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그녀, 도대체 왜?
혁신.
요즘 지자체들의 대표 캐치프레이즈가 아닐까.
혁신이 뭘까?
문득 나의 지난 상사 중 한 명이 떠올랐다.
퇴직을 얼마 안 남겨둔 팀장님과 함께 일을 하며 많은 것을 퇴짜 맞았었다. 자신의 세금으로 수급자들이 돈을 받아 생활하는 게 가장 아깝다는 분이셨다.
당시 나의 업무 중 하나는 긴급복지였는데,
대상자를 선정할 때마다 이 사람에게 왜 도움이 필요한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며 팀장을 설득해야 했다.
경제적으로 힘들면 부모나 자식한테 도움을 받아야지 왜 정부에서 지원을 해줘야 하느냐는 팀장님을 논리로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분과 함께 새로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사례관리 업무를 담당할 때 힘들었던 저장강박 관련 지원 조례를 만들어서 팀장님에게 내밀었지만 그녀는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내가 퇴직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말했다. 내 귀를 의심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그렇게 말을 한 게 맞았다. (물론 자기도 너무하다 싶었는지 다음 날 자기 반응이 과했다고 사과는 했지만 조례 검토는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다 명절에 주는 위문금을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사례관리 대상자들에게도 줄 수 있는 근거조항을 만들고 싶어서 운을 뗐다가 호되게 혼났다. 생활이 어려우면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되면 되지 아닌 사람들을 굳이 왜 줘야 해?라고 되물었다. 한창 세 모녀가 자살을 하는 등 복지사각지대, 사례관리 대상자들이 중시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였지만 그런 거에 편승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라며. 팀장은 나를 탓했다. 자꾸 나서지 마라고.
내가 잘못한 것일까. 나는 아직도 의문스럽다.
혁신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달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야 좋은 공무원이었을까.
사회복지직 선배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뭔가 결재를 올리기만 하면 혼이 나다 보니 불안장애와 섭식장애를 앓았다.
한 달 만에 10kg 가까이 빠져버렸던 내 건강은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회복이 되었다.
퇴직을 앞두고 있어서 지나가는 새도 조심할 시기라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부작위 해야 했을까라는 나의 의문은 아직도 미궁 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