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낡은 욕심이 아이의 천재성을 짓밟고 있다."
[프롤로그] 이 글은 현역 작가가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보내는 'AI 시대 자녀교육 생존 보고서'입니다. 총 4회에 걸쳐, 의사와 판검사가 몰락하는 미래에 우리 아이가 기업 가치 1조 4천억 원의 '유니콘'처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성장하는 법을 연재합니다.
나는 시력 때문에 정기적으로 대학병원 안과를 찾는다. 그곳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늘 마음 아픈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검사실, 소위 '암실'이라 불리는 그 어두컴컴한 방 안을 본 적이 있는가? 첨단 검사 기계 서너 대가 좁은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 소리 없이 차가운 불빛만 깜빡이고 있다. 그 적막한 기계들 사이, 그림자처럼 앉아 있는 흰 가운의 청년들이 보인다.
그곳에 환자와 의사 사이의 따뜻한 교감이나 안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보다 더 차갑고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숨 막히는 정적을 가르며 자동 응답기처럼 울려 퍼질 뿐이다.
"어머니, 자꾸 눈 감으시면 검사 못 해요. 자, 여기 불빛 보세요." "위 보세요. 아뇨, 고개는 들지 마시고요. 눈동자만 위로... 옳지, 그렇게요." "이번엔 아래 보세요. 눈 크게 뜨시고... 아이고, 또 감으셨네." "자, 다시 합니다. 힘드셔도 참으세요. 위 보세요... 아래 보세요... 네, 잘하셨어요. 이제 잘 되었어요."
의사의 목소리에는 이미 모든 감정이 메말라 있었다. 같은 말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반복했을 탓이리라.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말끝마다 지친 한숨이 섞여 나오지만 그녀는 쉴 수가 없다. 대기실 의자에는 검사를 기다리는 노인들이 빽빽하게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으니.
저 청년들이 누구인가? 학창 시절,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을 놓쳐본 적 없고, 수능 만점을 받고,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서울대 의대라는 정점에 도달한, 대한민국 최고의 '천재 소녀, 천재 소년'들 아닌가.
그런데 그 눈부신 두뇌를 가진 청년이, 청춘의 가장 빛나는 시기에 하고 있는 일이 고작 이것이다. 하루 종일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어둠 속에 갇혀, 말귀 어두운 노인들을 붙잡고 "위 보세요, 아래 보세요"를 앵무새처럼 무한히 반복하는 일.
더 끔찍한 사실은 이것이 단 하루의 고생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러하며, 내일도 똑같을 것이다. 1년 365일,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다시 저 어두운 방으로 걸어 들어가 똑같은 기계 앞에서 똑같은 멘트를 읊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하면 1초면 수행할 단순 판독, 자동 초점 맞추기를 위해 인간 최고의 지성이 '기계의 보조자'처럼 매일 소모되는 이 현장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듯 답답해져 온다.
이것이... 대한민국 모든 부모가 그토록 보내고 싶어 하는, 우리가 꿈꾸던 성공의 실체란 말인가?
우리 부모들이 자식이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는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평생을 어딜 가나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예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다. 백번 양보해 의사는 아직 괜찮다고 치자. 그렇다면 의대 다음으로 부모들이 선호하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엘리트'라 불리는 공학 천재들의 현실은 어떨까?
시선을 병원 밖으로 조금만 돌려보자. 그곳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세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다는 미국 명문 공대의 현실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못해 공포스럽다.
미국의 컴퓨터공학과(CS) 순위는 1위 카네기멜론(CMU), 2위 스탠퍼드, 3위 MIT, 4위 어바나 샴페인(일리노이대) 순이다. 불과 1년 전인 2024년, 이들의 취업률은 500%가 넘었었다. 즉, 구글, 애플, 엔비디아, MS 등 졸업생들이 가장 원하는 직장 5~6곳에 합격하여, 행복한 고민을 하며 그중 한 곳을 선택해서 갔었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안 된 2025년, 이 수치가 60~70%로 곤두박질쳤다. 믿기지 않겠지만, 세계 최고의 대학 졸업생들 중 30~40%가 어느 곳에도 취업하지 못하고 백수가 된 것이다.
도대체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천재들의 지능이 집단으로 퇴화라도 한 것일까? 아니다. 범인은 '속도', 바로 AI가 진화하는 속도다.
기업들은 냉정하게 계산기 두드리는 것을 끝냈다. 억대 연봉을 줘야 하는 신입 개발자보다, 월 3만 원짜리 AI가 개발을 더 완벽하고, 더 빠르게, 군말 없이 해 낸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개발 기술만 배우면 평생 먹고산다"는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이제 단순한 '기술(Skill)'만 가진 인간은 설 자리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가? 여전히 아이들을 영어 학원, 코딩 학원으로 쉴 새 없이 내몰며, AI가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울 그 기술을 배우라고 등 떠밀고 있지 않은가. 이미 불타버린 다리 위로 아이들을 밀어 넣고 있는 꼴이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기 위해, 나는 오늘 두 명의 동갑내기 천재를 이 자리에 소환하려 한다. 그들의 엇갈린 운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답이 보일지도 모른다.
먼저, 알파고의 아버지, 구글 딥마인드의 CEO,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데미스 허사비스'다. 그는 영국으로 이민 온 그리스계 아버지와 중국계 싱가포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즉, 이민 가정의 자식이었다. 4세 때 아버지와 삼촌이 두는 체스를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그는, 체스 대회 상금으로 받은 200파운드로 컴퓨터를 사서 본격적으로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부모는 그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컴퓨터를 가지고 마음껏 놀게 해 주었다. 덕분에 그는 수많은 혁신적인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15세 때 이미 게임 개발자로 명성을 떨치던 그는, '컴퓨터가 인간의 뇌 활동을 모방한다'는 점을 깨닫고 뇌 과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인지 신경과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인간 기억의 메커니즘을 규명했고, 이는 훗날 알파고와 알파폴드 등을 개발하여 인류의 미래를 확장시키는 결정적인 기초가 되었다.
이후 그가 설립한 '딥마인드'는 직원 6명 규모의 신생 회사였음에도 무려 6,000억 원에 구글에 인수되었다. 2016년 3월 9일, 구글은 '딥마인드'를 앞세워 한국에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역사적인 대결을 펼쳤다. 이 세계적인 이벤트가 한국에서 열렸다는 것 자체가 AI 시대 한국의 위상을 예견한 것이었다. 비록 4대 1로 패했지만, 이세돌은 인류 역사상 인공지능을 이겨본 '처음이자 마지막 인간'으로 남았다.
구글에 합류한 허사비스의 행보는 더 극적이었다. 알파고 제로, 알파스타 등을 거쳐 마침내 인류의 난제인 '단백질 접힘 구조'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알파폴드(AlphaFold)'다. 뢴트겐 이후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수십 년간 매달려도 밝히지 못했던 단백질 구조를 AI를 통해 단번에 규명해 낸 것이다. 이로써 인류는 모든 질병을 정복할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되었다. 지금 전 세계 제약사들은 이를 활용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와 저렴한 비용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가 건강한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게 될 세상이 불과 몇 년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반면, 어릴 적엔 그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던 우리의 수많은 영재들은 어떠한가?
한국이 낳은 천재 송유근의 사례를 보자. 그는 3~4세 때 미적분을 통달해 일본 NHK에 출연했고, 7세에 대학에 입학하며 신화를 썼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우리의 희망인 송유근은 천체물리학 같은 어려운 학문을 전공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NASA 같은 곳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천재를 보고 싶다는 어른들의 욕심 때문이었다. 그곳엔 정작 본인의 적성이나 희망은 없었다.
결국 떠밀리듯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지도교수의 욕심에 희생되어 박사학위마저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NASA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천재들만 모여 있다는 그곳에서 그가 한 일은 연구가 아닌 잡다한 심부름뿐이었다고 한다. 결국 NASA를 나온 그는 귀국하여 여러 곳을 전전하다, 지금은 지방의 모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그래도 아직 연구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고정된 틀에 갇혀 꽃 한 번 피워보지 못하고 시들어 간 한국 영재들의 비명처럼 들려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선진국이 끊임없이 허사비스 같은 혁신가를 배출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저력은 화려한 대학 강의실이 아니라, 집집마다 있는 허름한 차고(Garage)에서 나온다.
미국의 아이들에게 운전면허(Driver's License)는 단순한 자격증이 아니다. 성인으로 가는 통과의례다. 그들은 면허를 따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는 대신, 아빠와 함께 차고로 간다. 그곳에서 기름때를 얼굴에 묻혀가며 엔진을 뜯고, 부품을 갈아 끼운다. 문과생이건 이과생이건, 그들은 웬만한 엔지니어급의 기계적 메커니즘을 몸으로 부딪치며 체득한다.
그뿐인가? 그 기름 묻은 투박한 손으로 그들은 인문학 고전 100권을 집어 든다. 플라톤에서 셰익스피어, 헤밍웨이까지. 인간의 마음을 읽고,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훈련을 초등학교 때부터 지독하게 받는다.
낮에는 차고에서 기계를 만지며 기술의 원리를 익히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인간을 탐구하는 아이들. 이것이 바로 선진국이 스티브 잡스를 낳고, 일론 머스크를 낳은 힘이다. "문과는 기계 몰라요", "이과는 글 몰라요"라며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문송합니다"를 외치는 한국의 교육 현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반쪽짜리 인간을 만들고 있지만, 그들은 '융합형 괴물'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맺으며, 다시 처음의 그 안과 암실로 돌아가 보자. "위 보세요, 아래 보세요"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저 레지던트 3년 차의 뒷모습. 당신은 정말로, 진심으로 당신의 소중한 아이가 20년 뒤 저 자리에 앉아 있기를 바라는가?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암기 잘하는 모범생의 비결이 아니다. 허사비스처럼 어깨너머로 세상을 훔쳐보는 통찰력,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덤비는 불굴의 의지, 그리고 AI에게 '왜?'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인문적 지성과 용기다.
간곡히 묻고 싶다. 부모들이여, 아이를 도대체 얼마나 더 망치시렵니까?
학원비 댈 돈으로 차라리 고성능 컴퓨터를 사주어라. 문제집 풀라고 닦달할 시간에 차라리 서점에 데려가 역사책 한 권을 쥐어주어라. 그리고 제발, 아이가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게임을 만들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 섣부른 판단으로 그 가능성을 짓밟지 마라.
그 순간이 바로 당신의 아이가 암실 속의 부속품이 아니라, 'AI를 부리는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가장 위대하고 결정적인 시간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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