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안해서가 아니라, 덜 불안해서 멈춘다

안정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하여

by 필연

됐다, 싶은 순간이 있었다.

부동산이 한 채, 두 채 늘어나면서였다. 월세가 들어오고, 자산이 쌓이고, 숫자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처음엔 불안했다. 대출이 무서웠고, 세입자가 걱정됐고,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잠이 안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괜찮아졌다. 월세가 들어오고, 모기지가 나가고, 남는 건 남는 대로, 빠듯한 건 빠듯한 대로. 예측이 됐다. 삶이 돌아갔다.

이 정도면 괜찮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괜찮다고 느끼는데, 어딘가 찝찝했다. 편한데 가만히 있으면 뭔가 허전했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이 질문이 가끔 올라왔다.

크게 불안한 건 아니었다. 위기도 아니었다. 그냥, 잔물결 같은 거였다.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그래서 무시했다.


안정은 달콤하다.

내일이 어제와 비슷할 거라는 감각. 큰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루틴이 나를 데려다줄 것이라는 안심.

이게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거다. 흔들리지 않는 삶. 위험하지 않은 삶.

문제는, 그 안에서 멈춘다는 거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면, 보통 불안을 떠올린다.

무서워서. 실패할까 봐. 잃을까 봐.

맞다. 불안은 사람을 멈추게 한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나를 진짜 멈추게 한 건 불안이 아니었다.

덜 불안해서 멈췄다.

큰 위기가 없으니까. 당장 급한 일이 없으니까. 지금 이대로도 돌아가니까.

불안했으면 오히려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등이 뜨거우면 뛰게 된다. 그런데 등이 따뜻하면? 거기 눌러앉는다.


나도 그랬다.

부동산이 안정되고 나서, 한동안 새로운 걸 시작하지 않았다. 금융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급하지 않았다.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삶을 바꿔야겠다는 감각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안정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런데 안정이 지켜준 건 나의 현재였다. 나의 다음은 지켜주지 않았다.


이건 게으름이 아니다.

안정 속에서 멈추는 건, 뇌가 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위험이 없으면 행동할 이유가 줄어든다. 지금이 괜찮으면 내일을 바꿀 동기가 사라진다.

그래서 안정은 이상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를 위험에서 지켜주면서, 동시에 나를 여기에 고정시킨다.

불안은 적어도 신호를 준다. 뭔가 해야 한다는 신호. 그런데 안정은 신호를 주지 않는다. 괜찮다고,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고, 조용히 속삭인다.

그 속삭임을 듣고 있으면,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안정을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안정은 좋은 것이다.

다만, "이대로 괜찮은 건가"라는 질문이 가끔 떠오른다면, 그걸 무시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건 안정이 주지 않는, 유일한 신호니까.

안정 위에 아무것도 얹지 않으면, 안정은 그냥 제자리가 된다.

편안한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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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은 그 안정 속에서도 조용히 부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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