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혼란할 때는 청소를 한다. 묵은 먹지를 닦아내고 광을 내면서 마음 속 근심도 닦아낸다. 비슷한 종류끼리 묶고, 물건이 있어야 할 곳에 놓아두면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정리되지 않은 방, 감정, 인간관계는 곧 혼란의 주범이다.
사람을 대할 때에도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크게 학교 친구, 회사 동료, 사회에서 만난 지인으로 카테고리를 나누고 상황에 따라 내가 어떤 얼굴로 갈아 끼우는지 점검한다. 거기서 실망하거나 아픈 기억들은 별도의 카테고리에 담아둔다. 마치 오답노트를 정리하듯이.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을 때, 나는 사실 이 책이 조금 불편했다. 저자는 혼돈을 마주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질서가 오히려 환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나처럼 정리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는 사람에게 그건 마치 “그동안의 너는 다 착각이었어”라고 질책하는 말처럼 들렸다.
이 책은 한마디로 우리가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배웠던 지식의 틀을 깨부수는 책이다. 저자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19세기 어류 분류학자이자 과학자의 삶을 논픽션으로 다뤄낸다. 1세기도 더 지난 과학자의 회고와 현재 진행형인 그녀의 삶이 반짝이는 사유로 맞물려 가는 형식이다. 마치 퀼트를 짜는 것처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9세기 말에 활동한 미국의 유명한 어류학자이다. 그는 수천 종의 물고기를 분류하며 어류학자로 명성을 쌓았다. 물고기를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며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집착을 드러냈다. 스탠퍼드 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임명되어, 미국 고등교육의 방향을 설계한 주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집착한 질서는 결국 누군가를 배제하고, 왜곡하며, 폭력적이었다. 자신이 관찰하는 생물에게서 신의 질서를 찾으려던 데이비드.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맞이해, 자신의 가치관이 조금씩 깨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생명에는 위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는 자신이 신인 것처럼 말이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믿었던 신처럼 질서를 부여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았다. 지진으로 표본이 없어지고, 가족들이 죽어도 그는 혼돈과 맞서 싸웠다.
성실한 노력으로 자신만의 질서를 확립했고, 학계를 주름 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의 이론에 빠져 보잘것없는 생명도 있다고 주장하는 우생학 신봉자가 되고 말았다. 더 나은 인간 유전자를 유지하기 위해 열등한 자들은 번식해서는 안 된다는 비윤리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것은 훗날 강제 불임 수술, 인종차별 정책의 이론적 뿌리가 된다.
질서에 과하게 집착한 나머지 학계에서 자신의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을 배제하거나 공격했으며, 학문적 권위를 자기 목적에 맞게 이용하기도 했다. 룰루 밀러는 이것을 슬픔과 혼란을 억누르는 병적인 태도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제목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물학적으로 따지면 물고기는 과학적 분류학상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물고기로 묶이는 상어나 연어, 해마 같은 생물들은 공통 조상을 공유하지 않으며, 같은 분류군으로 묶을 수 없다. 즉, 물속에 사는 척추동물 중 어떤 것들은 서로 멀리 떨어진 생물들보다 유전적으로 더 가깝기도 하다. 이 말은 결국 우리가 질서라고 믿는 개념도 환상일 수 있다는 통찰로 이어진다.
평생을 바친 연구결과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진실을 인정하지 못했던 데이비드의 삶을 쫓아가며 룰루 밀러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아마 자신도 데이비드처럼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비슷한 종말을 맞게 될 것임을 직감했을 것이다. 룰루 밀러는 질서를 향한 집착이 어떻게 사람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주목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실과 혼란을 덮으려 했던 과거의 자신을 발견하고 점차 그 집착을 내려놓고 혼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배워나간다.
그를 통해 룰루 밀러가 깨닫듯, 나도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의 분류는 내 안의 혼돈을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였고, 감정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룰루 밀러가 자신만의 이름 붙이기를 멈추고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을 삶의 끝이 아니라 시작점으로 바라본다. 자신이 경험하는 삶 그 자체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울컥했다.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정리되지 않아도,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냥 흘러가게 두고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에 대한 책이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다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혼란과 상실을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 이 책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냉담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고, 수십만 명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며, 자연 앞에서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파괴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 시련 속에서 계속 밀고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그 시련 속에서 가끔 우리는 우연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 p.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