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 17 SEP 2017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조이가 쏘아올린 링크로 부터 시작되었다. 델리밋업이라고 공유한 링크에 슬랙 팀 채널에서 사람들이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크게 관심없던 내가 채널을 봤을땐 이미 델리밋업은 몇주 전 행사였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아쉬어 하고 대신 뭄바이밋업이 2주뒤에 있을거란 내용이 공유된 상태였다. 이때 제이가 한번 다녀오라고 출장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밋업보다 "뭄바이"라는 말에 흥분한 나는 링크를 눌러 신청버튼을 찾았으나 아뿔싸 400명이나 되는 참가인원이 벌써 마감된 모양이었다. 채널에 있는 사람들 모두 실망했다.
뭔가 이대로 끝내긴 아쉬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인도에서 열리는 밋업에 인도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이 간다면 행사 관계자들도 관심있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트를 뒤져 이메일을 찾았는데 이메일보다 더 좋은걸 찾았다. 호스트에게 메일을 보내는 기능이 있었던 것! 인도에서 일하는 한국에서 온 기획자라고 소개하면서 밋업에 정말로 참석하고 싶다고 메일을 썼다. 보내고 나서 제시에게도 메일을 보내라고 했다. 이왕이면 여러명이 가고 싶다고 하는데 어떤 행사관계자가 싫어하겠냐고- 제시는 그녀의 유려한 영어를 십분 발휘하여 구구절절 감정에 호소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우린 정말 "훌륭한" 너희 밋업에 참석하고 싶어" 라고-
일주일이 지났다. 생각날때마다 메일함을 눌러 답장이 왔는지 확인했다. 행사시작이 일주일정도 남았는데 출장을 가는건지 마는건지 어떻게 되는건지 답답했다. 차라리 안된다고 말이라도 해주면 기다리지도 않을텐데-
목요일밤, 운동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제시가 소리를 질렀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답장왔어요! 뭄바이밋업에서 답장이왔어요!"
기대와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자 꺅꺅대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이 기쁘고 놀라운 사실을 팀 채널에 공유했고 건너방에 있던 니나도 이게 왠일이냐며 방으로 들어왔다. 제시가 크게 한방 해낸 것이다. 심금을 울리는 그녀의 이메일이 우리 모두를 뭄바이로 갈 수 있게 했다.
밋업이 주말에 있으니 출장도 여행도 아닌 것이 기대 또한 어정쩡한 상태로 델리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지난번 아부다비로 떠났던것처럼 6시에 딱! 출발하기 위해서 퇴근 시간 몇분전에 6명이 같이 탈 수 있는 우버를 불렀는데, 준은 하던 작업이 끝나지 않아 따로 출발하기로 했다.
출발, 해가 지기 시작했다. 신나게 달리던 차는 지난번 때처럼 톨게이트를 지나 막히기 시작했다. 차가 막히니 와이파이도 막(?)힌다. 주기가 짧은 대화가 몇번씩 오고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다들 퇴근 하기 직전까지 회의로, 일로 버닝한 상태에서 금밤 모드로 바뀌는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거의 공항에 다 온것 같은데, 갑자기 기사 유턴을 한다. 지난번에도 이쯤에서 유턴을 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른 장소도 아니고 공항이니 잘못 갈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밖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순간 차가 막힌다. 잠시 정차가 아니라 꽉 막힌 상태같았다. 갑자기 준이 떠올랐다. 그때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는 준에게 연락을 했다. 출발한지 30분 정도 지났다는 소식과 준이 있는 곳도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우리도 거의 다와서 차가 막힌 다는 소식을 건냈다. 갑자기 정체가 풀리고 차가 달려나가기 시작하는데 주변의 풍경이 확실하게 공항가는 길이 아니었다. 호텔들과 몰들이 시야에 잡혔다. 운전사에게 터미널3으로 가달라고 하니, '아, 그랬구나?'하는 표정으로 차를 돌린다. 아뿔싸. 시내에서 차를 타고 공항을 가는데 공항근처 호텔로 오다니- 차를 다시 돌려 유턴했던 아까의 장소에 다다르자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공항은 그곳에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오늘만은 반드시 라운지에 가고 싶은데 길바닥에서 20여분을 넘게 버리다니!
여느때처럼 여권과 항공권을 준비했다. (인도 공항은 탑승자가 아니면 실내로 아예 출입을 못하게 되어있다.) 어짜피 항공으로 부칠 짐도 없어서 체크인키오스크에서 발권을 했다. 나, 제시, 니나, 셀비 순서대로 입장해서 모두가 발권을 마쳤는데도 영이 들어오질 않는다. 영을 찾아 제시가 갔고, 셀비가 갔다. 어서 라운지로 가고 싶은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니나와 나도 곧 제시와 셀비를 따라 게이트로 갔다. 도착해보니 영이 가지고 있는 전자항공권이 '모두' 한글로 되어있어서 직원이 체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전자항공권이 한글로 되어있어도 최소한 영문이름, 출도착지는 영어로 되어있으니 직원이 알아서 체크를 하는데, 전부 한글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뭄바이조차 '뭄바이'라고!) 그와중에 도착한 준은 입장을 기다리면서 안에 있던 우리를 발견하고 허공에 크게 반원을 기리며 해맑게 인사했다.
공항 한쪽 편에 비행사부스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발권하면 발권 티켓으로 입장이 가능했고,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영은 바깥에, 우리는 안에서 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라운지로 자꾸만 향해가는 마음을 알아챈 셀비가 먼저 어서 들어가보라고 말을 해준다. 라운지에서 맛있는 '뭐'라도 가져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유리벽 건너편에 영에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도메스틱이여서 그런지, 날이 그랬는지 보안심사에 줄이 없었다. 특별할 물건도 없어서 마음 편히 짐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내 가방을 들더니 가방을 열어서 물건을 다 꺼내라고 한다. '읭?' 가방을 열어서 바닥이 보일때까지 짐을 하나하나 꺼내 옆에 두는데, 보안요원이 롤리키보드를 집어든다. 뭐냐고 묻길래 키보드라고 하면서 펼쳐보여주니, '오....' 하는 표정으로 들고 가서 다시 심사를 한다. 엑스레이를 통과한 키보드를 이번엔 다른 보안요원이 들고 온다.
'다시 열어봐줄래?'
'예스예스'
'오.....!!! 되게 좋아보인다.'
진짜 부러운 표정이었다. 보안때문이 아니라 진짜 키보드인지 궁금해서 물어본 기색이 분명해보였다. 뒤돌아서는 힌디어로 동료과 얘기를 나누는데 '봤어? 봤어? 키보드야!!!' '거바 내가 키보드라고 했자나' 스크린을 보고 있던 보안요원도 보고 싶은지 엉덩이를 들썩이다 내가 다시 접어 가방에 넣는 것을 보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엉덩이를 붙였다.
갈길(?)이 바빴으므로 와인2병을 서둘러 사고 라운지 앞으로 갔는데 이런, 줄이 길게 서있다. 10명쯤- 더디게 줄어드는 줄에서 만석이 되지 않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만큼 충분한 와인이나 맥주와 함께 커리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점점 커졌다. 10여분정도를 기다려서 입장을 했다. 좌석이나 화장실등의 상태는 좋았지만 음식의 준비상태는 실망스러웠다. 마침 내가 입장한 시간에 사람들이 많이 몰렸기 때문일 수도 있었겠지만, 준비된 음식의 종류도 많지 않고 덜어먹을 접시나 포크도 모자란 상태였다. 거기에 가장 큰 실망은 맥주와 와인이 유료였다는 점이었다. 크게 실망한 나를 달래기 위해(?) 도메스틱 와인이 세금포함 500루피 가까이 내고 한잔을 주문했다. 니나와 나란히 앉아서 적잖게 실망한 내색을 애써 감추면서 커리와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길거리음식'을 먹었다. 다행히 맛은 좋았다.
보딩이 시작하고 출발시간이 30분쯤 남았을때 슬슬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뭐라도 챙겨가야하는 마음에 쿠키 두주먹을 크게 집어 휴지에 돌돌말아 가방에 넣었다.
지난번처럼 게이트가 멀지 않아서 느긋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탑승하고 나서 자리에 앉아서 짐을 정리하는데 니나가 '와인!'이라고 외쳤다. 젠장, 라운지에서 니나와 내 자리사이 어디쯤 둔 와인을 둘다 놓고 와버린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통로를 따라 자기 자리를 찾는 사람들을 거꾸로 헤쳐나가면서 비행기 문앞에 도달했는데, 승무원이 무슨일이냐고 묻는다. 중요한 물건을 두고 왔어요! 라고 외치자 승무원이 문앞에 있는 보안요원에게 말을 걸었다. 중요한 물건이 뭐냐고 묻길래, 순간 멈칫하다가 와인2병이라고 대답했다. 승무원은 보안요원에게 나갈 수 있도록 요청했고, 우리는 뒤에서 뛰어서 가면 10분내에 올 수 있다고 승무원의 말에 힘을 실었으나 보안요원은 강하게 안된다고 했다. 결국 승무원은 보안요원을 설득하는 대신 우리가 라운지에 연락을 해서 와인을 가져와달라고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뜻밖의 친절함에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염원을 담아 목을 길게 늘어 빼서 통로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른 승무원이 다가와서 출발시간 전에 와인은 못올 것 같으니 분실물센터에 가서 찾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잊어버린 물건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과 찾을 수 있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면서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뭄바이로 와인2병을 남겨둔채 출발했다.
자다깨기를 반복하면서 짧은 2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뭄바이에 도착했다. 활주로에 내린 비행기는 부지런히 탑승구를 향해 기어갔다. 창밖으로 바라보는 뭄바이 공항의 규모는 엄청 컸다. 다들 자연스럽게 델리가 인도의 수도니까 델리 공항이 인도 전체에서 가장 크고 화려(?) 할 거라고 생각했었나보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안으로 들어오니 뭄바이 공항이 델리 공항에 비해서 얼마나 규모가 큰지, 얼마나 현대적인지, 힙(?)한지 느낄 수 있었다. 연신 사진을 찍어가면서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구경하기 바빴다.
숙소를 따로 잡은 준과 밴이 없어 총 3대의 우버를 불렀다. 뭄바이 공항은 델리에 없는 우버/올라 픽업장소가 따로 지정되어있었다. 이미 공항의 규모에 뭄바이에 반하기 시작한 우리는 연이어 감동을 먹었다. 표지판을 따라 픽업장소에 도착하니, 우버 티셔츠를 입은 안내원이 밀려드는 차량을 통제하고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우리는 델리 촌년이었어!'
영이 외쳤다. 그랬다. 우리는 델리가 최고인줄 알았던 델리 촌년들이었다.
복잡한 주차장 구조에 10분을 넘게 기다려도 차가 오지 않자 제시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두바퀴쯤 잘못돌고 있었다. 그 사이 준은 또 다시 해맑게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우리에게 인사하고 먼저 떠났다. 아무리 뭄바이 첫인상이 좋았더라도 자정이 넘은 시간, 끈적한 공기가 피부에 켜켜히 쌓이는 찝집함과 피로까지 좋게 만들 순 없었다. 결국 제시는 우버요원!에게 전화기를 넘겼고, 그는 곧 우리를 차량이 있는 10미터쯤 떨어진 주차장으로 안내되었다. 나와 니나가 제시가 부른 우버에 탑승했다. 사무실에서 찾아봤을때 뭄바이공항에서 숙소까지 40분쯤 걸린다고 해서 하, 새벽에 또 먼길을 어떻게 나가 싶었는데 다행히 숙소까지는 10분 거리에 있었다.
어둠이 깔린 도로를 시원하게 내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5명이 함께 묵을 패밀리룸으로 예약한 무려 "그랜드 하야트"는 이름만큼 화려한 로비로 우리를 환영했다. 먼저 도착한 셋은 소파에 피곤한 몸을 던졌다. 10여분을 더 있다가 영과 셀비가 도착했고 우리는 체크인을 했다.
킹사이즈 침대1개와 트윈베드가 2개 있는 방이였으니 누가 침대1개를 쓰냐를 두고 말을 하다가 제시가 고맙게도 이것저것 예약하고 준비하는데 고생한 나에게 그 영광(?)을 돌리는게 어떻겠냐고 의견을 냈고 다들 고맙게도 동의했다. 안내원을 따라 기나긴 복도를 따라 도착한 방은 5347호. 거실과 부엌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큰방2개, 방에 킹사이즈 더블베드가 각각 있어야했는데 어? 침대가 1개가 모자른다. 안내원에게 내 킹사이즈 침대가 어디있냐고 묻자, 방 양쪽을 가르킨다. 아 뭐가 잘못되긴 했는데 따지기엔 여의치 않았다. 할말이 많은 표정으로 잠시 침묵으로 쳐다보자 안내원이 먼저 '침대 가져다 줄까요?'라고 한다. 옆에서 제시가 '공짜입니까?'라고 재빠르게 확인해준다. 무료라는 말에 알겠다고 하고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팩하나를 얼굴에 턱하니 올려놓고 소파에 드러누워 인스타와 페이스북을 오고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침대가 도착했다. 더 큰 우측방 탁자를 치우고 침대를 설치하는데 왠 라꾸라꾸가 도착했다. 안내원이 베딩까지 완벽하게 끝내고 사라졌다. 동료들의 호의로 자게 된 킹사이즈의 침대가 눈앞에 간이침대로 돌아오다니 인생지사 새옹지마(?)다. 소파에 있는 쿠션 몇개를 가져다 침대한쪽에 주르륵 세워두고 몸을 기대니, 생각보다 더 나쁘진 않았다. 몸을 눕히고 있으니 병원 침대에 누운 것 같았다. 마침 건너 방에서 이쪽방으로 온 니나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간호사 설정을 하며 나를 환자 취급한다. 그 광경을 보던 제시가 크게 웃었다.
알람이 울렸다. 몸을 일으키는데 침대도 몸도 삐걱거렸다. 제시도 마침 일어났다. 수영복을 챙기고 운동복을 입고 같이 나섰다. 한시간쯤 땀을 내고 수영장으로 이동하는데 밖에 있는 수영장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다른 쪽 수영장으로 안내받아 도착하니 영과 셀비가 기껏해야 허리쯤 오는 풀장에서 놀고 있었다. 같은 야외이긴 했지만 옆에 작은 모래밭위에 노래터가 있는걸 보니 가족용풀장인가보다. 아쉽지만 일단 풀장에 들어가니 그래도 마음이 여유로와진다.
셀비와 영이 먼저 숙소로 돌아가고 20분쯤 더 놀다가 제시와 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출발 준비를 마친 니나, 영, 셀비가 전날 델리공항에서 사온 스타벅스 샌드위치와 빵으로 아침을 준비했다. 영이 아기 주먹만한 딸기잼통을 만지작거리며 조금전에 전자렌지에 까맣게 태워먹은 크로와상을 아쉬워했다.
밋업장소는 호텔에서 40분쯤 떨어진 곳이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피곤함, 기대하는마음, 반대로 기대하지 않은 마음, 하루종일 영어를 듣고 말해야한다는 피로감 등으로 뒤섞인 상태로 밴을 타고 밋업장소로 향했다. 비는 세차게 내리붓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릭샤가 익숙한 노랑초록색이 아니라 검정색이다. 릭샤 안으로 미터기가 보였고, 릭샤를 운전하는 운전사들도 깔끔한 제복차림었다. '오! 릭샤블랙!'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나에게 셀비가 델리에 있는 릭샤도 (잘 키지는 않는) 미터기가 있고, 운전사들도 제복차림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렇다. 아무래도 뭄바이에 꽁깍지가 씌인게 분명했다.
밋업시작인 11시보다 5분 늦은 시간에 장소에 도착했다. 여전히 비는 장대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홀 천장에 걸려있는 커다란 현수막이 우리가 밋업장소에 잘 찾아왔다는걸 말해줬다. 건물에 들어서자 우측에 접수처에 가서 이름을 말했다. 혹시나 우리 이름이 없으면 어쩔까 했는데 그런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기대감이 스물스물 차오르기 시작했다.
홀로 들어서자 중앙 맨앞에 작은 무대가 설치되어있고 한쪽 면에는 책상과 의자들이 세팅되어있었다. 보타이를 한 웨이터들이 쟁반에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가지고 사람들 사이사이를 지나다니고 있었다. 접수처에서 준 이름표를 왼쪽 가슴팍에 붙이고 들어선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한 친구가 다가와서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사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그곳에서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는데, 외국인은 우리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지만 현재 구루가온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소개를 했다. 이미 그 자체로 우리는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그 친구가 다른 무리로 우리를 끌고 가서 우리들을 소개시켰다. 쏟아지는흥미롤운 시선과 함께 질문들이 사방에서 날라왔다. (무슨일하니, 너도 디자이너니? 어디서 왔니? 한국에서 왔다고? 사우쓰? 놀쓰? 오...그건 제발 그만 물어봐줘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또 다른 무리들이 와서 우리에게 인사하면서 같은 패턴의 이야기들을 3-4번쯤 반복한 것 같은데 그 중에 라마라는 친구도 있었다.
라마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매우 신기하게도 드리블에서 영이 레퍼런스로 저장했던 작업의 주인공이었다! ZETA 서비스의 디자인 헤더였는데, 우리 서비스와 카테고리가 많은 부분 겹쳐있어서 그가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작업들에 모두가 둘려모여 감탄을 연발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 소재가 떨어질 때쯤 라마가 강남스타일을 안다면서 주먹 쥔 손을 엑스모양으로 만들어서 팔을 앞으로 펼쳤다. 그 모습을 본 영과 나는 고맙지만 제발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우리 모두 같은 감정이라면서 본인이 인도인이라고 말할때마다 "아! 아이노우 슬림독 밀리언에어!"라고 한다고, 인도는 슬림독 밀리언에어가 아니라고! 소리쳤다. 격공하며 서로 크게 웃었다.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쉬고 있었는데 한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보다폰에서 일하는 친구들이었다. UX디자이너들과 그래픽디자이너들과는 어떻게 일을 했는지 각자의 전공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다가, 나 보다심 유저라 보다앱 쓰고 있다고 보여주니 손사레를 치면서 지금껀 완전 구리다며 내가 작업한거 아니라고 지금 안그래도 개편작업중이라고 했다. 머나먼 뭄바이가 아니라 역삼동 근처 호프집에서 퇴근 후 맥주한잔 하며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였다. 그렇게 한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빠르게 나의 영어사용권장량이 소진되고 있었다.
마이크 테스팅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부터 시작인가보다. 짧은 인사와 함께 입장할때 나눠준 카드의 뒷면에 있는 캐릭터끼리 모이라고 한다. 사방에서 본인 캐릭터를 소리 높여 외치거나 카드를 높게 손에 쥐어 드는데 마침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같은 캐릭터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엄청 방가운 마음이 들었다.
캐릭터별로 한팀에 8명정도씩 모였고 전체 팀은 8팀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팀별로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니, 호스트 니나드가 나와서 설명을 한다. 뭄마이 전철에 매일같이 기나게 서있는 줄을 해결해야하는 방법을 말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사람은 디자이너"라고 했다. 곧이어 그는 과제를 소개했다. "히어로"들의 평소 삶에서 히어로이기 때문에 가지는 어려움들이 뭔지 생각해보고, 그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제시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하나의 짧은 연극처럼 보여주는 것까지-
테이블별로 큰도화지, 여러장의 A4, 여러 색상의 색년필, 연필, 지우개, 가위, 자, 포스트잇을 나눠주었다. 과제가 적혀진 종이가 각 팀마다 나눠지고, 우리는 곧 어떤 히어로에 대해서 이야기할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 예로 들어진 12개의 히어로는 스파이더맨의 끈적한 손, 토르의 망치, 슈퍼맨의 크립토나이트, 배트맨과 불면증 등이 있었고 마지막 12번은 미스터 인디아였다. 자연스럽게 가장 말이 많은 친구가 진행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어떤걸 하면 좋겠냐고 물었고 12번만 빼고 나머지는 다 괜찮다고 전했다. 외국인 참석자(바로 나)를 배려해서 영어로 이야기가 시작했으나, 본인들도 답답한지 점점 힌디 소리가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쨔쨔쪼바리(chacha chaudhary)로 하기로 했다고 나에게 통보했다. 아무래도 편하게 소통이 어려우니 적극적으로 참여는 못하더라도 아이디어를 더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아쉬운 결정이었다. 도대체 짜짜쪼바리는 누구란 말인가?
짜짜쪼바리는 높은 지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염을 길게 늘어트린 노인인데 긱스러운 면이 있어서 평소의 삶을 살아가기에는 쉽지 않은 캐릭터라고 했다. 나의 팀원들이 초점을 맞춘 건 "긴 수염"의 불편함이었는데 그게 왜 "히어로"의 불편함인지 이해는 하지 못했다. 우리 팀원들만 둘러봐도 꽤 긴 수염을 가지고 있는 남자들이 많았는데 말이다. 결국 짜짜쪼바리의 문제점이라고 나열된 것들이 일반적인 내용들 뿐이었다. 청결(?), 키스(????), 땀... 이제 더이상 영어는 들리지 않았다. 알아듣지 못해도 진도가 나가기 어려워보였다. 그러다가 팀원들이 나를 손가락질 하면서 지들끼리 낄낄대기 시작했다.
한 친구가 생글거리면서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나를 활용한 시나리오가 전개되는것을 알아챘다. 외로운 짜짜쪼바리는 애인을 너무 만들고 싶었다. 그는 신문에 애인을 찾는다고 광고까지 냈지만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외로움에 힘들어하던 짜짜조바리에게 길 잃은 외국인여자(나...)가 다가가 배가 고프고 졸려서 자야할 곳이 필요하다고 손짓발짓으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에 문제가 있었던 짜짜쪼바리는 내가 그에게 애인이 되어달라는 소리라고 오해하는거라고 했다. 그래서 짜짜쪼바리가 살롱에도 가고 꾸며서 젊어져서 외국인여자앞에 나타난다고 했다. 그래서 끝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그뒤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도대체 이게 그의 수염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힌디로 진행되는 토론 중에 아무래도 수염이 노잼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아챈 모양이였다. 처음에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알겠다고 했다. 뭐라도 하면 되지 뭐, 외국인 여자가 외국인 여자 역할을 하는 건데-
시간은 2시가 넘어갔다. 피자와 맥주를 제공해준다고 했는데 피자 대신 정갈한 런치박스가 도착했다. 아 물론 런치박스안에는 불고기볶음/돈까스같은 익숙한 메뉴 대신 커리와 밥이 들어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캔맥주를 들고 댕긴다. 본능적으로 일어나 영을 데리고 맥주를 받으러 갔다. 넓은 통에 얼음과 맥주가 가득했다. 맥주를 달라고 하자 음료담당 아저씨가 "킹피셔?" 라고 묻자 영과 나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노오우오오오우우우!!!!! 버드와이져!!!!!"라고 동시에 외쳤다. 아저씨는 킥킥대면서 시원한 버드와이저 2캔을 꺼내주고 팔둑에 선명한 맥주 도장을 찍어줬다. 한명에 2캔이라는 말과 함께-
인도에서. 시원한 버드와이저 캔맥주라니- 이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흥분한 영과 나는 맥주를 마시지 않은 제시, 셀비, 준, 니나에게 맥주를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들 모두 팔뚝에 선명한 맥주 도장 2개을 남겼다. 호텔가서 먹을 맥주를 가방안에 충분히 쟁히고 이벤트홀을 돌아다니는데 구석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캘리그라피를 하고 있었다! 기웃대며 서성대자 진행요원이 자리를 내어주며 종이와 펜을 건넸다. 종이에 글자들이 인쇄되어있어서 그대로 따라 쓰면 되었다. 획이랑 영어 대문자, 소문자, 숫자까지- 준비한 사람들의 고민과 정성이 느껴졌다. 아주 오랫만에 붓펜을 잡으니 종이에 그려지는 획들이 구불구불한 근육의 긴장을 그대로 그려낸다.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누군가의 시건이 느껴져서 고개를 드니 짜짜쪼바리역할을 맡기로 한 팀원하나가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아 연습을 하자는건가?'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고개를 까딱하며 따라오라고 한다. 아쉬운 마음에 쓰던 종이를 손에 꽉쥐고 다시 팀자리로 돌아갔다. 이왕할꺼 잘해보자싶어서 시나리오를 다시 확인하니 아까 설명한 시나리오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서 바뀌었다고 한다. 나 대신 남자 두명이 등장하는거 같았다. 영어로 써내려가던 시나리오는 발표시간이 다가오자 급했는지 힌디로 바뀌고 그뒤 이야기는 알 수가 없었다.
발표할 시간이 되었다. 처음 팀을 나눴던 캐릭터의 이름이 랜덤으로 호명되고 발표는 시작되었다.
한편의 짧은 연극 공연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자칫 냉랭+무잼+민망 3콤보로 직행할 수도 있었지만 그 상황자체를 즐기며 혼신의 연기를 하는 사람들과 또 그 발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애정어린 시선에 발표시간 동안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우리들 또한 각자의 팀에서 빛나는 역할들을 해냈다.
니나는 손이 끈적여서 고생하는 스파이더맨과 악수를 하다가 손이 떨어지지 않아서 스파이더맨에게 불쾌감을 느끼곤 불꽃싸다구를 날리는 역할을 해서 큰박수를 받았다.
준도 다른 팀에서 스파이더맨과 싸우는 빌런역할을 왜인지 모르게 비밀봉지를 머리를 쓴채 훌륭히 소화해냈다.
준과 같은 조였던 셀비는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을 회수하는 나노드론을(아, 물론 종이로) 만들었다.
영은 스토리보드를 그리기 위해 연필로 박스를 그리고 싸인펜으로 마감했으나 발표에는 쓰이진 않았다.
제시는 발표 5분전까지 정리되지 않은 팀에서 리더쉽을 발휘했다. 거기에 16000명의 아내를 둔 키리슈나가 피리를 불면 한방에 이혼을 할 수 있다는 조언(?)을 건네는 역할도 훌륭히 소화해냈다. 나? 나는 우리팀을 위해 박수를 열심히 쳤다.
기나긴 발표가 끝났다. 민망하고 지루할줄 알았던 발표는 꽤나 즐거웠다. 곧이어 시상식이 이어졌다. 1등과 2등팀을 뽑았는데, 1등은 니나조가 2등은 셀비, 준 조가 했다. 왠지 모르게 자랑스러웠다.
발표가 끝나고 시상식이 이어졌다. 이어서 럭키드로우를 했는데 뽑힌 사람에게 상품은 드리블 계정 (업로드를 할 수 있는), 익숙한 셀비 이름이 들렸고, 셀비는 그 기회를 영에게 주었다. 영은 이번 밋업 참석의 가장 큰 수확이라며 좋아했다.
이어서 버터밀크 빨리 마시기 대회같은 행사(?)들이 이어지고 기나긴 포토타임이 이어졌다.
한창 발표준비를 할때 라마가 와서 우리 모두를 애프터 파티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면서 자기 회사 사장님의 아파트에서 파티가 열릴거라고 했다. 흔쾌히 예스를 했고 동료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다들 좋아했고 행사가 끝나면 파티장소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끝나길 기다리면서 라마가 맥북을 꺼내와서 본인의 작업들을 하나하나 보여줬다. 일한지 4년정도 되었고 ZETA는 3번째 회사 였다. 라마를 둘러싸고 있으니 호스트 니나드가 라마를 UX계의 락스타라며 엄지척을 했다.
행사장에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우리와 라마와 그리고 진행하던 사람들만 남았다. 한껏 치장한 드레시한 삐알이라는 사람과도 인사했다. 라마와 삐알이 우버를 한대씩 부르고 준, 니나, 제시는 라마와 나, 셀비, 영은 삐알과 함께 파티장소로 출발했다.
삐알에게 뭄바이가 첫 방문이라고 말하고 기대보다 커서 놀랐다고 했다. 델리가 가장 큰줄 알았다고 했더니 삐알은 본인은 델리에 한번도 온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 델리에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뭄바이에서는 밤늦게 릭샤를 타고 돌아다녀도 안전하지만 델리에서는 절대 그러지 못할거라고- 운전을 직접하면 좋겠지만 본인은 운전하는 것이 싫다는 말도 덧붙였다. 인도는 전부다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뭄바이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사실도 놀러웠고 그와중에 델리는 "더" 위험하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믿겨지지 않아서 나중에 라마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을때도 같은 말을 들었다.
프라이빗이라고 씌여진 골목길에 차량이 들어서고 곧 멈췄다. 차에서 내리고 먼저 출발한 라마 일행과 다시 만났다. 제시는 흥분한 말투로 우리가 지금 방문하는 집의 주인인 "사장님"은 두바이에도 샌프란시스코에도 집이 있고 이미 여러 회사를 가지고 있고 개인용 비행기도 있는 말그대로 어마어마하게 부자라고 속사포랩처럼 말을 뱉어냈다. 그리고 바로 이어 "그분과 친구가 되고 싶다"라고 했다.
순간 머릿속에 으리으리한 집의 정문을 통과해 한창 정원을 가로질러 들어가면 커다란 문이 열리고 안내된 식당에서는 엄청나게 긴 테이블위에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있는 우리가 상상되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아파트앞은 그저 그런 외관의 아파트였다. 아 속에 들어가면 다르려나 하고 두리번 거리니 라마가 엘레베이터가 작으니 3사람씩 올라가자고 했다. 삐알과 나 셀비가 먼처 타고 7층에 도착해서 문이 열렸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헉- 아니 이게 몹니까. 일동 모두 당황한 가운데 셀비가 힘을 주어 문을 열자 다행이 열렸다. 내린 좁은 복도에는 문이 2개가 더 있었고,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남은 일행을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다시 문을 꼭 닫았다. 다른 일행에게도 당황함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내려갔던 엘레베이터가 다시 7층에 올라왔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당황한 일행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얏!?!?" 킥킥 대며 문을 열었더니 당황한 동료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복도가 시끌벅적해지자 닫혔던 2개의 문 중 하나가 열리면서, 이쪽이 파티 장소라고 안내한다. 계단을 따라 일부는 올라가고 일부는 아직 올라오지 않은 라마를 기다렸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함께 앞서 먼저 올라간 준이 계단 끝에 복도에서 서서 감탄한듯 "우아 대박"이라고 외쳤다. 뭐지, 얼마나 대단한 음식들이 있길래 저정도 일까 기대감이 한껏 커졌다. 바로 계단끝에 다다라 준이 시선을 향한 곳으로 몸을 돌려 바라보니, 내 눈앞에 예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졌다.
"세상에..."
그곳은 꽤나 고급스럽게 꾸며진 루프탑이었다. 사장님이 가진 집들 중에 하나고, 직원들이 언제든지 와서 쉴 수 있다고 했다. 다들 예상치 못한 장소와 아름다운 장면에 감동했다. 일몰의 클라이막스는 놓쳤지만 그래도 여전히 분홍색으로, 보라색으로 물든 바다와 하늘은 아름다웠다. 한동안 루프탑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락내릭하면서 사진을 찍고 감동을 나누고 난간에 매달려서 한창을 그렇게 서 있었다. 우리 모두 라마에게 초대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몇차례나 건넸다.
냄새가 어디서 부터 흘러왔는지 음식은 눈에 보이지 않고 술들도 막 세팅되기 시작해서 시원하지 않아서 가방에 챙겨왔던 버드와이저를 꺼냈다. 자연스럽게 라마와 함께 수다를 떨었다. 맥주를 마시며 서로 여행한 이야기라던가, 남북한(?) 이야기라던가를 주고 받다보니 8시가 훌쩍 넘었다. 밤수영을 하고 싶다는 셀비의 말에 파티에서 나와 호텔로 향하기로 했고 그전에 슈퍼(?)에 들러 와인과 먹을거리를 사기로 했다. 친절하게도 라마가 우리를 슈퍼마켓까지 데려다주었다. 생각보다 쇼핑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고 마침 라마의 동료들에게 (아마도 2차 장소로 오라고) 전화가 왔다. 우리는 슈퍼마켓 안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라마는 떠났다. 와인 2병과 햄, 참치, 치즈, 과자등을 잔뜩 담아 우버 2대에 나눠타고 호텔을 향해 출발했다. 슈퍼마켓까지 함께한 준은 다시 한번 창밖으로 해맑게 손을 흔드며 우리보다 먼저 떠났다. 나중에 알려준 바로 준은 뭄바이의 저녁이 아쉬웠던지 라마가 추천한 퀸스비치에 다녀왔다고 생각보다는 별로라고 했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이미 수영장은 닫은 시간이었다. 나와 제시 니나는 빠르게 샤워를 끝내고 저녁 파티를 준비했다. . 과자에 치즈와 참치, 햄을 올려서 까나페를 만들고, 남은 재료들을 모아 썰어 그릇에 담았다. 과일은 씻어서 담아두었다. 셀비와 영이 도착하고 그녀들이 씻고 나왔을때쯤 모든 파티 준비는 완료.
배불러서 다 먹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우리는 결국 그걸 또 해낸다. 포도 몇알과 태국호텔냄새 혹은 호텔비누맛이 나는 커스터드애플(안티초크)만 남은 상태로 와인을 홀짝 거리며 (정확히는 영과 나만) 밋업때 각자 이야기나눈 것들을 랩업하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강의 중심이고, 즐긴다기보다는 또하나의 경쟁을 하는 한국밋업과 달리 인도의 밋업은 업계사람들끼리 네트워킹을 쌓고 자연스럽게 고민들을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인도 친구들의 태도는 굉장히 적극적이어서 누군가 나서서 말하거나 의견을 표현하는데 있어 거리낌이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감각들이 있는것 같다고. 하지만 결국 유저들을 생각하고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나가는데 있어서 우리와 고민의 결이 같다는 사실에 너무 당연하지만 놀랐고, 동료애를 느꼈다고. 모두들 각자의 스타일대로 좋은 자극을 받았고, 뭄바이도 어메이징했지만 밋업자체도 너무 어메이징했고 마지막 뜻밖의 파티까지도 어메이징했다고, 완벽한 출장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일년치 사교성을 오늘 하루 다 끌어다쓴 제시가 1시쯤 졸기 시작했다. 편히 자라고 방으로 들어가라고하자 제시가 나의 라꾸라꾸 침대에서 자겠다고 했다. 다른 동료들도 벌칙같은 싱글베드가 신경쓰였는지 가위바위보를 해서 정하자고 했지만 제시가가 단호하게 자기가 쓰겠노라 선언하며 방안으로 입장했다.
와인은 점점 줄어들고, 남은 넷의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져갔다. 더이상 참을 수 없을때까지 수다를 이어간 우리들은 새벽4시, 뭄바이의 2번째 밤을 마무리 했다.
빠르게(?) 잠든 제시는 역시나 셋째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헬스와 전날 닫혀서 사용하지 못한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곤 돌아왔다. 우리는 그때까지 반수면상태였다. 10시 30분쯤은 나가 유명하다던 호텔안에 있는 빵집에서 빵을 먹고 공항으로 출발할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늦어져서 빵을 사들고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탑승할 밴이 도착했다. 10분이면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운전사가 갑자기 차량을 공용주차장에 세운다. 핸들에 이상이 생겼다면서 돈을 안받아도 좋으니 다른 차량을 예약하라고 한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틈을 주지 않는 나라 같으니- 다행히 빠르게 다음차가 잡혔고 문제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
밋업에서 챙겨온 버드와이저 두캔이 남아서 짐 하나는 수화물로 부치기로 했다. 나와 니나, 영, 셀비는 셀프체크인으로 끝냈고 제시는 카운터로 이동했다. 게이트에서 만나자고 하고 나와 니나는 뭄바이 라운지로 향했다.
뭄바이 라운지로 들어서니, 델리 라운지에서의 아쉬움이 한방에 보상되는 느낌이었다. 온갖주류는 여전히 유료였지만 깔끔하고, 음식들은 다양하고 충분히 준비된 상태였고 맛도 좋았다. 냉장고에는 시원한 음료수와 요거트가 가득했다. 한접시를 비우고 두번째 접시를 먹을때쯤 제시가 풀부킹이 되서 체크인을 못한다고, 하지만 천루피를 낸다면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고 생색내는 말을 듣고는 곱절로 화가난 상태였다. 이러다 비즈니스까지 풀부킹되서 기다리면 어쩌나 싶어서 천루피(만팔천원)을 내고 타라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잠시 뒤에 제시가 아쉽게도(?) 빈좌석이 나서 체크인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몇차례나 접시를 비워내며 라운지를 만끽하고 출발시간 30분전쯤에 게이트로 이동했다. 마침 게이트앞에서 만난 제시, 영, 셀비와 함께 나란히 탑승했다.
30분 지연까지 더해서 2시간 30분뒤에 델리공항에 도착했다. 다른 동료들보다 비행기에서 먼저 나온 니나와 나는 와인을 찾기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물어 물어 방문한 분실물센터는 아주 작았다. 데스크 뒤 선반에 분실물들이 놓여져있었는데 언뜻 둘러봐도 우리의 와인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와인을 잊어버렸다고하고 그당시 탑승티켓과 와인을 샀던 영수증 그리고 여권을 내밀었다. 그녀가 이것저것 묻더니 와인을 찾기 시작한다. 투명한 백에 들어있어서 우리의 와인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을텐데 영 가망성이 없어보인다. 죄다 종이 쇼핑백이거나 아니면 가방같은 것들밖에 없었다. 한창을 뒤지길래, 언제쯤 그만 찾으라고 해야하는거지 싶던 와중에 갑자기 짐들 사이에 빠져나오는 손에 우리의 와인봉지가 들려져있었다. 방가운 마음에 그만 나는 팔에 소름이 돋았고 니나는 다급하게 우리의 와인이라고 소리쳤다.
심지어 인도에서 잃어버린 와인을 찾다니, 처음부터 어메이징 했던 이번 출장다운 마무리였다.
뭄바이 라운지에서 쉬고 있을때 우다다 폰이 울리더니 연달아 영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우리의 뭄바이 여행을 간단하게 요약하기에 아주 적절하기에 아래의 사진으로 이번 출장기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