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가 천국
2012년 가장 뜨거운 날
한국보다 더 덥고, 더 습한 후쿠오카에서
따따블의 성수기 요금으로
아이들과의 첫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유난을 떨어서 돈 쓰고 쌩고생 하냐'는
꼰대 스멜 나는 말이 나오지만
그때는 나 역시 힘이 넘치고, 판단력도 부족하여
네 식구 해외여행 간다고 신이 났었다.
이렇게 한 분은 휴대용 유모차에 모시고
잠깐을 날아서
키티의 고향 일본에 왔다.
왜 하필 일본이냐고 물으신다면
남편이 낼 수 있는 여름휴가는 겨우 3박 4일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바꿔 놓았던 엔화를 우연히 발견했다는 것이다.
"심봤다!!!"
후쿠오카 하면 하카타, 하카타 하면 캐널시티인데
하카타 땅을 밟은 지 4시간 정도 흘렀을까.
바로 일이 터졌다.
하카타 -텐진을 도는 100엔 버스를 타기 위해서
정류장에 서 있었다.
한 분은 유모차에서 주무셨고
한 분은 유모차 옆에 서 있었다.
그게 내가 본 장면이었다.
그 이후
100엔 버스가 왔고
나는 버스 기사에게 행선지를 물어보기 위해서
버스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유모차 옆에 서 계셨던 분이
사.라.졌.다.
일본의 버스
뒤로 타고 앞으로 내린다.
사람들이 뒤로 몰리고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내가 앞으로 간 사이에
남편은 잠시 버스 노선을 보고 있었는데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사이로
아이가 사라진 것이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관자놀이가 터질 것 같았다.
버스는 만원이고 이제 출발해야 하는데
아이의 이름을 미친 듯이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버스 안에도, 밖에도 없었다.
그래도 만일에 하나
이 버스 안에 아이가 있다면
그런데 내가 이 버스를 놓친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말도 안 통하는 버스를 타고
얼마나 두려움에 떨 것인가.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버스 기사에게
잠깐만 기다려 달라며 버스를 뒤졌다.
아이는 없었다.
마음으로는 이 버스를 계속 붙잡고 싶었지만 보내야 했다.
그 사이 남편은 버스정류장을 샅샅이 뒤졌다.
잠깐이었지만 그 순간이 바로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길가에 사람들 소리, 차소리
그 어떤 소리도 안 들렸다.
엄마의 모든 감각이 새끼를 향해 열리며
저 멀리로 사라지는 노란색 토마스 썬캡을
발견했다.
하카타 시내에 광년이가 나타났다고
뉴스에 나와도 상관없었다.
나는 정말 미친년처럼 소리를 지르며 뛰었다.
거기 서! 거기 서!
남편이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남편도 미친 듯이 아이를 찾았겠지만
내 기억 속엔 저 멀리 작아지는
노란 토마스 썬캡뿐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갑자기 사람들 사이로 엄마랑 아빠가 사라지자
엄마, 아빠를 찾으려고 뛰었다고 했다.
어디서든 엄마 잃어버리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수도 없이 교육을 시켰는데
막상 당황하니 아이도 전력질주를 한 것이다.
어찌나 멀리까지 뛰었던지
저 멀리 노란색 썬캡이 노란 점으로 보였고
그걸 발견한 내가 소머즈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혹독하게 하카타 신고식을 마쳤다.
혼이 쏙 빠진 우리는 더위를 피해
가까운 모스버거에 앉았다.
그제야 울음이 터져 버렸다.
모스버거의 손님들을 놀라게 했다.
그때 유모차에 계신 분이 깨어나셨다.
"엄마, 왜 울어?"
"고마워, 고마워! 이 모든 일이 끝나고 깨다니!
우리딸 효녀네."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 확연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영화에서 조차도 아이를 이용한 범죄 장면이나
아이를 해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 "곡성"을 보면서도 내내 아역 배우의 연기보다는
저 아이의 정신 건강이 염려되었다.
"뭣이 중한디?"
'그야말로 뭣이 중한디 아이에게 저런 연기를 시키느냐'
관객이 아니라 애엄마로 접근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린 세월호...
정치적인 문제, 이런 거 다 필요 없고
그 아이가 내 아이일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치를 떨었다.
그 순간, 지옥이 따로 없었다.
결국 천국도 따로 없다.
지금, 둘이 지지고 볶고 싸우고 울어도
여기가 천국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