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list: 날씨의 요정
평소에 새로운 노래를 찾아 듣지 않는다. 이미 많이 들었던 노래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다. 그러다 멜로디 라인과 곡의 순서를 외워버릴 때쯤, 그러나 여전히 가사는 우연히 옆에 앉은 사람들의 대화처럼 스쳐 지나가도록 둘 때 새로움을 찾아 떠난다. ’플리‘로.
플레이리스트는 계절이나 감정을 주제로 콘셉트를 잡고 비슷한 결의 노래를 담아 만들어진다. 초여름엔 유독 싱그러움을 찾게 된다. 날씨, 맑음, 초록, 하늘, 풀숲, 여름… 관련된 사진이 영상의 전체를 차지하고, 사람들의 눈을 집중시킬 제목이 붙여진다. 아주 유명하지는 않은 노래가 줄 서있지만 그 안에 내가 아는 노래가 꽤 많다. 하지만 아는 노래보다는 모르는 노래를 듣고 싶다. 좋아하는 가수 A의 대표곡 말고 숨겨진 곡을 듣고 싶다.
나만의 엄격한 기준을 따져가며 들을 플레이리스트를 골라보지만 5%의 아쉬움들을 마주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흥이 깨진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하나를 고르자 결정을 내릴 무렵, 우연히 알고리즘에 의해 선택받아 나타난 처음 보는 영상. 담백한 제목에 내가 찾던 바로 그 영상이다. 오랜만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을 때의 감정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싱그러움을 대표하는 초록 풀숲에 귀엽게 뛰어오는 강아지, 뒤에는 나무 한 그루와 집 한 채의 정사각형 사진. 내가 작년 여름에 처음 알게 되어 1~2번 들었지만 좋아하는 곡이 처음을 끊는다. 거의 1년 만에 마주하는 노래가 이토록 반갑다.
그리고 첫 곡은 당당히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을 차지한다. 넌 마치 그럴 자격이 있어. 네가 정체성이야-라고 제작자가 말하는 것 같다. 나도 그 의견에 격하게 동의한다.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나서 호감이 급격하게 올라간다. 댓글에는 꼭 타임라인이 있고 훑어보기는 가장 처음 필수로 거치는 관문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두 곡을 차지하고 들어 본 적 있는 가수의 곡들이 또 두 곡, 나머지는 모르는 곡들이 있다. 완벽하다!
33분 길이, 무언가에 집중하면 너무 짧게 느껴질 시간. 그 시간은 채널 주인장의 감성을 꾹꾹 눌러 담은 그가 아끼는 곡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나랑 비슷한 향이 느껴지는 사람이 엄선해서 고른 곡들을 소개해준다는데 이보다 확실한 믿음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초반 몇 초에 계속 들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취향은 보물과도 같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보물을 꺼내든 사람이다. 보물을 자랑하려는 마음을 어찌 숨길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이 더 예쁨 받고 인정받길 원하는 심리는 모두가 똑같다. 보물은 꽁꽁 숨길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르면 가치를 매길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이 소유하지는 않으면서 알아볼 사람은 알아볼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증명된다. 결국 가치를 드높이고 아껴주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나누어 주려한다. 타인을 위해서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욕구가 크다. 이타심일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귀여운 이기심에 가깝다. 하지만 이기심으로 인해 보물의 가치는 쭉 보전되고 사람들이 탐내는 것이 된다. 따라 가지려 하는 것과 진정으로 소유한 자는 분명 다르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취향을 전파해도 흔해지거나 퇴색되는 일이 없다. 전해준 사람이 더욱 빛나보인다. 자신만의 보물을 타인에게 보여줄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지? 그가 가진 다른 보물은 무엇일까. 궁금함이 커진다.
비슷한 보물을 소유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네가 가진 것과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고 교환하고 살펴보는 시간. 그 시간들로 인해 각자의 보물은 더욱 풍성해지고 광택이 생긴다. 그걸 아는 사람들끼리의 비밀은 자꾸만 쌓여간다. 나눠주는 건 절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해지는 일이라는 것. 보물을 나눠주는 사람들은 잃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부를 축적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나눠주는 행위가 여유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어준다면 또한 그의 전략이었을 거다. 아끼는 것들을 소개하는 마음에는 상대도 아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부자가 된다면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쉬운 부자가 되는 방법이 아닐까? 귀여운 이기심이 조그맣게 들려온다.
이게 바로 내 보물이야, 너도 원하지? 바란다면 나눠줄게. 너의 보물도 나눠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