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시즈오. 이 남자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호기롭게 자아를 찾아나선이 남자의 실상은 지질하다. “만화가가 되겠어!”라고는 말하면서 꿈을위해 그가 하는 노력은 잠자기, 게임하기, tv보기, 좌절하기가 전부이다. 늙은 아버지에게 얹혀살고, 딸은아빠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한심한 아들이자 아버지인 시즈오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본의 아오노 슌주 작가가 쓴만화책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사진)의 주인공이야기이다. ‘드래곤볼’의 손오공이나 ‘슬램덩크’의 강백호처럼 만화는 주인공들에게 전지전능한 능력을 부여한다. 늘 만화 주인공들은 잘생겼고, 인기도 많으며, 하는 일마다운이 따라준다. 하지만 이 만화는 다르다. 주인공 시즈오 아저씨는 지나치게현실적이다 못해 안쓰럽다.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만 있을 뿐 실천할 의지는 부족하고 재능은 더 부족하다.습작한 만화를 출판사 편집자에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도 그는 “나 아직 최선을 다하지않았을 뿐인데, 최선을 다해도 괜찮겠습니까? 온 세상이여,괜찮겠습니까?”하고 눈치 없이 허세를 부린다.
이 철없는 가장을 어쩌면 좋을까. 한숨만 나온다.그런데 1권을 지나 3권째로 접어들면 어느새시즈오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어울리지 않는 꿈을 꾸다 사회적 잉여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그와 그의 꿈은 조롱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즈오가 비록 만화가로서 재능은 없을지언정 그에게는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그 어떤 세상의 압박에도 좌절하지 않는 능력이다. 만화야 연습하면 어느 정도 그린다 쳐도 풀죽지 않는 강인한 정신은 노력과 연습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중년의 절반은 실패로 이루어졌습니다.그래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쉽게 굴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실패의 역사가 다릅니다.” 만화 속에서 시즈오 아저씨가 한 말이다. 그냥 헐렁한 잉여인간인줄만 알았던 시즈오가 사실은 꽤 단단한 내공을 가진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즈오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주변 가족들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했다. 늙은 아버지는 아들을 타박하면서도 끝까지 믿어줬고 고등학생 딸은 기댈 수 없는 아버지 때문에세상과 벽을 쌓고 일찍 어른이 됐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만큼 원망도 컸다. 그렇기에 유학 가서 건축 공부를 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아빠에게 내뱉지 못하고 혼자 아르바이트로 유학비용을 벌었다.만화가가 되리라는 헛된 꿈을 위해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는 시즈오가 참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심한 존재마저도 가족이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있다.
집집마다 아픈 손가락 하나쯤은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몇 년째 고시공부에 매달리는 나이든 삼촌, 주제 모르고 대기업 지원서만 쓰고 있는막내 동생 같은. 그 아픈 손가락이 떠올라서 시즈오 아저씨가 애틋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남들이 보지 않을 때 내다 버리고 싶은존재”라고 말했다. 깊이 공감한다.
이 만화가 5권으로 완간될 때까지 어떠한결론도 없다. 시즈오는 여전히 책상에 앉아 그림을 끄적이고 있고 늙은 아버지는 오늘도 잔소리를 늘어 놓는다.그의 꿈은 미완인 채로 만화가 끝나지만 그의 인생은 계속해서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라고채근하며, 일분일초를 계획적으로 살라고 말한다. 짧은 인생 낭비 없이 살아야 한다고. 그런데 이 만화는 사자의 맹렬함이 아닌 달팽이의 느림으로 시즈오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들 눈에는 속 터지게 느릴지 몰라도 이렇게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삶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