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유명인사 재키가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늘 웃는 얼굴로 이웃들을 맞아주던 그녀였는데, 갑자기 안보이니 궁금했다. 마침 재키네 가족이 집 앞에 나와 있길래 재키 안부를 물었다. 노쇠한 재키가 하늘나라도 갔단다. 재키 주인부부는 첫 아이를 낳고 얼마 후에 보호소에서 재키를 데려왔다. 첫째와 재키가 동갑인 셈이다. 첫째는 볼에 여드름을 잔뜩 매달고 이제 막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중인데, 재키는 벌써 유명을 달리하다니. 야속하게도 사람의 시간과 동물이 시간이 다른 탓이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맞게 될 이별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동물과 인간은 늙어가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는 동물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 <혼자 가야 해>(사진)를 쓴 조원희 작가도 8년동안 키운 반려견 자니윤을 떠나 보내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막상 떠나고 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생활 속에 너무 익숙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주인은 홀로 남겨질 내 생각에 슬펐지만 자니윤은 자신이 떠날 때를 분명히 알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반짝이는 눈을 맞추고 꼬리를 흔들며 온 마음을 다해 그 순간을 살다가 떠날 때는 툭툭 털고 “난 행복했어”하고 떠났다.
책은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가 눈을 감아요”라고 시작한다. 몸을 떠난 영혼은 꽃봉오리로 피어나고, 저승사자 격인 검은 개가 그 길을 맞아준다. 자작나무를 다듬어 조각배를 만들고, 피리를 손질하고, 등불을 밝힌다. 바로 그때, 강아지 한 마리가 늘 주인과 함께 뛰놀던 공원을 처음으로 혼자 가로지른다. 혼자 기차에 올라 친구와 함께 여행 갔던 날을 추억한다. 기차에서 내린 강아지는 푸른빛을 따라 검은 개의 숲에 도착한다. 그곳은 세상을 떠나는 개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숲이었다.
반려견의 죽음을 소재로 한 점도 흥미롭지만, 그들의 사후 세계를 긴 여행으로 바라본 시각 또한 독특하다. 죽음은 흔히 무섭게만 여겨지는데 책에서는 듬직한 검은 개가 이끄는 편안한 세계로 묘사했다. 평생 주인에게 충직을 다한 강아지의 영혼이 머무는 곳은 한 송이 연꽃으로, 삶과 죽음 사이의 통로는 푸른 안개가 감도는 신비한 숲으로 표현했다. 검은 개는 아름다운 피리 소리로 생을 다한 강아지들을 위로한다. 그들의 영혼이 담긴 연꽃송이를 소중히 거두어 강물에 띄운다. 개들은 각자의 배를 타고 또 다른 세계로 노를 젓는다. 강을 건너던 개는 주인과 함께했던 세상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 ‘난 그냥 저쪽으로 가는 거야. 여기부터는 혼자 가야 해.’
동물이 생을 마감할 때에는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닌 이상 대개 병들거나, 버려져 초라한 모습이다. <혼자 가야 해>는 죽음이 슬프지만은 않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죽음은 영원한 상실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이라는 것을 강아지의 시선으로 담백하게 표현했다. 담담한 얼굴로 힘차게 노를 젓는 개의 모습에서 미련이나 쓸쓸함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평온한 느낌이다.
사람이 주인으로서 개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개가 사람을 키워주는지도 모르겠다. 울적할 때 벗이 돼주고, 산책 동무가 돼주기도 하며, 평생 주인을 향해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준다. 종일 빈집에 있으면서도 주인만을 기다린다. 주인의 차 소리만 들려도 꼬리 흔들며 뛰어나온다. 사람이 개를 보살피는 정성보다 더 큰 사랑을 되돌려준다.
그런 반려견도 언젠가는 주인보다 앞서 가겠지. 누군가는 그 이별이 두려워 정을 주기 겁난다고도 한다. 하지만 다가올 이별과 그로 인한 상처 때문에 지레 마음을 닫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있을 때 온 마음을 다해 함께 행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