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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May 01. 2024

새로 발령 난 학교가 별로라고요

정말요? 좀만 더 있어봐요





학교를 옮긴 지 1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

처음에 학교를 옮기게 되었을 때, 며칠을 무작정 우울해했다. 내가 있는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이동점수가 딱히 없는 지역인지라, 초빙이 아닌 이상 랜덤으로 빈자리에 발령이 나게 되어있다. 운에 따라 향후 5년의 삶이 결정되는 것이다. 학교를 처음 옮기는 교사에게는 참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 두 번째 발령지는 산속에 있는 학교이다. 역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 그 경사가 어마어마했다. 헉헉대며 겨우 올라갔는데, 학교 외부 벽의 칠이 다 벗겨져있었다. 오 마이갓, 첫인상이 너무 안 좋다. 

게다가 학교 규모도 전학교의 절반 수준이다. 이럴 수가 있나? 모든 다운그레이드된 느낌이다. 교무실에 가서 첫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하면 정기전보 전에 이 학교를 탈출할 수 있나, 그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어떡해, 버텨봐야지.

겪어내기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이성적 사고로 버티는 편이다. 스스로에 대한 공감과 마음 읽기는 상황 극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3월 내내 전학교가 그리웠지만, 그 마음을 스스로에게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의 심경을 담아둔 어떠한 글도 없다. 그게 내가 작금의 상황을 버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땐 몰랐다. 현학교에 대한 인상이 1년 후에 180도 바뀔 줄은.





지금의 나는, 이 학교가 참 좋다. 

학교가 산속에 있다는 것, 10여분을 헉헉대고 올라가야 겨우 교실로 안착할 수 있다는 것, 학교의 칠이 다 벗겨져 녹물이 나올 것 같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학교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 행정업무 부담이 가중된다는 사실도 쉬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걸 이길 단 하나의 요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따뜻함'이다.



작년,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 마을 공동체 육아로 교사를 든든하게 지원해 준 것이 잊히질 않는다. 학교가 속한 이 마을은 '온마을이 아이를 함께 기른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곳인지라, 아이들이 사교육 없이 마을공동체의 손아래 6년을 보낸다. 그래서인지 학부모님들께서 교사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고, 든든하게 지원해 준다. 그걸 1년 넘게 경험하다 보니, 이 온기에 맥을 못 출 지경이다. 


매년 4월 16일이면 마을 곳곳에 세월호 애도에 대한 현수막이 걸린다. 노란빛으로 물든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학교의 외연만 보고 섣부르게 '망했다'라고 판단했던 과거의 내가 참 어리석었다고. 교직에서 온정을 느낄 수 있는 이 순간이 참 감사하다고 말이다. 이 모든 경험은 나의 정서적 맷집으로 이어질 것이다. 부정적인 외부 상황을 겪고, 그것을 정신력으로든 체력으로든 버텨내면, 그다음 상황은 좀 더 버티기 수월해지는 법이니까.


중간에 퇴직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학교를 옮길 일은 최소 5번 정도 더 있겠지.

마음에 안 들 때도, 나름 괜찮을 때도 있겠지만, 첫인상이 끝인상이라는 편견만큼은 확실히 버릴 수 있겠다. 두 번째 학교가 나에게 남긴 감사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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