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음악은 특정한 시절을 소환하는 마법을 부린다. 그리고 내 경험에 의하면 어려운 시절보다는 좋았던 시절이 소환될 때 눈물이 왈칵 차 올라서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곤 한다. 시간이 흐르면 나쁜 기억들은 사라지고, 행복했던 기억만이 남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돌아오지 않아’라는 진실을 그 어떤 바보가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이 곡을 지금까지도 듣는 이유는 거기에 아버지와 나의 환한 미소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음악은 때로 이렇게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거는 전화가 된다.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된다.
-배순탁의 <청춘을 달리다> 본문 중-
얼마 전 JTBC ‘슈가맨’에 반가운 얼굴이 출연했다. 그룹 ‘모노’였다. 90년대 한복판에서 10대를 보낸 나에게 ‘넌 언제나’는 성장송이나 다름없다. 옛날노래가 좋은 이유는 가수와 노래가 반가운 이유도 있지만 그 시절의 감성과 느낌이 새록새록 기억나서이다. <청춘을 달리다>(사진)는 이렇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90년대 음악을 오롯이 담고 있다.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이자 음악평론가인 배순탁의 책이다. 음악에 대해 쓴 책이지만 들리는 것은 하나도 없다. 글이 멜로디가 되어 귓가에 맴돌 뿐이다. 귀로 듣는 음악을 활자로 풀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이 책은 마치 괜찮은 컴필레이션 앨범 한 장을 감상한 것처럼 글이 생생하다.
책은 철저히 아날로그적이다. 카세트 테잎처럼 side A, side B로 나뉘어져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워크맨을 들었던 그 시절을 소환한다. 한 장씩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워크맨 스피커에 귀를 바짝 대고 따라 부르던 중학생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배순탁 작가는 신해철, 015B, 윤상, 서태지 등 그의 청춘과 함께한 90년대 뮤지션들 15명을 책에 소개하고 있다. 장르 계보를 늘어놓거나 음악을 평론하는 대신 노래에 얽힌 사람이야기로 공감을 이끌어냈다. 같은 음악도 듣는 사람이 어떤 상황이었는지에 따라 각기 다르게 기억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그 음악이 왜 음악적으로 위대한지보다는 그 음악이 나에게 어떻게 뜻 깊은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배순탁 작가는 90년대 음악을 추억하면서 폭삭 주저앉은 집안과 답답했던 군대생활을 연결 지었다. 혼란스러웠던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이 위로해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에 광분했고, 매일 밤 라디오 앞에 붙어 앉아 ‘유희열의 음악도시’를 기다렸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어서 커서 작사가가 되고 싶었다. 태지 오빠가 만든 곡에 가사말을 쓰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기도 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 선언을 하는 바람에 작사가의 꿈도 훨훨 날아갔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나에게 90년대는 사춘기 성장통과 함께 꿈을 키우기도, 부수기도 했던 정처 없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나의 청춘이 머문 자리에는 언제나 음악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책이 추억회상용으로 읽을만한 말랑한 내용은 아니다. 배순탁 작가는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현대 사회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낸다. 과거에 사람들은 미래가 보이질 않아서 불안해했다. 그러나 요즘은 미래가 너무 뻔히 보여서 불안해한다. 이렇게 죽어라 공부해봤자 내 미래는 잘해야 대기업의 사원 정도나 될 거라는 현실. 실존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고, 생존이라는 인간의 본질에만 더없이 충실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이런 와중에 한 시대를 압축해서 전시하는 노래나 뮤지션 따위, 등장할 리 만무한 것이다.
최근 90년대 복고열풍이 거센 이유는 사람들이 그 시절의 낭만을 그리워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미래는 보이지 않을지언정 꿈은 있었던 그 시절 말이다. 오랜만에 그때의 노래를 들으며 지나온 내 청춘에 안부를 묻는다. 지금까지 그려온 내 인생의 드라마 BGM(background music)들이 하나씩 스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