 난 후 내 성격은 180도 바뀌었다.
전에 없던 강박과 불안, 우울감이 한꺼번에 몰려왔으며, 중학교 진학이라는 새로운 환경까지 더해져 휴학을 고민할 정도로 나의 여러 신경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어쩌면 유년기에 쌓인 관심과 사랑이 이때쯤 다 고갈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때 하필 사춘기와 함께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증상은 시험기간 때면 더 심해졌는데 시험 때가 다가오면 불안과 두려움에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구 하나 나에게 공부와 성적으로 압박을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너무 불안하고 두려웠다.
엄마는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전화로 내 상태를 체크하며 다음 할 일을 정해주실 정도였는데 그 할 일이란 비디오 빌려보기, TV 보기와 같이 불안을 잠시나마 미룰 수 있는 시험과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나중엔 엄마와 휴학을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불안 증상이 심해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외엔(시험 기간을 제외한 시간들) 또 그럭저럭 잘 지냈던 것 같다. 좋았던 선생님도 꽤나 의리 있던 친구들도 생각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 때는 중3이 되면 여러 실업고에서 홍보차 학교를 방문했다. 대체로 이미 취업을 나간 고3 언니들이 대기업에 취업한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는 방식이었는데 실업고에 진학하면 돈을 벌며 야간으로 대학 진학도 가능하다는 류의 얘기들이었다.
그때 홍보차 왔던 선배의 얼굴이 기억나는 걸 보면 꽤나 스토리가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 선배 말처럼 진학을 원했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취업 후에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야간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그중 일부는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들도 있었으며, 학교도 내신으로 서울, 경기권 안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시험 강박을 이기며 수능을 칠 자신이 없었던 나로서는 일찍부터 취업해 돈을 벌 수 있고 원한다면 수능 없이 내신으로 대학도 갈 수 있다는 언니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성적이면 장학금을 받고 갈 수 있었기에 애매한 성적으로 인문고에 가서 상위권을 유지하기 힘들 바엔 실업고 진학을 선택하는 편이 뭔가 합리적인 선택 같았다.
엄마는 인문고에 진학하길 원하며 선생님께 부탁하여 나를 설득시켰지만 나는 결국 실업고 진학을 결정했다. 어쩌면 학구열이 심하지 않은 뺑뺑이로 가는 그저 그런 공립중학교였고 그런 분위기와 맞물려 내릴 수 있었던 선택 같기도 하다.
그렇게 진학한 고등학교는 실업고지만 입학 시 내신 커트라인이 있고 복장 규율도 동네서 유명할 정도로 엄한 사립고였는데 중학교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에 나는 사춘기 때도 없었던 뒤늦은 반항심이 터졌었다.
중학교 때와 다르게 아이들은 선생님 눈치를 너무 많이 봤고 내 생각엔 인신공격 수준의 날 선 말로 예민한 시기의 여고생들에게 상처를 주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중학교 때처럼 준비물을 못 챙기거나, 지각 같은 시답잖은 일로 종아리에 맷자국을 남기는 일은 없었지만 나에겐 그것보다 전자가 더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졸업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고등학교 졸업을 못해 다시 다녀야 한다는 표현하기 힘든 찝찝함을 남기는 꿈을 꾼다. 나에겐 악몽이다.
물론 좋은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내가 느낀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랬었다. 또 여고의 분위기도 나한테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에겐 몇몇 선생님들과의 기억이 상처와 아쉬움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은사님일 테니 이 이상 언급하진 않으려 한다.
대학 진학 대신 나는 다양한 업종의 회사 회계팀에서 근무했고 10년 남짓 근무한 경험과 지점 신입 회계 사원들을 교육한 경험으로 크몽에 전자책도 한 권 출간했다
https://kmong.com/self-marketing/507595/IFmVQ9v2pt
고등학교 시절의 개인적이 경험과는 별개로 나는 특성화고도 매우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원한다면 현재도 내신으로 인문고 보다 좀 더 수월하게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굳이 대학진학을 바로 하지 않고 빠른 취업을 원한다며 특성화고는 더욱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졸업 전 시작한 사회생활이 녹록하지 않았단 것은 아니다. 내가 고졸인 걸 알고 우리 회사는 왜 학력 인정을 제대로 안 해주냐고 면전에서 나에게 묻는 후배도 있었고, 본인 일을 나에게 토스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사수도 있었다. 어쩌면 처세에서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는 내 기질 탓도 있었을지 모른다.
회사를 다니며 야간으로 대학도 다니던 성실한 고등 동창들 중에는 단순히 대학 졸업장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하던 친구도 있었는데 그때 나는 그건 너무 맹목적인 목표에 비해 많은 시간과 돈, 체력을 투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대가를 이렇게 마흔이 넘어 진한 컴플렉스로 치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게 컴플렉스의 본질이 아니라는 건 안다.^^; 나는 너무 오래 경제적 가치가 손에 잡히지 않는 주부로 살았고 또 지금 그 생활에 만족하고 있지 못하므로..
그래서 고3 전부터 임신 전까지 인풋 없이 쥐어짜 내기만 했던 나의 경제활동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꿔보려 한다. 그러려면 당장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하고자 하는 가슴 뛰는 일들을 차곡차곡 쌓아가야겠지.
언제나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만 쫓을 수밖에 없었던 어리고 작았던 내 안쓰런 시야를 넓혀 스스로에게 투자해 보려 한다.
그런 뜻에서 브런치에 기록을 남기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의미 있는 첫 발 돋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