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항상 다음 달의 사람인가

다음 달은 늘 온다

by 필연

월급이 들어온 밤이었다.

이불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잠깐 안심이 됐다. 그리고 습관처럼 투자 앱을 열었다.

수익률 그래프. 다른 사람들의 수익 인증. 나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화면을 몇 번 넘겼다.

그리고 앱을 닫았다.

오늘은 아니야. 이번 달은 지출이 좀 많았으니까. 다음 달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다음 달은 왔다.

그런데 다음 달에도 뭔가 끼어들었다. 경조사비. 보험료. 아이 학원비. 이번 달도 애매하네. 다음 달에 하자.

다음 달은 또 왔다. 그리고 또 지나갔다.

한 달. 두 달. 반년. 일 년.

달력만 넘어갔다.


이상한 건, 게으른 게 아니었다는 거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아이들 밥을 차리고, 주말에 장을 보고, 가계부도 썼다. 해야 할 일은 했다. 할 수 있는 일도 했다.

기사도 읽었다. 유튜브도 봤다. 어떤 날은 한 시간 넘게 검색만 하다 잠든 적도 있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다. 정보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만 빼고.

새로운 걸 시작하는 일. 그건 늘 다음으로 밀렸다.


시작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 넣기엔 타이밍이 애매하다. 좀 더 공부하고 나서. 여윳돈이 좀 더 모이면. 시장이 좀 빠지면 그때.

하나하나 다 그럴듯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타이밍은 정말 애매했고, 여윳돈은 정말 부족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조건이 맞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타이밍이 딱 맞은 적도, 공부가 충분하다고 느낀 적도, 여윳돈이 넉넉했던 달도 없었다.

조건은 늘 부족했다. 그리고 나는 그 부족함을 근거로, 매번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다음 달에.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미룬 건 투자가 아니었다. 판단이었다. 결정이었다. 불확실한 것 앞에서 내 이름을 거는 일, 그걸 미룬 거였다.

확실해지면 하겠다는 말은, 확실해질 때까지 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확실한 때는 오지 않았다. 한 번도.

리스크를 따지고, 조건을 비교하고, 타이밍을 재는 일. 나는 그걸 신중함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신중함은, 어떤 조건을 갖다 붙여도 결국 "아직은 아니야"로 끝났다.

합리성이 나를 지켜준 게 아니었다. 합리성이 미룸의 옷을 입고 있었을 뿐이다.


나도 그랬다. 몇 년을 그렇게 보냈다.

관심은 있었고, 정보도 쌓였고,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통장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만 지나 있었다.

그때의 나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다음 달은 늘 왔다.

그런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다음 달은 계획이 아니다. 유예다.

.

문제는 계획이 아니라, 이름만 계획인 미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