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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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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좋아하는 것은 취미가 될 수 있고, 잘하는 것은 특기가 될 수 있겠지만 정작 취미와특기가 직업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야구가 좋아 야구선수가 됐다는 박찬호 선수는 취미, 특기, 직업 삼박자가 딱 맞아 떨어진 경우다. 글쓰기도마찬가지. 글을 조리 있게 잘 쓰는 재능과 그 기술이 밥벌이가 되는 것은 다르다.


미국의 추리작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작가가 되고 싶다며글 잘 쓰는 비결을 묻는 독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중요한 건 전업 작가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거다. 꼭 글을 써야 할 필요는 없다. 내키지 않으면 굳이 애쓰지도말아야 한다. 그저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물구나무를 서거나 바닥에서 뒹굴어도 좋다. 다만 바람직하다 싶은 다른 어떤 일도 하면 안 된다. 글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잡지를 훑어보거나, 수표를 쓰는 것도안 된다. 글을 쓰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말 것. 학교에서 규칙을지키는 것과 마찬가지 원칙이다. 학생들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하면 심심해서라도 무언가를 배우려 한다.이게 효과가 있다. 아주 간단한 두 가지 규칙이다.”


그의 책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사진)을 보면 그는 아마도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것 같다. 알코올 중독자로 가정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 탓에 부모는 이혼했고, 레이먼드 챈들러는 일찍 어른이돼야 했다. 부모의 사랑과 따스한 보살핌 따위는 배부른 낭만이었다. 일찍 생활전선에 몰려 10대 소년 시절에 이미 수 많은 직업을 거쳤다. 이런 상황에 한가롭게 고전 영문학을 품에 끼고 소설가의 꿈을 키웠을 리 없다. 이후 몇몇 신문사에서기자생활을 시작하다 석유회사 부사장까지 올랐으나 음주와 잦은 결근으로 쫓겨난다. 당장 실업자가 된 챈들러는한 잡지사에 단편 소설을 기고하면서 뜻밖에 소설가의 삶을 산다. 당시 44살이었다. 그때만 해도 돈이 궁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습작을 거쳤거나, 따로 글쓰기를 배우지도 않았다. 절박한 상황이 깊숙이 숨겨져 있던 재능을 이끌어낸 셈이다.


챈들러가 생전에 남긴 장편 소설은 단 7권에 불과하다. 워낙 만년에 등단하기도 했지만, 집필 방식이 독특했다. 생명력을 지닌 글은 모두 가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글을 썼다. 또특이한 점은 초고를 마칠 때까지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작가 본인 조차 알 지 못한다. 추리소설임에도불구하고 등장인물, 사건 개요 같은 구성 노트 한 장 없이 오로지 머릿속으로 흘러가는 대로 구성한다.작가의 천재성이라고 칭송해야 할지, 무모한 배짱이라고 평해야 할지 아리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챈들러는 글을 써서 먹고 살아간다는것에 대해 굉장히 깊이 고민했다. 자신의 소설이 거칠고 빠르고 폭력과 살인이 난무한다고 욕해서 다음엔 좀 순화해서 쓰면, 처음에욕하던 그것들을 안 쓴다고 욕하는 사람들 때문에 좌절했다고 불편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저 그런 자신의 작품에너무 많은 광고비를 쏟을 필요가 있느냐고 묻기도 하며, 추리소설은 문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평론가들에게 분노하기도한다. 그저 펜이 가는 대로 쓴 작품을 놓고 ‘범죄환경에 대한 진지한고찰을 담았다’는 한 줄 평론 때문에 다른 작품을 쓰면서도 괜히 범죄 환경에 대한 고찰을 의식하게 된다는고백도 담고 있다.


레이먼드 챈들러 작가는 운 좋게도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살려 큰 명예와 부까지 얻었다.하지만 그의 성공이 우연으로만 보여지지는 않는다. 영감이 올 때에만 펜대를 잡는유유자적형 작가였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글을 쓰는데 투자했다. 중요한 점은 ‘하루에 네 시간 이상 꾸준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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