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 버스를 타보면요.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말, 그거 진짜 다 개소리거든요?" 영화 ‘싱글라이더(
A single rider, 2016)
’의 한 대사이다. 버는 족족 유학자금 보내기 바쁜 아버지와 호주에서 힘겨운 워킹홀리데이를 이겨내는 젊은이가 주요 인물이다. 자신의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 결코 부자는 아니다. 다 뺏기고 이용만 당하고 살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왜 그렇게 우아한 척 하면서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는 주인공의 자조 섞인 말이 남일 같지 않다.
열심히 일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난하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하지만, 빚은 늘어만 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워킹 푸어(working poor)의 생활을 옥죄는 최대 주범은 집값이다. 아파트를 구할 때 지불해야 하는 한 달치 집세와 한 달 집세에 상응하는 보증금이 없으니 결국 일주일 단위로 모텔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의료보험에 들 형편이 안 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필요한 약도 살 수 없으며, 결국 약을 구하지 못해 병을 키우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방 2개짜리 아파트 렌트비는 못해도 2천달러다. 한 달에 5천달러를 벌어도 절반은 집세로 나가고,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통신비 같은 기초생활요금을 빼면 남는 돈이 없다. 월급이 5천달러 이상 되는 중산층도 빠듯한데 연봉 2,3만달러로 의식주를 해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배웠다. 교과서와 현실이 이렇게 다른 이유가 뭘까? 바버라 에런라이크 작가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최저 임금으로 생활하기 체험에 나섰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동안 식당 종업원, 가정집 청소부, 월마트 매장직원 등으로 일하고 <노동의 배신>(사진)을 썼다. 딸린 가족이 없는 홀몸에, 건강하고, 차까지 있는 자신 같은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해도 먹고 살기 힘겨울 정도라면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임금은 너무 낮고 집세는 너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동의 배신>에는 그녀의 짠내나는 고군분투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그녀가 처음 체험을 시작했을 때 목표는 단순했다. ‘연방 정부가 정한 최저 시급으로 과연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할까?’를 실험해보고 싶었다. 막상 노동 현장에 뛰어들고 보니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근로자들을 관리하는 매니저들의 비인간적인 관리 방식은 상상 이상이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마치 병장 앞에 선 이등병처럼 식당 한켠에 서서 매니저에게 야단을 맞고, 화장실을 가는 것 조차 감시를 받는다. 청소부 생활은 더 심각했다. 그들의 유니폼은 이미 ‘죄수복’이다. 노란색, 녹색 옷으로 어디서든 존재를 노출시킨다. 집주인들은 청소부들을 늘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고, 귀중품 옆에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다. 또 일을 제대로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카펫 밑에는 먼지덩어리를 숨겨놓는다.
바버라 작가가 저임금 체험을 할 당시, 1998년은 미국이 골디락스(Goldilocks: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 효과에 취해 있었다. 실상은 노동인구 30%가 생활하기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았고, 최저 임금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0년동안 시간당 5.15달러에 멈춰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지독한 업무환경, 낮은 시급에 고통 받는 수백만 워킹 푸어의 현실은 미국 사회에 ‘적색 경보’를 울렸다. 이후 29개 주가 최저 임금을 인상했고, 2007년에는 연방 정부가 7.25달러로 올렸다.
여전히 낮은 금액이다. 힘든 일은 기피하려는 구직자들의 태도 문제를 논하기 전에 일을 해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더 꼼꼼히 진단해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