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신나게 먹고 떠들다 집에 돌아왔다. 그날 밤 왠지 모를 불안과 후회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말은 하지 말걸. 그때는 이렇게 반응할걸. 괜히 쓸데없이 길게 말했네.' 하면서 곱씹다 이불킥을 한다. 문제는 이런 날이 부쩍 빈번해졌다는 점이다. 횡설수설 중언부언 대화습관 역시 노화와 관련이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바로 내뱉어버리는 사람은 성인 ADHD를 의심해봐야 한다던데. 그렇다면 혹시 나도?
언제나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만 짧게 이야기하자!'고 다짐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요코타 이사오 박사가 쓴 책 <길게 말하면 미움받는다>를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본다.
책은 장황한 말과 글이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진 사람들에게 대화의 원리를 알려주는 책이다. 어떻게 하면 간결하게 중요한 내용만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전 교과서와 같다. 보통의 자기계발서와 다른 점은 소설처럼 전개되는 방식이다. 말이 길다는 평가로 인해 승진에서 미끄러진 ‘아이무’와 외부 교육 강사인 ‘야시로’가 만나, ‘아이무’의 전달 방법을 고치고 수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의 좌절과 실패, 성장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따라가며 읽을 수 있다.
‘장황하게, 말이 길다.’ 같은 말을 반복하며 길게 말할수록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적 없는가? 실제로 당신이 말이 긴 편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말이 긴 사람에게 질린 경험은 있을 거다. - p.4
콜센터 어시스턴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34살의 아이무. 얼마 전 사내 매니저로의 승진이 좌절됐다. 실적, 팀원 관리까지 부족한 것이 없었으나, 인사 평가 제도에 발목이 잡혔다. 그는 스스로를 5점으로 평가했지만, 상사를 포함한 부하직원, 동료, 거래처의 파트너 등 주변 사람들은 그를 2점으로 평가했다. '말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야시로 선생은 '한 장 메모, 세 가지의 순서'라는 의사 전달 순서를 알려준다. 그중 상대방을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다. 공감은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이어야 하며, 공감을 잘 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고 관찰해야 한다.
그 다음 누구에게 전달할지 생각한다. 의상 TPO처럼 말에도 TPO가 있다. 대상이 누구인지, 어느 자리에 필요한 대화인지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내가 지금 친구랑 수다를 떠는지, 직장 상사 앞에서 업무보고를 하는지, 거래처 사장님에게 요청사항을 전달하는지. 상대에 따라 대화 주제와 방법을 바꾼다.
결국 대화의 목적은 상대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나는 상대가 이 글을 읽고 어떤 행동을 취하기를 원하는가’를 생각하자. ‘이 일을 부탁하고 싶다’가 아니라, ‘뭐라고 부탁하면 이 일을 맡고 싶어질까?’ 이렇게. 목적이 분명한 말은 상대에게 활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꽂힌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구체적으로 요청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추상적으로 '검토해 주심시오' 대신 '마감 날짜가 19일이니 하루 전까지 수정, 보완 사항을 이메일로 회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질문과 답변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도무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하다면 '26자 정리법'부터 실천해보자. 책에서는 뉴스 헤드라인이 13자 정도이니 여기에 약간의 정보를 더해 26자로 만들어보기를 제안한다. 겹치는 표현을 모두 제외하고, 절대 수치인 '인구 100만 명' 표현 대신 상대 수치인 '96%의 만족도'를 들어 강조한다. 비교를 할 때는 '대한민국, 여의도 면적' 같은 막연한 범위 말고 '우리 동네, 축구장 크기' 같은 작은 범위가 알아듣기 편하다.
말이 유독 긴 사람들이 있다. 말을 길게 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친절하게 대답하고 싶어서,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다 설명하고 싶어서, 얘기하다 보니 말이 길어진다거나, 말이 짧으면 무언가를 빼먹은 것 같다거나, 상대와의 깊은 소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길게 말하는 것은 말을 잘하는 게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일의 진행을 방해하는 아주 큰 마이너스 요소이다.
긴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억나는 말은 하나도 없었던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건, 마음에 와 닿지 않은 것이다.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면 지금 이 책을 읽어보자. 물론 이 책을 권하고 싶은 부장님, 교수님이 먼저 떠오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