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함께한 술 이야기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을 두고 ‘건국의 아버지’라고 칭한다. 그런데 그가 정치인, 전쟁 영웅인 동시에 뛰어난 사업가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가 상속받은 마운트 버논 땅에 대규모 제분소를 지어 여기서 만든 제품을 유럽에 수출했다. 그러다 제분소 옆에 위스키 증류소를 세우고 위스키 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1797년 당시에는 미국 최대 규모의 위스키 생산시설이었다.   

조지 워싱턴과 위스키의 인연은 이 뿐만이 아니다. 1759년 의회 선거에 출마하면서 막대한 선거비용을 써서 유권자들에게 술 160갤런을 돌렸다. 결과적으로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소속 정당 없이 정치에 뛰어들어 대통령 재선을 할 때까지 무소속을 유지한 유일한 인물로 기록되는데, 당 차원의 지원이 없는 탓에 스스로 생각해낸 선거 전략이 술을 돌리는 유세였을 테다. 조지 워싱턴의 ‘위스키 선거’는 이후 미국 선거의 역사를 바꿔놨다. 이를 부정선거로 간주하고 인디애나주 18개 시와 7개 카운티에서는 현재까지도 대선 당일에 술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주의 공직자 선거일에 술 판매를 막고 있다.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술을 떼어놓을 수 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인 순간에 늘 술이 지도자의 곁을 지켜온 것을 보면 술과 역사는 이미 한 몸과 다름없다.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은 “술이 내게서 앗아간 것보다 내가 술로부터 얻은 것이 많다.”고 공공연하게 동반자관계를 인정했다.   

김원곤 교수가 쓴 <세계 지도자와 술>(사진)을 보면 세계를 움직인 지도자들이 어떻게 술을 이용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미중수교 여정을 빛낸 술이 있다. 중국의 명주 마오타이주는 당시만해도 외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사전 답사를 마친 수행단은 마오타이주를 마시지 말고 입에 대는 시늉만 하라는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올렸다. 40도가 넘는 독한 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닉슨 대통령은 만찬장에서 저우언라이 중국 공산당 총리가 건배를 제의하자 얼굴을 잠깐 찡그렸을 뿐 마오타이주를 원샷했다. 아슬아슬한 대척관계가 이후 화기애애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길에 함께한 ‘더 타임스’ 기자 맥스 프랑켈이 “순수한 가솔린(pure gasoline)”으로 표현할 정도로 독했던 마오타이주가 미중수교의 든든한 윤활유 역할을 해냈다.   

한국 하면 곡주, 러시아 하면 보드카, 유럽 하면 와인이 떠오르듯 술은 나라가 갖고 있는 문화적인 배경을 반영하고 있어 그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수단이 되기도 한다. 멕시코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데킬라다. 그런데 데킬라에도 출생의 비밀이 있다. 1500년대 멕시코 아스텍 왕국을 점령한 스페인 점령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들 눈에 들어온 재미있는 술이 ‘풀케(pulke)’라는 토속주였다. 스페인 정복자들 입장에서는 독특한 향에다 시큼털털한 풀케가 입맛에 맞을 리가 없었다. 이 술을 스페인 본국까지 보내려고 했지만 낮은 알코올도수 때문에 운반할 수 없었다. 그들 입맛도 만족시키고, 스페인 본국에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도록 풀케를 증류해 높은 도수의 술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메스칼(Mezcal)과 데킬라(Tequila)다. 풀케가 아버지라면 메스칼과 데킬라는 두 아들이 되는 셈이다.   

힘겨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삶을 위로하는 좋은 친구, 술은 높고 험한 자리에 있는 지도자에게도 훌륭한 벗이 됐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나 브라질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술사랑은 유명하다. 지나치게 사랑해서 때때로 창피한 일을 겪기도 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술을 곁에 뒀다. 술은 소문을 함부로 떠벌리고 다니지 않으며, 늦은 밤이라도 언제든 부르면 달려 나와준다. 그들이 고독한 지도자의 자리에서 술을 벗삼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