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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Sep 30. 2022

장원영을 따라 하는 아이들








어느 날부턴가, 반에 이상한 유행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실 뒤편에서 아이들이 한 아이를 둘러싸고 열심히 무슨 동작을 따라 하는데, 그 자리에 끼지 못한 아이들은 번호표를 받아 기다리는 것이다.

대체 무슨 춤이길래 저렇게 기다리는 거지, 골똘히 생각하다 그냥 흘려보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의 문화가 있겠거니, 하면서. 그런데 그 수수께끼는 의외로 교사 동기 모임에서 풀렸다.



요새 애들 러브 다이브 교실에서 엄청 추지 않아?

동기 중 하나가 먼저 운을 띄웠다. '러브 다이브'라고 하면, 요새 그 대단하다는 걸그룹 아이브의 곡 아닌가.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다가 예쁘고 늘씬한 친구들이 춤을 추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 춤을 아이들이 직접 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 반도 그러는구나. 우리 반도 심해 진짜."

"그거 어떻게 해야 하니. 말려야 하나?"

"이 또한 지나가겠지."


그 춤에 대해 제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설왕설래하다 보니, 우리 반 아이들이 그때 몰려들어 배운 춤이 그 춤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생각해보니 거울춤추는 것처럼 한쪽 팔을 높이 들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다. 도처에 러브 다이브 춤이 난무해진 것은.







의식하기 시작해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그때부터 붐이었나.

우리 반뿐만 아니라, 전교생이 러브 다이브 춤을 따라 추는 느낌이었다. 급식실에서 열심히 급식을 먹다가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면, 4학년 학생이 '그 춤'을 따라 추고 있다던지, 체육 대회 때 6학년들이 응원가에 맞춰 '그 안무'를 연습한다든지.

서두에서 말했지만, 고작 아홉 살인 우리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놀라운 것은 남학생들조차 그 춤을 따라 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별다른 노력 없이 단체 춤으로 선정해서 학예회에 올려보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아이돌의 춤을 따라 하고, 덩달아 옷을 짧게 입고, 치명적인 표정을 짓는 행동이 괜찮은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학부모님께서는 실제로 상담 시간에 이에 대한 우려를 직접 표하기도 하셨다. 우리 아이가 아이돌을 좋아하는 나머지 급기야 방송댄스에 보내달라고 하는데, 이렇게 휩쓸려도 괜찮은 것이냐고 말이다.



그 모든 우려와 질문에 나는,

와이낫? 뭐가 문제인가?

라고 답한다.

선망하는 대상을 따라 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또래집단의 문화가 형성되는 것 또한 막아야 할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그런 학창 시절을 통과해왔고, 돌이켜봤을 때 웃음이 절로 나오는 추억 한 페이지로 멋들어지게 장식되어 있다.



학생의 본분인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고 물으신다면, 학생의 본분은 공부가 아니라고 답하겠다. 학생의 본분은, 단단한 어른이 되기 위한 방파제를 차곡차곡 쌓는 것이다. 그 방파제에는 앞서 언급한 친구들과의 추억, 선생님과의 유대, 어쩔 수 없이 겪었던 시행착오들이 들어있다. 그런 것들을 모두 거르고 공부만 하라는 것은, 아이를 유약한 어른으로 성장시키겠다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 '아이 답지 않다'라고 느낄 수 있고, 같은 맥락으로 어른스러우려는 제스처와 눈빛이 어색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면, 너그러운 눈으로 봐주는 건 어떨까. 우리가 과거에 쌓아 올렸던 방파제처럼, 아이들에게도 그런 추억을 쌓을 만한 기회를 기꺼이 내어주는 건 어떨까.








내가 가진 오만과 편견으로 남들을 판단하려 할 때마다 떠올리는 문구이다. 

그 어린 날의 내가 보아 춤을 추면서 꺄르르댔던 것을 떠올리면서, 또 그걸 너그럽고 따스한 눈길로 참아주셨던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지금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관용과 너그러움을 베풀어주고 싶다. 그런 노력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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