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예측하는 하늘의 체계
앞서 연도를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눈 이유를 살펴보았다. 다 함께 사용하는 연도를 활용하려면 결국 달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 쓰는 달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또 어떻게 전 세계가 같은 달력을 쓰게 된 걸까?
달력이 처음 만들어진 이유는 농사 때문이었다. 농사를 지으려면 계절의 변화를 알아야 했다. 씨를 뿌릴 때, 추수할 때, 가축을 번식시킬 때를 알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본 것이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같은 고대 문명에서 달력이 탄생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하늘의 주기를 신의 뜻이라 여겼다. 제사를 드리려면 정확한 날짜가 필요했고, 지배자에게는 그것이 곧 권위였다. 달력은 농사 도구이자 종교의 도구, 동시에 정치의 도구였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살게 되자 달력의 역할은 커졌다. 세금을 걷고, 군사를 불러 모으고, 공사를 지휘하려면 모두가 같은 날짜를 공유해야 했다. 중국 황제가 새로 즉위할 때마다 연호와 역법을 반포한 건 단순히 편의를 위한 게 아니었다. 백성의 삶을 지배하고 권력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대낮에 갑자기 태양이 사라지는 일식은 고대인들에게 거대한 징조였다. 중국 황제는 일식을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였고, 그때마다 제사를 지내며 통치의 정당성을 확인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일식을 불길한 징조로 여겨 ‘대리왕’을 세우고, 불운이 지나가면 그를 처형한 뒤 본래 왕이 복위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일식이 전쟁의 운명을 바꾼 적도 있었다. 이렇게 하늘의 변화를 이해하려면 장기간 관측하고 기록해야 했다. 달력을 만들며 쌓인 천문 지식은 결국 일식과 월식의 시기를 계산하는 데도 쓰이게 되었다.
오늘 우리가 쓰는 달력은 ‘그레고리력’이다. 뿌리를 따라가면 BCE 45년,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도입한 율리우스력에 닿고,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이집트의 태양력으로 이어진다. 당시 로마의 달력은 계절과 크게 어긋나 있었는데, 카이사르는 이집트 천문학자들의 계산을 받아들여 1년을 365일, 그리고 4년마다 하루를 더하는 윤년 제도를 도입했다. 이 율리우스력은 이후 1600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실제 태양년이 365일 5시간 49분 12초라는 사실 때문에 매년 약 11분씩 오차가 쌓였고, 16세기에는 계절과 달력이 열흘가량 어긋났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율리우스력을 개정했다. 그레고리력에서는 윤년 규칙을 더 정밀하게 조정해 오차를 줄였고, 우리가 쓰는 달력이 바로 이 체계다.
달력은 민족이나 국가 구성원들의 집단 기억이기도 했다.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도, 마야의 장주기력에도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새겨졌다. 마야 문명은 달력으로 우주를 계산했다. 이집트의 태양력은 로마의 율리우스력을 거쳐 현대 달력의 토대가 되었고, 메소포타미아의 달력은 유대력과 이슬람력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달력은 한국과 일본, 베트남에 퍼져 여전히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 날짜를 정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달력이 존재했지만, 결국 인류는 하나의 달력으로 모였다.
인류가 하나의 달력을 사용하게 된 건 사실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각 나라별로 왕이나 종교를 중심으로 한 연호를 썼다. 지금도 일본은 텐노의 즉위 연도를 기준으로 쇼와, 헤이세이, 레이와 라는 이름으로 시대를 구분한다. 일본 사람들은 그 이름으로 세대를 나누고, 책 속에서 주인공들이 시대를 회상하고, 심지어 운전면허증에도 표기한다. 현대적 정치 제도를 가졌어도 그들은 여전히 ‘왕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서구 유럽에서는 종교의 영향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같은 달력을 사용했다. 16세기 이후 유럽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유럽의 방식이 강제적으로 그들의 식민지에 이식되었다. 19세기 산업혁명과 세계 교역이 확대되면서 날짜와 시간이 통일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에 들어 국제기구와 과학 학회, 올림픽 같은 스포츠까지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다 보니 사실상 세계표준이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일본이 메이지 유신 때 서구 근대 국가 체제로 전환하면서 받아들였고 한국은 대한제국 당시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한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양력을 채택했다. 중국은 청이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들어서는 1912년에 도입했다. 동아시아 세 나라 중 한국과 중국은 여전히 음력 명절을 기념하지만, 일본은 민간에서조차 음력을 없앴다. 우리처럼 구정은 없고 오로지 양력 1월 1일 신정이 유일한 설이다. 구시대적이라는 이유로 음력으로 지내던 절기나 제사도 전부 양력 날짜로 바꿔 치르지만, 그야말로 구시대적인 왕의 연호를 여전히 사용하는 아이러니가 재미있다.
달력의 기원을 더 멀리 올려다보면 약 5000년 전 이집트인들의 하늘이 보인다. 그들은 시리우스가 떠오르는 시기와 나일강의 범람을 관찰하며 1년을 365일로 계산했다. 고대 이집트의 기록은 로마 제국을 거쳐 교황청의 손에서 다시 다듬어졌고, 마침내 오늘 우리의 달력이 되었다. 달력은 그저 숫자들의 모임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수천 년 전 고대인들이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이런 걸 떠올리면 우주 저 멀리 별들을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하며 달력을 만들어 낸 고대인들과 시공간을 초월해 연결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